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트위터 공안 ‘제2의 미네르바’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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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위반 혐의 받는 ‘도아’… 정부 날선 비판으로 표적수사?

아침부터 내린 비는 보슬비로 바뀌었다. 충북 충주시의 주택가 골목. 전화를 했다. “금방 나가겠습니다”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윽고 우산을 든 남자가 나왔다. 그의 소개를 받아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은 골목 모퉁이의 허름한 건물 1층에 있었다. 외형만으로는 원래 사무실의 용도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바랜 선탠 글씨는 오래 전에 떨어져 나가 있었다. 10평 남짓한 사무실. 벽면에는 책장이 있었다. PHP, UNIX 관련 도서와 IT 원서가 죽 꽂혀 있었다. 사이사이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같은 인문교양서가 꽂혀 있었다. 케이블선이 어지럽게 노출돼 있다. 탁상 위에 놓은 두 대의 컴퓨터는 낮은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남자는 “커피라도 한잔 하시라”며 물을 내렸다. 그는 커피를 타며 뒤돌아서서 한숨을 쉬었다. “결국 제가 미네르바 처지가 될 지도 모르겠군요.”

김재근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김재근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김재근씨(45·프리랜서 IT 개발자). 실명보다 IT블로거 ‘도아’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올 게 온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 수만명 방문하는 인기 블로거
그의 블로그 ‘도아의 세상 사는 이야기’(offree.net)는 포털에서 개설한 블로그가 아니라 설치형 독립 블로그로는 쉽게 얻기 힘든 하루 수만의 방문자를 끌고 있는 인기 블로그다. 그가 쓴 글은 메타블로그 사이트, 즉 블로그에 대한 정보가 게시되는 올블로그에서 ‘24시간 내 가장 많이 추천받은 글’ 랭킹에 자주 올랐다. 블로거들 사이에서 그는 그쪽 용어로 ‘구루(정신적 스승)’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올 게 온 것’이라고 하는 건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시사문제에 대한 그의 발언이 주목을 받으면서부터다. 그의 논평은 날카로웠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그의 비판은 매서웠다. ‘독설’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글을 쓰는데 있어 사실과 근거를 중시하는 그의 태도가 주목을 받았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당시 그는 ‘이명박 정부 퇴임시계’ 배너를 만들어 배포했다. 퇴임일로부터 D데이를 역계산해 보여 주는 플래시파일이다. 그는 적극적이었다. 구글 애드센스에도 광고했다.

그가 ‘미네르바의 처지가 될 지도 모르는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3월 22일 그는 자신의 트위터(@doax)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원하는 경기도지사 단일화 후보는?(@jinpyokim, @leejongkul, @sangjungsim, @u_simin) http:// twtpoll.com/ u4h8mk #twtpoll 투표 뒤 무한 RT.”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를 잘 모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풀이하면 “트윗폴이라는 트위터 기반의 인터넷 투표 시스템에서 @jinpyokim(김진표), @leejongkul(이종걸), @sangjungsim (심상정), @u_simin(유시민)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지를 두고 투표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해 달라”는 말이다. 유의해야 할 것은 도아의 말은 자신의 ‘팔로어’를 향한 말이라는 것이다. 언급한 정치인들은 모두 트위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자신이 경기지사 후보를 고르는 투표를 해 보자는 것이다. 도아가 하루에 올리는 글 수는 평균 20~30건. 그는 이 투표 결과의 진행 상황을 소개하며 투표해 보자는 글을 두세 차례 더 팔로어들에게 남겼다.

김재근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트위터를 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김재근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트위터를 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3월 23일 그는 nec3939라는 다른 트위터 사용자로부터 ‘멘션’(언급)을 받았다. 그가 처음 받은 멘션은 ‘조사지역, 일시, 방법, 표본오차율, 응답률, 질문 내용을 함께 공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답은 이랬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트윗을 올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슨 재주로 지역, 일시를 알릴 수 있나요? 트윗을 올려도 알고 올리기 바랍니다.’ 다음은 도아의 설명이다. “다 알다시피 트위터에서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트윗폴의 기능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저런 이야기를 못할텐데….” 그런데 돌아온 답은 nec3939가 중앙선관위의 트위터라는 것이다. 도아의 대답은 여전히 까칠했다. “먼저 님이 선관위라는 것을 입증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이 연행하려면 신분증부터 보이죠. 신분증부터 제시해 주세요.” 공방은 이어졌다. nec3939는 신문기사를 참고하라고 했고, 도아는 자신의 블로그에 ‘돈은 풀고 말은 막는 선관위(트위터 단속)’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런 사실을 공개 비판했다. 선관위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SNS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규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nec3939는 중앙선관위의 트위터가 맞다. 중앙선관위가 낸 보도자료를 보면 “nec3939라는 트위터 계정을 운용할 예정”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증명이 필요하다고 도아는 밝혔다. “누군가 선관위와 유사한 계정을 만들어 선관위를 사칭해 사람들에게 글을 삭제하라고 하고 다닌다면요? 이것은 결국 트위터 여론을 왜곡하려는 불순한 시도이지 않겠습니까.” 비슷한 사례는 과거에 얼마든지 있다. 이 대통령이 미국에서 트위터를 언급한 뒤 자신이 이 대통령을 자임하는 트위터가 여럿 나타났다. 그 가운데 명칭만 봐도 패러디 내지는 풍자라는 것이 명확한 경우도 있었지만 실제 청와대에서 올리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사칭트위터’도 있었다. 허경영씨도 실제 트위터를 운영하지 않았지만 한때 누군가 그럴 듯하게 만들어 운영하는 것처럼 잘못 알려지지 않았는가. 도아는 외국 사례처럼 미국에 있는 트위터 본사에 연락, 인증받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가 스스로 운영하는 트위터라면 그렇게 못할 이유는 또 뭐냐는 논리다.

트위터 관련 최초 선거사범 될 것인가
공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아는 중앙선관위가 정해 준 삭제 시점인 3월 26일 해당 트윗폴을 삭제했다. 그런데 그날 오전에 서울경찰청에서 연락이 왔다. “선관위에서 삭제하라고 해서 삭제했는데 왜 수사를 하냐고 물었어요. 경찰의 말은 선관위에서 고발하지 않았고, 자체적인 인지수사라고 하더군요.” 트위터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트위터 사용자는 이 케이스를 주목했다.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서 공대위가 꾸려지고 관련 정보는 ‘무한RT’됐다. 그가 이번 건으로 처벌받게 된다면 최초의 트위터 관련 선거사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번 케이스가 ‘표적수사’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명박 퇴임시계 건도 그렇지만 촛불시위 과정에서 그는 이명박 정부 이후 역대 경찰청장에 대한 비판게시글을 여러 건 작성했다. 이 측면에서는 기획재정부를 비판하다 결국 고소당한 미네르바를 닮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는 자신의 신분과 얼굴을 거리낌 없이 밝혀 왔다는 점이다. 그는 MBC <PD수첩> 등 시사 프로그램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 시사토론 프로그램에도 패널로 참석했다. 정동영 의원 등이 주도한 공직선거법 93조 헌법소원 국민소송단에도 기꺼이 참여했다. “이전에 <PD수첩>에서 촬영할 때도 오신 분이 얼굴을 공개할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제가 그랬습니다. ‘내가 죄진 것이 없는데 공개 못할 이유가 뭐냐’고요. 다른 방송에서도 얼굴에 모자이크로 처리할까 라고 물었는데 오히려 그러면 뭔가 캥겨 범죄적 뉘앙스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대로 내보내라고 했어요. 나중에 달린 댓글을 보니 ‘참 용감하다’는 말을 하더군요. 바로 다음에 이어 나온 말이 ‘이런 것을 하는게(얼굴과 실명을 밝히는 게) 용감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탄식이었어요.”

문득 드는 의문. 그는 왜 시사나 정치문제에 관심을 가질까. 정치적 이념 때문? “원래 무당파입니다. 정당 같은 데 가입하지 않은 이유가 특정 정당에 가입하면 아무래도 그 정당의 입김에 좌우될 수 있거든요.” 그의 본업은 IT 관련 종사자다. 그는 운영체제와 관련된 정보를 다루는 QAOS라는 사이트를 1996년부터 운영해 왔다. 인터넷에서 유지되는 개인 커뮤니티로는 가장 오래됐다. 최근의 관심은 ‘아이폰’이다. 블로그에 올리는 아이폰과 관련한 강좌나 다운받을 수 있는 무료 애플리케이션 글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IT에 대한 관심은 대학 전공의 연장선이다. 85학번으로 대학을 들어갔다가 1986년에 재입학했다. 대학을 다닐 당시 그는 운동권이 아니었다. 

3월 25일 국회에서는 트위터 단속의 근거가 되는 공직선거법 93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정치권과 국민소송인단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근씨(뒷줄 오른쪽 첫 번째)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3월 25일 국회에서는 트위터 단속의 근거가 되는 공직선거법 93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정치권과 국민소송인단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근씨(뒷줄 오른쪽 첫 번째)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당시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은 저를 ‘사쿠라’ 취급을 했을 거예요. 제가 그때 주장한 게 ‘학생운동을 하기 전에 가정운동부터 하라’는 것이었거든요. 세상을 바꾸려면 부모 마음부터 얻어야 하는 게 아니냐, 학사경고를 받는 걸 학생들 자르는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말하기 전에 공부를 더 하라는 것이 제 주장이었어요. 지금에 와서 보면 그때 학생운동을 한 친구들보다 제가 더 왼쪽에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당시 마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그 친구들은 학생운동 후 기득권 층에 편입됐고….”

“특정 정당에 가입하지 않은 무당파”
그는 현 정부가 민주주의에 대해 퇴보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의견만 나온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죠. 서로 다른 의견이 나와 절충해 가는 것, 그런 절충의 기법이 늘어나는 것이 민주주의가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보수매체는 그걸 국론분열이라고 떠들었어요. 정치적 견해는 언제든지 다를 수 있어요.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핍박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현 정부는 대통령이 결정한 것을 따르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말하는데 두려움을 덜 느끼는 사람만이 남아 이야기하는 거겠죠.”

첫 대면 수사는 4월 5일이다. 그가 어떤 처벌을 받을지, 무혐의 처분을 받을지 아직 알 수 없다. 확인한 결과 nec3939는 중앙선관위 지도2과가 관리하고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지방경찰청에 알아보니 (도아의 트위터 글은) 선거법 108조 3항, 4항, 5항에 위반된 사항으로 보고 자체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 부서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2팀이다. 경찰 쪽은 ‘트위터 공안 기획수사’를 부인했다. 안티이명박 카페 사건 등 ‘촛불공안’ 사건은 그동안 3팀이 전담했다. 2팀은 트위터 건뿐만 아니라 인터넷 선거사범 사건을 전담 수사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입건 내지 기소로 이어지면 최초의 트위터 관련 공안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김씨는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될 것이며, 아직 조사도 안했는데 미리 언급할 내용은 없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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