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스마트폰 “열려라, 무료 무선인터넷”

무선데이터 시장 확대 ‘와이파이’ 개방 논쟁 후끈… KT-SKT 득실계산 분주

"와이파이(Wi-Fi, 무선랜)는 공공재 같은 성격으로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열려 있다.”
“서울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스마트폰을 켜 보면 12개의 AP(유·무선 공유기, 와이파이 접속 지역을 의미)가 잡힌다.”

KT가 지난해 에미리트 항공과 제휴해 인천, 김포, 김해, 제주 등 전국 4대 공항에서 네스팟 서비스를 제공한 가운데 공항 이용객들이 무료로 무선인터넷을 이용하는 모습.

SK텔레콤 정만원 사장이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한 이 말이 통신업계뿐만 아니라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익성을 이유로 무선인프라 관련 투자를 소홀히 해 온 SK텔레콤이 스마트폰의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와이파이망이 무선인터넷 사용 환경을 단번에 바꾸어 놓자 이미 막대한 비용을 들여 무선인프라를 구축한 경쟁사와 개인비용을 들여 무선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는 것이다.

정 사장의 발언이 나오자 네티즌들은 냉소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SK텔레콤이 스마트폰 붐이 일면서 무선망마저 KT에 밀리는 상황이 되면서 국민편익 증대를 핑계 삼으며 무선랜을 공용화하자는 의견을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애물단지서 주력사업 인프라 한 몫
한 네티즌은 “무선랜을 위한 AP가 거의 없는 SK텔레콤이 지금까지 셀룰러망을 통해 데이터를 비싸게 팔다가 아이폰의 성공에 자극받아 공공재론을 들고 나온 것은 한마디로 무임승차하겠다는 의미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SK텔레콤 관계자는 “정 사장의 발언은 와이파이가 지방자치단체 사무실이나 공항, 기차역사 등에서 무료나 싼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 같은 성격으로 변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KT의 망을 무료로 이용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IT문화원의 김중태 원장은 “그동안 통신사들이 주파수 독점권을 갖고 수익모델을 만들어 왔다”면서 “와이파이는 기술 기준만 지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비인가대역을 사용하므로 통신사들이 독점 권한을 누릴 수 없다. 따라서 공공재적 성격이 더 강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근거리에만 한정되는 무선통신망이기 때문에 완전한 공공재적 성격이라고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이 스마트폰으로 곤경에 빠진 것과로 반대로 아이폰을 들여온 KT는 스마트폰 열풍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KT는 이미 2000억원 가량을 들여 전국 1만3000여 곳에 와이파이망을 구축한 상태이며, 이를 앞으로 1만4000여 곳에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SK텔레콤도 뒤늦게 와이파이망에 대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초 단위를 다투는 첨단 IT시장에서 한 번 뺏긴 우위는 쉽게 추월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SK텔레콤 정 사장의 ‘공공재’ 발언은 지금 SK텔레콤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아이폰이라는 ‘대박’ 상품을 경쟁업체인 KT에 뺏긴 것도 SK텔레콤에는 큰 타격이지만 스마트폰에 장착된 와이파이 기능이 기존의 ‘인터넷 사용 풍속도’를 빠르게 바꿔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대전화를 잘못 만져 무선인터넷에 연결되면 수십만원의 데이터통화료가 나왔다. 그러나 근거리무선통신망인 와이파이와 스마트폰의 결합은 소비자들에게 무선인터넷이 ‘어렵고 비싼 것’이라는 인식을 ‘빠르고 편리하고 저렴한 것’으로 바꿔 놓았다. 과거엔 통화 품질이 관건이었다면 이제는 ‘와이파이가 잘 잡히냐 그렇지 못하냐’가 관건인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확대되면서 이제는 통화 품질로만 통신 서비스를 논하던 시대가 지고 무선 데이터 품질이 통신 서비스의 우열을 가름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무선인터넷 보급률 2% 불과

SK텔레콤의 와이브로 신호를 와이파이 신호로 변환해 주는 무선공유기 ‘브릿지(LM725WR, 제조사 LG이노텍)’의 출시 모습.

그동안 와이파이는 우리나라 통신사들로부터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통신사 입장에서 와이파이는 AP가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20~50m로 그리 넓지 않아 투자에 비해 얻는 이득이 크지 않고, 무료인 까닭에 초고속인터넷이나 3G 이동통신망을 이용하지 않아도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어 그동안 주력 상품의 매출을 갉아먹을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전체 와이파이 이용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49.7%가 상용서비스에 가입하지 않고 무료로 쓰고 있는 실정이 이를 방증한다. 그동안 3G망을 깔아 놓은 통신사들에 있어 와이파이는 데이터 트래픽을 감소시켜 수익을 침해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와이파이를 이용한 무료 모바일 인터넷 전화는 이동전화와 폐쇄된 무선 데이터 서비스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던 통신사들의 이동통신 사업 기반이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관련 투자를 소홀히 하는데 한 몫 했다.

통신사들의 무선인터넷에 대한 이런 태도는 IT 강국이라는 한국을 모바일 인터넷의 ‘고립된 섬’으로 전락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한국의 무선인터넷 보급률은 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며, 휴대인터넷 이용률은 여전히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54%를 상회한다. 이는 지난해 한국의 가구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초로 80%를 넘어선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콘텐츠·서비스 따라 유료화도 가능”
무선랜 분야에서 KT가 꾸준히 서비스해 온 네스팟의 경우도 얼마 전까지 천덕꾸러기로 취급받긴 마찬가지였다. KT는 지난 2002년 ‘네스팟’이란 브랜드로 와이파이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가입자 30여 만명, 전국에 1만3000여 개 넷스팟 존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비해 SK텔레콤은 KT와 비슷한 시기인 2002년 대학가를 중심으로 ‘SK윈’(SKWIN)이란 와이파이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2007년에 사업을 접었다.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하나로텔레콤 시절에 운영하던 ‘브로드앤윙’이란 무선랜 서비스의 법인 가입자가 5만여 명이지만 사실상 영업은 중단된 상태다. KT는 그나마 무선랜의 인프라를 유지해 왔지만 SK텔레콤은 관련 투자를 아예 접은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보급이 최근 부쩍 늘어남에 따라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KT는 지난 4월 3일 유·무선 컨버전스 브랜드 ‘쿡앤쇼’를 통해 새로운 광고캠페인 ‘지금은 와이파이 시대!’를 선보였다. KT의 쿡앤쇼 브랜드 담당자는 “달라진 통신 패러다임의 대세가 지금은 ‘와이파이’임을 강조하고자 과감한 화두를 던졌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SK텔레콤도 그동안 중단한 와이파이 투자를 재개하고, 일반 폰을 포함한 와이파이 단말기를 25종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SK텔레콤은 단말기 외에 앞으로 설치할 와이파이망을 개방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러나 KT는 당분간 망을 개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미 상당수의 AP를 확보한 KT가 망을 개방하면 사실상 SK텔레콤에 좋은 일을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쟁 업체가 망 개방을 발표함에 따라 결국 KT도 조만간 망을 개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방송통신위원회 네트워크기획보호과 망고도화 담당자는 “무조건적인 망 개방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료 망이지만 이것을 어떻게 가공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유료화도 가능하다”면서 “무조건적인 와이파이망 확충보다는 통신사업자들이 좀 더 경쟁적으로 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방통위의 기본적인 정책기조”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와이파이는 공약의 ‘단골메뉴’로 떠올랐다.
3월 12일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국회에서 ‘무상 무선인터넷, 서울은 100일이 가능하다’라는 제목의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노 대표는 서울시장 취임 100일만에 서울 시내버스와 지하철에 와이파이 라우터를 설치, 시민들이 무선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경기지사에 출마하는 같은 당의 심상정 전 대표를 비롯해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에서도 무선인터넷과 관련한 공약을 발표할 예정이다. 스마폰의 대중화로 이제 와이파이는 통신사들이 거부할 수 없는 필수 투자로 대두됐다. ‘개방’과 ‘공유’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와이파이가 현재까지 통신사업자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기능으로 보이지만 와이파이가 무선 인터넷 접속 방식에 개방화 바람을 촉진하고 유·무선 통합서비스를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통신사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개방과 공유’ 근거리 무선 데이터통신망

와이파이는 ‘Wireless Fidelity’의 약어로, 무선접속장치(AP)가 설치된 곳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 이내에서 PDA나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근거리무선통신망을 말한다. 비인가 전파대역인 2.4㎓ 고주파를 쏘아 인터넷망을 열어 주고 무선주파수를 이용하기 때문에 전화선이나 전용선이 필요없다. 스마트폰이나 PDA, 노트북 컴퓨터에는 무선랜카드가 장착돼 있어야 한다. 전송속도가 4∼11Mbps로 대용량의 멀티미디어 정보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장시간 사용해도 사용료가 저렴하고 이동성과 보안성까지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에 와이파이 기술을 채택해 무선인터넷 사용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