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젊은 그대, 현실의 벽 넘을까

4·11 총선을 앞두고 2030세대의 국회 진출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오디션 방식의 경선을 통해 청년비례대표 후보 4명을 선출했다. 19대 국회에 이들 중 2명 이상이 입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합진보당은 김재연 후보 1명을 청년비례대표로 최종 선출했다.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2030 정치신인들도 있다. 새누리당의 손수조 후보(부산 사상·27)와 박선희 후보(안산 상록갑·32)가 대표적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19대 국회에 소위 청년대표라고 할 만한 2030 정치신인이 최소 4~5명은 진출할 것”이라며 “20~30대 후보가 지역구에서 경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정당에서 2030세대를 비례대표로 공천한 것은 참여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3월 14일 민주통합당 국회 당대표실에서 청년비례대표 탈락자, 당선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이들의 국회 진출로 2030세대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고 정치문화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높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현실정치의 작동원리가 지역, 계파, 서열을 축으로 움직이다보니 2030 정치신인 또한 기성정치권에 고스란히 흡수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 때문이다. 가장 먼저 ‘문재인 대항마’로 불리며 20대 정치신인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에게 ‘박근혜 아바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기존 정치에 편입된 386 사례 답습 우려
‘젊은 피 수혈론’으로 1998년 화려하게 정치권에 등장했던 386 정치인들의 사례는 이러한 비관적 전망을 뒷받침한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은 30대 국회의원으로 사회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현실정치에 진입한 386 정치인들은 ‘새로운 정치’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기존 정치에 그대로 편입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386의 대표주자였던 김민석 전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에서 정몽준 후보 진영으로 돌아서면서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비판받았다. 386이 보스정치·계파정치의 구태를 답습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민주당 지구당위원장이었던 허인회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큰절을 한 사진은 이에 대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광주 5·18 기념식이 끝난 후 386 정치인들이 가진 단란주점 술자리는 이들 또한 기성 정치세력과 다를 것이 없다는 사회적인 냉소로 이어졌다.

4·11 총선을 준비하는 2030 정치신인들은 ‘386과 같을 것이다’라는 우려를 반박했다. 민주통합당 장하나 청년비례대표 후보는 “나를 비롯해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 후보 4명은 당내에서 힘이 약해 기성 정치세력에 밟힐지언정 기성정치에 흡수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순결한 정치’에 대한 신념이라기보다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자신감이다. 장 후보는 “우려보다는 희망을 걸어도 좋다. 신념은 꺾일 수도 있지만 문화가 다르다면 쉽게 동화되지 않는다”며 “라인·계보 아무것도 없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더라도 세간의 우려대로 기존 정치를 답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성 부족 지적에 생활정치 강점 내세워
하지만 정치신인들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험과 균형감각,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2030 정치신인들이 젊은 세대의 정서적인 부분을 대변하는 것 이상으로 그 부분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30을 대표해서 국회에 진출했지만 청년의 문제는 국가 경제 발전이나 국정 전반의 문제와 다 관련되어 있다”며 “2030세대의 국회 진출로 정치권에 세대공간이 넓어진 것은 긍정적이나 국정에 일정한 경험이 필요한 만큼 기대와 우려가 교차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년비례대표들이 내세운 공약은 ‘반값 등록금’ ‘청년 주거권’ ‘청년 의무고용할당제’ 등 이미 기존 정치권에서 나온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구체적인 공약보다는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 ‘진심을 담아 귀기울이겠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당위적인 논의들을 구체적이고 현실 가능한 정책으로 만들어갈 수 있느냐가 이들에게는 숙제로 남아 있다.

전문성에 대한 지적에 민주통합당 김광진 청년비례대표 후보(31)는 청년 당사자의 ‘생활정치’를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청년들이 실제로 고통을 느끼는 것들은 작은 부분만 개선해도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정치인들은 이게 피부에 와닿지 못하기 때문에 공감하지 못한다”며 “청년실업 문제나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누가 의지를 가지고 실행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겪는 고통을 표피적으로 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청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의하지 못하지만 청년비례대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2030 신인들 정치실험 성공여부 미지수
현 새누리당 서초구 의원이면서 새누리당 청년비례대표에 지원한 김병민씨(30)도 청년 당사자의 ‘생활정치’를 강조했다. 그는 “실제 현실정치에 참여해서 일을 해보니 청년들의 정치참여가 전무했다”면서 “대의정치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인 공감 없이 추진되는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생 아르바이트 조례’를 만들었다. 각 지자체마다 방학 때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실시하지만 실제로 대부분 복사업무만 할 뿐 제대로 된 실무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신청 대학생들의 전공이나 경력을 조사해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은 구의회에서, 아동복지학과 학생들은 구청 직영 어린이집에서 현장경험을 할 수 있도록 조례를 발의했다.

2010년 대학생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청년실업과 등록금 문제 등 20~30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선거 투표 참여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세구 기자

2030 정치신인들을 바라보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면서 무엇보다 이들에 대한 정당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희웅 실장은 2030세대들이 의회에 진출했을 때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추가적인 지원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윤 실장은 “정당의 추가적인 지원이 시스템적으로 갖춰지지 않으면 청년비례대표는 반짝 이벤트에 그쳐서 오히려 정치권에 대한 청년들의 냉소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김영동 생활정치국장은 “청년정치가 시대적 화두이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도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틀을 마련할 것”이라며 “정책적 지원을 담당할 수 있는 지원단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 분위기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비례대표 순번 문제도 있고 아무래도 자리싸움이다보니까 당내에서는 2030 정치신인들을 누르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 공천과정에서도 ‘젊은 여성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손 후보의 공천을 반대하는 당내 움직임이 있었다.

당 차원의 지원을 넘어 청년비례대표들끼리 초당적인 모임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청년비례대표 후보(31)도 “청년들은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녹색당, 진보신당으로 구분을 딱히 안 해도 청년의제, 정치개혁, 반MB투쟁에 공감대가 있다”며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 후보들과는 누가 국회를 들어가든 초당적인 청년의원 모임을 만들자는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19대 국회에 2030 정치신인들의 등장이 예고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청년 정치인을 육성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문제도 제기된다. 선진국처럼 젊은 정치인이 한 단계씩 성장할 수 있는 정치토대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오디션 방식의 경선은 정치인의 자질이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이벤트적 성격이 강하다”며 “과연 심층적인 평가와 판단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젊은 차세대 리더들을 양성하는 기관인 마쓰시다정경숙이 정치신인을 육성하는 하나의 참고모델로 거론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이벤트식 경선이 아니라 오랜 시간 훈련을 받은 준비된 청년 정치인을 배출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