[특집 | 대안미래 일구는 사람들]노인 - “우린 당당하게 출근하고 떳떳하게 월급 받는다”

노인들에게 세탁 일자리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 ‘은빛작업장’

서울 도봉구에 있는 은빛작업장은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2006년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인복지기관인 도봉시니어클럽 소속으로 설립된 뒤 2010년 사회적 기업 활성화 정책의 지원을 받는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다. 사회복지사인 전영현 팀장은 은빛작업장에서 노인 일자리 제공사업을 맡아 세탁업무를 담당하는 노인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세탁장에선 주로 스포츠센터나 목욕탕, 숙박업소에서 수거해온 세탁물을 처리한다. 산더미같이 쌓여 들어온 세탁물을 처리해 세탁에서 건조, 포장까지 끝내는 직원들의 손놀림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작업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여성의 비율이 높다보니 서로를 언니, 동생으로 부르며 가족같이 대한다. 총 12명의 노인 직원 중 남성은 2명뿐이지만 그렇다고 소외되는 일도 없다. 여러 작업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건을 개는 일을 할 때면 직원들이 둘러앉은 작업장에선 대화와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은빛작업장 직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전영현 팀장(오른쪽 끝). | 김태훈 기자

일의 특성상 연중무휴로 작업장이 돌아가기 때문에 노인 직원들은 격일제로 일한다. 9시가 출근시간이지만 대부분 8시 30분이면 나와 하루를 준비한다. 성실성과 서로간의 친밀함이 노인 직원들만의 장점인지를 묻자 전 팀장은 “처음 노인 일자리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젊은 시절 농사만 지으시고 직장 경험을 하신 분이 드물어 나름 애를 먹었다. 또 처음엔 여기도 일반 직장이 아니라 복지기관에 속해 있다 보니 어르신들이 꼭 여기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자세가 아니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탁업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고 직원들이 자신의 일과 직장에 애착을 가지면서 사업도 갈수록 순조로워졌다.

창립 7년차인 은빛작업장은 일감이 없어 고전하던 과거에 비하면 사업도 본궤도에 올라 어엿한 사회적 기업이 됐다. 단순작업장에서 출발했지만 차차 경험이 쌓이면서 세탁작업에도 효율이 생긴 것이다. 노인 직원들의 손에는 꼬박꼬박 70만원가량의 월급이 돌아간다. 직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나면 회사에 남는 돈은 거의 없을 정도로 아직 회사 살림은 빠듯하지만 주변지역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 무료세탁을 제공하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사회활동 보장대책은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9월 기준 60세 이상 인구의 고용률은 30.2% 수준이다. 전 팀장은 “현장에서 복지업무를 하다보면 고령층 자체가 취약계층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어르신들이 할 수 있을 정도의 일자리 중 양질의 일자리는 정말 찾기 힘들다”면서 “일자리가 있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활동을 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 끊어지는 사회적 관계를 동료를 통해 이어간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노인 직원들이 은빛작업장에 나오며 달라진 것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전 팀장은 “어르신들이 집에서만 계속 계시면 자식들 눈치 보여서 마음이 안 편했는데, 아침마다 당당하게 출근할 때나 일해서 번 월급을 받아 들어갈 때 가장 뿌듯하다고 하신다”며 “가족한테도 말 못하는 얘기도 스스럼없이 꺼내고 쉬는 날엔 함께 놀러 다닐 정도로 각별하게 지내신다”고 말했다. 전 팀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회복지사이면서도 기업에 소속된 몸이 됐지만 이전처럼 어르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복지가 아니라 어르신들 스스로 보람과 기쁨을 찾을 수 있는 복지를 할 수 있어 기쁘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