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선거법 93조 1항’왜 못 고치나

시대착오적 규제로 ‘소통의 도구’ 가로막아

트위터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UCC 논란 때도 공직선거법 93조 1항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 관련 지적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우리도 인터넷 환경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재 법령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한다. 하지만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중앙선관위로서는 기존 법령에 근거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3일 과천 중앙선관위에서는 공명선거 구현을 주제로 관계기관 회의가 열렸다. |연합뉴스

93조 1항은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UCC나 트위터를 통해 글을 쓰는 것은 이 가운데 어디에 해당할까. 답은 ‘그밖에 이와 유사한 것’이다. ‘단순한 지지나 비판 의사표명 등은 허용’ 등의 지침을 선관위가 내고 있지만 이 규정대로 하면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각종 활동은 규제로 흐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도 트위터 규제 반대 목소리
정치권도 “법 개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 측은 “도아 트위터 사건 등에서 선관위의 고충도 이해한다”면서 “여야가 함께하고 있는 정치개혁특위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는 있었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성훈 한나라당 디지털정당위원회 위원장은 “돈을 들이지 않고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디지털 수단을 규제하는 것은 시대 변화에 맞지 않다”면서 “지난 3월 17일 열린 ‘트위터와 선거법’ 토론회에 참여한 정두언, 강승규 의원 등도 트위터와 같은 변화된 상황에 맞게 선거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지난 2월 24일 국회에서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임시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업무현황 보고가 있었다. 핫이슈는 트위터였다. 그러나 행안위 소속 모든 의원은 트위터가 구체적으로 어떤 서비스인지 잘 모르는 듯 했다.

“이은재 위원:…(중략)그러면 이 트위터의 장점은 뭐냐,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은 팔로우가 돈을 내도록 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이기선: 핸드폰으로 받을 경우는 자비로 합니다. 이은재 위원: 그렇게 했을 경우는 결국 팔로우가 핸드폰으로 돈을 내기 때문에 아무나 받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무작위로 그냥 원하든 안 원하든 지금 완전히 공해입니다. 문자 공해예요.…”

공개질의 선관위 “우리 소관 아니다”?
질문이나 답변을 좋게 해석하면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하면 비용이 지출한다는 뜻이 되겠지만 둘 다 동문서답이다. 선관위 사무총장이나 이 의원이나 “휴대전화 문자와 비슷한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기선 사무총장은 다른 의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이메일과 유사한 개념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트위터를 사용하는 김유정 의원은 이 사무총장에게 “트위터를 한번 사용해 보시라”고 권했다. 이 사무총장은 “한번 활용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날 행안위에서 트위터가 이슈가 된 것은 선관위가 2월 12일 ‘선거 관련 트위터 이용 가능 범위’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제시 안에서 언제든지 할 수 없는 행위로 ‘19세 미만의 자 등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내용을 게시하는 행위’를 든 것 등은 의원들의 집중 비판을 받았다. 이메일 정보만으로 가입할 수 있는 트위터에서 연령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단속할 가능성도 없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3월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트윗보터 파티’에서 트위터 사용자 100여 명이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트위터 규제 완화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관위는 위원들의 합의제 기관이다. 위원 가운데 이런 문제를 지적한 사람은 없었을까. 선관위 관계자는 “트위터 관련 결정은 1월 정기위원회 회의에서 보고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토론이 있었는지 여부는 비공개다. 외부의 공개 비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지난 2월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규제의 법적 근거를 묻는 공개질의서를 선관위에 냈다. 질의서를 쓴 황영민 간사는 “선거를 앞두고 시민이나 누리꾼이 너무도 궁금해할 사항이었지만 15일만에 돌아온 답변은 너무나 성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UCC 판결과 관련 헌법재판소에서 5명의 재판관이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위헌 의견에 관한 선관위 판단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 위원회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고 답했다. ‘트위터와 선거법’과 관련해 한나라당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강장묵 세종대 정보통신공학과 소속 교수는 선관위의 트위터 규제는 ‘월권’이라고 단언했다. “이를테면 메신저를 보라. 투표 날 메신저를 통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자는 행위는 잡아내지 못한다. 현실의 법과 디지털 공간이 충돌하는 영역을 커버도 못하면서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겁주는 것에 불과하다.” 강 교수는 “디지털을 매개로 한 소통의 도구가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활용해 어떻게 정치사회적으로 국격을 올릴까 논의해야 할 판에 쓸데없는 논의로 발목을 잡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기선 사무총장은 국회 답변에서 “트위터를 규제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오해가 있다. 우리도 트위터의 순기능을 잘 알고 있고, 이번 선거에서 트위터를 이용해 홍보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그 실태는 어떨까. 3월 17일자 선관위 보도자료를 보면 “전담 부서를 마련해 선관위 SNS 공식계정을 운영하는 한편 홈페이지를 운영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 ‘전담 부서’는 선관위 관계자에 따르면 지도2과다. 4월 2일 현재 트위터의 SNS 공식계정으로 올린 글 수는 48건. 선관위에서 평균 잡아 하루 3, 4건 남짓 트위터 사용자와 ‘소통’한 셈이다. 홈페이지 게시 건수는 개설 후 현재까지 4건에 불과하다. ‘전담팀’까지 마련한 것치곤 개인이나 기업 트위터·블로그의 평균 활동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소통량’이다.

공직선거법은 6월 2일 지방선거 이전에 개정이 가능할까. 일단 147명의 국민소송단이 93조 1항에 대해 낸 헌법소원은 현실적으로 6월 2일 이전에 결론나기가 어렵다. 참여연대 등이 지난 2007년 대선 UCC 관련으로 낸 위헌소송도 언제 결론이 날지 기약할 수 없다. 정동영 의원 등이 낸 ‘93조 1항 개정안’은 47명의 야당 의원들이 동의했지만 이 역시 언제 관련 위원회에 상정될지 알 수 없다. 여·야 의원 가운데 선거법 개정에 문제의식을 가진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공동발의할 수는 없는 걸까. 정 의원 측에서는 “개정 법안을 내면서 299명 의원 전원에게 안을 돌렸지만 최종적으로 발의에 참여한 의원은 야당의원 47명뿐이었다”고 말했다. 김성훈 한나라당 디지털정당위원회 위원장은 “이전보다 관심은 늘었지만 아직도 트위터 등 SNS에 대해 잘 모르는 의원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한계를 인정했다. 참여연대 황영민 간사는 “정개특위가 4월까지 연장됐지만 현재 이 사안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의원은 그리 많지 않다”면서 “현실적으로 이번에 법 개정이 안 되더라도 법 개정 여론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때나 변화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