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돈 물려주는 건 자녀를 망치는 일”

장학재단 만들어 솔선수범하는 조용근 한국세무사회 회장

조용근 회장은 건전한 기부가 삶의 질을 바꾼다고 강조한다.

"자녀교육은 아버지가 모범을 보이면 저절로 됩니다. 특히 아이에게 자긍심을 높여주는 모범을 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자긍심을 높여주기에는 남을 돕는 봉사활동이나 기부만한 게 없어요. 장학재단이라도 만들면 금상첨화지요. 대부분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물려주려고 애쓰는데 그게 자녀를 망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물려주기보다 ‘정신’을 물려주어야죠. 저는 장학재단을 만들어 대대로 대물림하려고 합니다.”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조용근(62) 한국세무사회 회장은 공직자 출신으로는 드물게 나눔과 봉사에 열정적인 모범을 보이고 있다. 국세청 공무원 시절부터 봉사에 앞장서 다일공동체 밥퍼 명예본부장, 소망의 집 후원회장, 샘물 호스피스 자문위원, 복지TV운영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공직자로서는 드물게 15년 전에 이미 장학회를 만들었다. 그는 국세청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던 1994년 ‘석성장학회’를 설립했다. 부모님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 ‘석성’으로 지었다고 한다.

“부친은 직조공장 기사로 일하면서 평생 가난하게 사시다 1984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유산으로 조그마한 집을 물려받았지요. 집을 팔아 그 돈을 저축해 10년 동안 굴렸더니 2억2000만 원으로 불어났어요. 물론 재테크를 할 수 있었지요.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 아내와 상의 끝에 평생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신 부모님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조 회장은 2005년 대전지방국세청장을 끝으로 38년여에 걸친 세무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퇴직금도 장학회 기금으로 출연해 현재 기금은 6억5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그가 운영하는 세무법인에서도 매년 매출의 1%를 석성장학회에 기부하고 있다. 최근 장학금으로 정기예금 이자 등을 합쳐 8140만 원을 내놓았다. 절반은 국세청 직원과 그 자녀에게, 나머지 절반은 일반인에게 돌아갔다.

장학금 절반 국세청 직원 자녀에게
국세청 직원은 대부분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묻자 조 회장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흔히 국세청 직원이라고 하면 부자로 살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요. 국세청 직원 2만 명 가운에 집이 없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암 투병으로 가족이 모두 힘들게 살아가는 이도 있고요. 저도 한편으로는 놀랐습니다.”

위_ 조용근 회장이 30년 동안 쓴 저금통. 아래_ 조 회장(왼쪽)이 강신호 전 전경련 회장과 함께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그래서 조 회장은 장학금의 절반을 국세청 직원 자녀들의 몫으로 정했다. 우선 자신이 근무한 조직원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조 회장은 “후배들이 세무공무원으로서 부패하지 말고 청렴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당부도 들어 있다”고 말했다.

석성장학회가 더 돋보이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장학회가 자녀교육의 산교육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작은 유산이 밑거름이 돼 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장학회를 20억 원 정도로 만들려고 합니다. 당초에는 10억 원으로 늘리려 했는데 주위에서 많이 후원해주셔서 액수를 더 높였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딸에게도 기금을 보태려고 제안했어요. 한 번은 아들과 딸에게 ‘너희들도 장학회에 각각 5억 내지 10억씩 더 보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미래에 손자손녀들도 기금을 보태 대대로 이어질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제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건가요?”

그렇지만 조 회장의 욕심은 칭찬해주고 또 칭찬해주어야 하는 욕심이다. 그런 욕심은 이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한다. 조 회장은 “석성장학회는 다른 사람을 돕는 ‘선순환’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조 회장은 치과의사가 된 딸 수빈(27)씨가 첫 월급으로 받은 돈 가운데 200만 원을 장학금에 보태라고 내놓아 감동받았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이 번 돈도 모자라 부모에게 돈을 타 쓰는데 딸아이는 첫 월급을 선뜻 내놓았어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딸도 첫 월급을 장학금으로 기탁
조 회장이 장학회를 만들고 봉사활동을 하자 아들과 딸도 모범적으로 자라주었다. 아들 성제(28)씨는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고 딸도 경희대 치대에 입학했다. 조 회장은 “자녀교육에 가장 큰 보약은 바로 부모가 올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인 것 같다”고 강조한다. “부모가 하는 일을 보고 ‘우리 부모님은 괜찮은 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만 들게 하면 자녀교육은 성공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조 회장은 이를 ‘자긍심 교육’이라고 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나아가 사회와 국가에서도 자긍심을 높여주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특히 기부를 하면 단순히 세금을 얼마 공제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그런 정책을 펴야 합니다.”

조 회장은 기부나 선행이 활성화되려면 이른바 ‘사회공헌 마일리지’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부나 선행을 하고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기부문화가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극소수 사람은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을 수 있지만 이를 전 사회적인 문화로 정착시키려면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회공헌 마일리지가 높은 사람은, 예를 들면 공항 출국 때 기업인들이 우대받는 것처럼 VIP로 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사회공헌 마일리지와 같이 뜻을 아름답게 해주면 국민들이 선행을 절로 하게 된다”며 그것이 바로 ‘선행의 선순환’이라고 강조한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선행을 하게 하는데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뒷받침돼야 전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공동체 의식이 더욱 높아지고 사회의 어둠을 몰아내 다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조 회장이 봉사와 장학회 활동에 열성적인 까닭은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다섯 살 때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했고, 그때 한 살 어린 동생은 결국 죽었다고 한다. 초·중·고에 다닐 때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단 한 번도 수학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그가 석성장학회를 만든 것은 어린 시절의 응어리 때문이다. 석성장학회에서 장학금을 주는 기준은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경우’, 단 한 가지라고 한다.

조 회장의 사무실 책상에는 30년 된 낡은 저금통이 있다. 그는 이 저금통에 틈나는 대로 ‘먹이’를 준다. 또 고객들이 오면 상담료도 자율적으로 내게 하는데, 그 돈은 필리핀 언청이 어린이를 초청해 수술해주는 데 돕는다.

조 회장은 최근 지인이 전해준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어느 날 아내가 쓴 가계부를 봤는데, 눈을 의심할 정도의 표현을 발견했답니다. 아내가 시골에 사시는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10만 원 주었는데, 글쎄 ‘촌년 10만 원’이라고 적어놓았다고 해요. 그 남편은 바로 처갓집에 달려가 장인·장모에게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냐며 한바탕 소동을 벌였답니다. 참 기가 막히지요.”

교육

조 회장을 살아 있는 교육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귀감이라고 불러도 과찬은 아닐 것 같다.

최효찬<객원기자·자녀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