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불평]미술과 미술관을 비웃은 마르셀 뒤샹

국립현대미술관이 사상 최고가에 구입한 마르셀 뒤샹의 '여행가방 속 상자'.

여행을 좋아했을뿐더러 지구가 전쟁에 휘말려 있던 시절 파리로, 뉴욕으로 옮겨다니던 마르셀 뒤샹은 아주 새로운 개념의 미술작품을 고안했는데 이것이 바로 요즈음 논란에 휘말린 ‘여행가방 속의 상자’다.

변기를 오브제로 사용한 ‘샘’을 비롯해서 자신의 작품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가죽가방 안에 넣은 뒤 열어보게 만든 이른바 ‘휴대용 미술관’인 셈이다. 이 작품은 1941년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총 7종 300여 점을 제작해서 많은 미술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며 가끔 인터넷에서도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뒤샹의 ‘여행가방 속의 상자’를 구입한 것은 2005년인데, 당시 제기된 의문점들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62만3000달러라는 거액을 지불했다고 해서 뒤샹이 생전에 만든 디럭스급 작품인 줄로 알았는데 보도를 보면 그게 아닌 모양이다.

우선 고가의 미술품을 미국에서 대리인이 직접 ‘들고’ 왔다고 한다. 만약 심의 결과 ‘소장 불가’로 나오면 미국으로 되돌아가야 할 상황이다. 큰돈을 들여 6억 원 상당의 작품을 과연 보험도 없이 휴대하고 들어오는 모험을 한 배짱 좋은 소장가는 누굴까. 또 보험조차 들지 않은 작품이라면 정말 가치가 있는 작품일까. 고가의 미술품답게 전문운송업체에 의뢰해 완벽하게 운송하지 않았을까. 혹시 한국에 이미 오래전에 들어와 있던 작품은 아닐까 하는 의문은 이래서 시작된 것이다. 또 세관에 신고조차 하지 않은 작품을 구입했다면 국가기관인 미술관이 밀수에 공조한 셈이다.

또 다른 의문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구입한 작품의 등급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뒤샹의 ‘여행가방 속의 상자’는 A부터 G까지 7등급으로 분류되며 등급에 따른 가격 차도 하늘과 땅 차이다. 호주국립미술관이나 굴지의 미술관인 워커아트센터는 F급을 소장하고 있다. 아마도 ‘명품’이라는 ‘디럭스’급은 고가일 뿐 아니라 작품을 검증하기도 어렵고 ‘원작이라는 미술의 개념을 조롱’하는 뒤샹의 미학 때문에 굳이 비싼 A급을 소장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구입한 작품이 Aa급이라니 참으로 다행이다. A급에는 69점의 미니어처 또는 복제품이 들어 있는 상자가 가죽가방에 들어 있고 XX/XX식 로마자 에디션 넘버와 작가의 서명이 있다. A급과 B급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가방의 유무와 색깔 그리고 내용물 수가 69개냐 68개냐다.

문화불평

그런데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은 가죽가방이 없어 B급인데 내용물은 69개로 A급이다. 웬 조화일까. 가방이 없는 A급이라면 중요부분이 망실된 작품인데 이를 6억 이라는 고가를 지불하고 구입한 셈이다. 또 가방이 없어 B급이라면 가격은 33억 원 정도가 적정하다. 미술관은 지금까지 이 작품을 ‘A급’에 준하는 ‘B급’이라고 발표해왔다. 그러다 문제가 불거지자 Aa급이라고 말을 바꾼 듯하다.

조은정〈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