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수입업계 “정부 협상 잘못 불신 초래”

한중, 미트엠, KOSCA, 이네트, KRSC가 수입 육류시장 빅5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해 어떤 취재도 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커지면서 ‘빅5’업체로 지목된 한 회사 언론 담당자의 말이다. 나머지 회사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수입 재개와 관련해 최근의 상황이 무척 부담되는 눈치다.

흔히 미국산 쇠고기 판매 업계에서 ‘빅5’로 꼽히는 업체는 한중, 미트엠, KOSCA, 이네트, KRSC 다섯 개 업체다. 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 정도 규모다. 업계에서는 ‘빅5’인 이들 업체의 위상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미국산 쇠고기뿐 아니라 호주·뉴질랜드 등 기타 수입육류시장에서 이들은 큰손이다. ‘빅5’ 중 한 업체 관계자는 “공식적인 집계는 없지만 다섯 업체가 전체 시장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메이저업체를 20개 내지 30개로 본다면 시장의 70~80%를 30개 정도의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수입 유통업체는 1000여 개로 추산된다.

그러나 근래 업계의 판도가 바뀌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역시 ‘빅5’ 중 하나로 거론된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2000년 초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시장판도를 보면 필봉이나 제니스유통·하이푸드 등 다른 업체가 우위에 선 걸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전체 수입 유통업체 1000여 개로 추산
업체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집착하는 이유는 물론 남는 장사기 때문이다.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서양 사람과 한국 사람은 고기를 먹는 방법이 다르다. 저쪽은 로스나 양념소스를 해먹는 것을 즐기지만 우리나라는 직화(直火)를 선호한다. 빨간 살에 지방이 분포하는 것을 ‘마블링’이라고 하는데 호주산은 이 상태가 썩 좋지 못한 편이다.”

‘빅5’업체의 지방지사에 근무하는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우의 질을 평가할 때도 ‘꽃’이 얼마나 잘 피어 있는가, 즉 지방이 얼마나 골고루 분포해 있는가를 놓고 보는 ‘마블링’이 기준이 되는데 과거 호주산은 질이 상당히 낮았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산은 마블링 상태가 좋은 편이고, 그래서 한국 사람의 입맛에 더 맞았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는 “미국산이 수입되지 않았을 때 한국 업계의 요구로 호주산도 상당히 개량됐고, 현재 가격 차이가 별로 나지 않기 때문에 설령 미국산이 10~20% 싸게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얼마만큼 팔릴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업체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선호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원하는 부위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중견 수입유통업체 관계자 ㄱ씨는 “이를테면 소 한 마리를 잡았을 때 안창살은 1㎏ 남짓밖에 안 나오는데, 그 많은 쇠고기 전문점이 어떻게 이 수요를 맞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호주산이나 뉴질랜드산은 회사마다 품종이 다르고 복잡하기 때문에 수입도 까다로운 편이지만 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수출하는 미국의 경우 얼마든지 부위별로 구입할 수도 있고, 또 마진도 괜찮기 때문에 수입업계가 선호한다는 것이다.

“수입육뿐 아니라 한우도 망하고 있다”
이번 쇠고기 추가 협상에 대해 이들 수입상의 평가는 시큰둥하다. ㄱ씨는 “쇠고기의 경우, 구매자와 판매자의 갑을(甲乙) 관계가 이전부터 역전됐고, 이번 협상으로 그 지위가 바뀌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전 세계적으로 식품이나 음료·쌀 등 주식 관련으로는 항상 구매자가 아닌 공급자가 점점 더 주도권을 행사하는 갑(甲)의 역할을 가졌는데, 쇠고기는 일찍부터 그런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 육류업체에도 반도체의 삼성, LG처럼 메이저 브랜드가 있는데 엑셀, 스위프트, 타이슨 푸드가 바로 그들”이라면서 “문제는 이들 업체로부터 물건을 들여오려면 끼워 팔기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LA갈비를 구입하려면 다른 부위도 덤을 구입해야 한다는 식이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번 추가협상의 결과로 끼워 팔기가 없어지기를 기대하지만 실제 어떻게 될지는 가봐야 한다”면서 “국내 업체들도 구입처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업계 관계자는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광우병 위험 주장은 다소 과장됐다는 데 대체로 인식을 같이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협상 과정이나 능력에 좋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다. 익명을 전제로 한 ‘빅5’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처음부터 제대로 해 진짜 ‘20개월 미만만 들여오겠다’고 못박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면 사람들이 시위에 나선다거나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협상이 빨리 끝난 거 저희도 좋죠. 하지만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입육뿐 아니라 한우도 망하고 있어요. 곰탕·설렁탕 집·고기 집 모두 파리 날리고 있지 않습니까. 애들이 학교에 가면 ‘너네 아빠 광우병 쇠고기 수입한다며?’라고 친구들이 물어와 가슴에 멍이 들었습니다. 수입업자들도 먹고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디 가서 함부로 의견도 못 내고 가슴앓이를 하고 있어요. 이건 누가 책임질 겁니까.”

눈치보는 대기업 유통업체
“안전성 공감되면 수입”

대기업 관련업체로는 롯데마트를 비롯해 롯데계열사를 주요 미국산 쇠고기 판매업체로 지목하기도 한다. 미국육류수출협회(USMEF)가 2007년 10월 작성한 ‘한국쇠고기 시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2007년 초 한국시장이 열렸을 때 이들 업체가 미국산 쇠고기의 소매점 유통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면서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3대 할인점도 다른 경쟁국보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익률이 더 좋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롯데마트 관계자는 “지금 현재로서는 (미국산 쇠고기는) 보관하는 것도 없으며 판매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일부 정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약 40t가량을 판매했지만 8월에 검역에 걸려 중단했고, 또 추석은 한우 매출이 중심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판매된 기간은 없었다”라면서 “일부 네티즌이 ‘7월 13일부터 판매 개시한다’는 지난해 기사를 퍼오면서 그게 올해로 착각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마트도 비슷한 설명을 내놓았다. 이마트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을 때까지는 미국산 쇠고기를 가져올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안전성에 대한 공감대가 생기면 재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