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시장 자유란 돈있는 사람의 자유다”

장하준 교수 전화 인터뷰, 자유시장경제 논리에 일침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출간 직후 영국 주요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특히 <가디언>은 ‘장하준을 칭찬하며’라는 제목의 9월 29일자 사설에서 “이 책은 독자들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마른 정치인들이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고, 에드 밀리밴드 영국 노동당 대표에게 “장하준과 점심을 함께 하라”고 권유했다.

에드 밀리밴드는 지난 9월 25일 영국 노동당 새 대표로 선출됐다. 당선 직후 그는 “더 번영된, 더 평등한, 더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노동당 쇄신을 통한 재집권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밀리밴드가 강조한 번영과 평등과 공정은 한국 사회에도 절실한 가치들이다. 장하준 교수의 이론은 더 공정하고, 더 평등하고, 더 번영된 사회를 만드는 데 어떤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까.

「Weekly경향」은 지난 12월 1일, 영국에 있는 장하준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한국 시간으로 12월 1일 오전 7시30분부터 50분 동안 이뤄졌다. 장 교수는 경제학자들과 관료들이 만들어놓은 신자유주의라는 매트릭스를 시민들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서출판 부키 제공.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출간 직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지금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독자들이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반적으로 경제학 책들은 굵직한 주제를 다룬 것들은 읽기 쉽지 않고, 가벼운 주제를 다룬 것들은 깊이가 얕거나 일방적으로 자유시장을 선전하는 내용인 데 비해, 내 책은 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BBC 경제기자인 폴 메이슨은 지난 9월 25일자 <가디언>에 쓴 서평에서 저자가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가 1970년대 초반 위기를 맞았다는 사실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가 자본주의가 저자의 주장대로 과연 경기침체를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가 자본주의가 1970년대에 오일쇼크와 노사갈등으로 위기를 맞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위기는 국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각광받았던 신자유주의가 최근 일으킨 위기에 비하면 위기라고 할 수도 없다. 영국의 경우 대처 총리는 1979년 선거에서 높은 실업률(실업자 100만명)을 빌미로 노동당을 공격해 집권했다. 하지만 대처가 집권하고 나서 2년 만에 실업자 수가 300만명이 됐다.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1983년에 실권했을 게 분명하다. 어떤 경제체제에도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내 주장은 경제체제를 1970년대로 되돌리자는 게 아니다. 그때가 유토피아였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폴 메이슨은 내 주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증거를 들어 반박하지 않았다. 나는 증거를 제시했다. 반박을 하려면 내가 제시한 증거를 반박해야 한다.”

책의 주장대로라면, 자유시장 경제학은 무용지물일 뿐만 아니라 경제에 해롭기까지 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시장 경제학이 지난 30여년 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자유시장 경제학은 소수의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한테 좋은 논리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임금은 내리는 대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국내 산업이야 파괴되든 말든 중국에서 싼 물건을 들여오면 소비자로서의 국민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노동자로서의 국민에게는 좋을 게 없다. 노동 강도는 늘어나고 직장을 잃게 된다. 소수의 상류층들에게는 이런 위험이 없다. 이들이 언론·학계·정치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시장 경제가 맞다고 우기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통계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정책을 쓰면서 성장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통계에 나오는 숫자만 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인데도 보통 사람들은 잘 몰랐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워낙 선전을 많이 한 탓에 통계를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아무런 이익을 볼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이데올로기적으로 그걸 믿게 됐다. 매트릭스 안에 갇혀 실제 현실이 뭔지 모르고 산 것이다.”

그동안 여러 책들을 통해 경제가 발전하려면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한국의 경우 군사독재 시기에 국가 개입이 가장 적극적으로 이루어졌고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 민주화세력은 박정희 정권 시기 경제개발 정책에 대해 그것이 민주주의를 희생한 결과일 뿐만 아니라 노동과 자본의 균형을 심각하게 깨뜨림으로써 경제 민주화에 장애물이 되었다고 평가해왔다. 독재정권 시절의 경제성장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도서출판 부키 제공.

“우리 국민들은 경제성장이 기적에 가까울 만큼 단시간에 이뤄졌기 때문에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경우 노동자의 지위를 가장 높여준 건 성장이다. 경제의 급성장으로 유휴 노동력이 줄어들면서 노동자들이 사람 취급을 받게 됐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이 대접을 못 받았다. 일할 사람들이 남아도는데 노동자들한테 잘해 줄 이유가 없었던 거다. 우리는 경제성장과 노동자 권익 상승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성장이 안 돼 가난이 지속되면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도 지킬 수 없다. 서양국가들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순조롭게 성취한 게 아니다. 한국의 군부독재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보다는 가혹하지 않았다. 물론 경제성장이 독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박정희가 독재를 했기 때문에 한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느냐?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사실에 입각해서 본다면, 민주화나 노동자의 권리는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독재를 해서 거둔 성장이 무슨 소용이냐고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한국의 경우 시장에 주어졌던 자유를 국가가 다시 회수해 경제구조를 재편하는 작업을 시도한다면 그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또 그러한 시도를 성공시키는 데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나.
“시장 자유란 결국 돈 있는 사람들의 자유다. 우리는 오랜 독재를 겪었기 때문에 자유라고 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식부터 고쳐야 한다. 자유란 좋은 것이며 자유화가 역사적인 대세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장과 국가의 경계는 항상 유동적이었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고전적인 시장자본주의가 융성하던 시기에 서구 국가들은 자유주의를 표방했지만 사실은 식민지를 수탈했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안 했다. 그마저도 결국 실패로 돌아가면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정자본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우리도 1950년대 후반에 은행을 민영화하는 등 자유화 정책을 썼다. 그런데 박정희가 그걸 바꿨다. 충분히 바뀔 수 있다. 그러자면 ‘이래서는 안 된다,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국민들이 요구해야 한다. 바꾸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핑계를 댄다. 이미 개방했는데 어떻게 폐쇄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후 미국은 금융개혁을 했다. 시장주의의 본산인 미국도 지나친 규제완화의 폐단을 수정하는데 우리는 왜 못 바꾸나. 자꾸 요구해야 바꾸기 싫어하는 이들도 떠밀려서 바꾸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대안, 책에 나온 표현대로라면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만드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보나.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시장주의자들보다 더 잘 이해한 면이 많다. 동아시아 경제 기적에도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이 지대하다.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박정희는 한때 남로당원이었다. 일본의 경우에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부흥을 이끈 관료들 중에는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사람들이 많다. 대만의 장징궈 총통(장제스 총통의 아들)도 젊은 시절 소련 공산당 학교에서 공부한 공산주의자였다. 이런 사람들이 동아시아 경제기적을 이룬 게 우연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기술 발전이나 제도 발전 등과 관련해 주류 경제학자들이 최근에야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들을 일찍부터 연구했다. 199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널드 코즈의 기업이론도 마르크스의 이론적 통찰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지점에서 나는 그들과 다르다. 목적론에 입각해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보는 건 옳지 않다. 내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못한 제도다.”

책에서 지적한 대로 상충하는 갈등을 수렴하고 조정할 수 있는 최적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 정부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권위주의적 정부로 평가되고 있는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라 더 민주적이었다고 평가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유지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밀실협상’ ‘퍼주기 협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민주주의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역설적인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영어판 표지.

“우리 국민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한국 경제의 잘못된 점들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지했다. 가령 민주정부는 관치금융의 폐해를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한국은행을 독립시켰고, 그것이 민주화라고 했다. 그런데 유럽에선 중앙은행 독립을 우파가 주장한다. 왜냐 하면 중앙은행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면 금융자본의 이해보다는 국민들이 원하는 경제성장이나 실업률 감소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재정권이 중앙은행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반대로 독립시키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서글픈 이야기다. 재벌 문제도 비슷하다. 외국자본은 재벌보다 나은가. 더 나을 게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재벌이 나쁘기 때문에 외국자본 시장을 개방해 재벌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이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밖에 없는 정책들을 지지한 건 이런 배경에서인 것 같다. 민주정부가 하는 일이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원칙을 어기면서 FTA를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국민들이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외국자본의 ‘먹튀’ 문제도 불거졌다. 국민들 사이에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한 자각이 생기게 된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통상교섭본부는 무조건 추진하고, 대통령은 이를 지지하는 건 민주주의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다. 지금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고소득층 및 대기업에 대한 감세를 통해 투자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는 기조를 갖고 있다. 이런 방식이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나.
“내가 아는 바로는 없다. 그런 노선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게 미국이다. 1980년대에 감세를 통해 성장을 지향했지만 오히려 성장률이 떨어졌다.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스웨덴이나 핀란드처럼 조세부담이 높은 나라라면 몰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조세부담률이 가장 낮은 한국 같은 나라에서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경제학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인식돼 있는 데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이나 경제관료들이 내놓는 수치나 이론은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고 이해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소위 경제전문가들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시민들의 수단이 있다면 무엇인가.
“독자들에게 그런 수단을 제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경제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 방역학 박사학위가 없어도 위생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왜 경제에 대해서만 말을 못하나. 경제학은 대립하는 이견들이 엄청나게 많은 학문이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시장주의 경제학을 하지만 그 안에도 여러 학파들이 있다. 전문가들 말이라고 다 맞는 게 아니다. 내 말도 틀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나무는 보지만 숲은 못 볼 수 있다. 경제학은 상식적인 이야기다.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숲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독자들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