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반사회적 외톨이 우리 곁에 많다

분노·증오심 증폭되면 인격이상 초래… “세상이 밉다” 복수 꿈꿔

은둔형 외톨이 중 조승희처럼 범죄까지 저지르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사진은 버지니아공대 캠퍼스에 마련된 조승희 추모석 옆에 무릎을 꿇은 한 여성.

2000년 5월 명문대 재학생인 이모씨가 부모를 토막살해한 뒤 그 주검을 집 부근 쓰레기통에 버린 엽기적 사건이 일어났다. 언론은 ‘막가파 패륜아’라며 대서특필했고 사람들은 그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씨에 대한 동정 어린 시선이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가 성장하면서 아동학대와 집단따돌림을 당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훈구 연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이씨의 인생 자취를 좇아 2001년 펴낸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에 따르면 이씨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잦은 폭력에 시달렸다. 그의 부모는 아이가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집어던지고 만화를 그린다고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또 늘 남들과 비교하고 성적과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광적인 히스테리와 폭력을 행사했다.

“주변 사람들이 따돌린다” 피해망상

이런 환경은 아이를 소심하고 자폐적인 청소년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중·고등학교와 군대시절엔 왕따를 당했다. 그가 부모를 토막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직후 울부짖으며 한 말은 “○○○을 죽이고 싶어요”였다. ○○○은 중·고등학교 시절 이씨를 집단따돌림한 친구다. 대학 시절 그는 집에 틀어박혀 비디오와 게임에만 몰입했고 특히 여자를 두려워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열흘 전 그는 난생 처음으로 그 동안 맺힌 것을 어머니에게 따졌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는커녕 부모가 합세해 그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좌절감에 사로잡혀 열흘간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열흘 후 갑자기 망치를 보는 순간 어떤 무의식적인 이끌림에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경찰서 진술에서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라며 울먹였다. 그의 형은 재판정에서 “부모님이 직장 상사가 부하에게 보이는 작은 배려와 관심만 보여줬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언해 방청객의 눈시울을 젖게 했다. 당시 피의자 이씨가 심취한 영화를 통해 이씨의 심리상태를 분석한 심영섭씨(심리학자·영화평론가)는 “이씨의 범죄는 분노, 증오심의 전형적 발현”이라며 “추측이긴 하지만 이씨는 환청도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은둔형 외톨이가 조승희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외톨이 중 망상장애나 정신분열 등 정신장애를 겪거나 이상성격을 지닌 극히 일부가 조씨처럼 가슴 속에 분노를 품은 채 세상을 향한 복수를 꿈꾼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외톨이는 타인에 대해 스스로 무관심해 혼자 지내는 경우와 왕따 등 타인에 의해 혼자가 된 경우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조승희처럼 범죄로 발전하는 반사회적 외톨이는 타인에 무관심한 외톨이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또 “조씨는 정신분열이나 피해망상 둘 중 하나가 의심된다”며 “조씨와 같이 반사회적 외톨이는 남이 자신을 왕따를 시켰다고 주장하지만 대다수는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조승희와 같은 경우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따돌리고 비난한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하는 동시에 사회에 적개심을 가진다”며 “어려서는 학교나 친구가 적이고 성장하면 세상 전부를 자신의 적으로 규정한다”고 말했다. 표 교수는 또 “그들은 주변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자기를 욕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실제 환청을 듣기도 하면서 세상을 향해 보복할 날을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마약·본드 흡입, 망상·환각 심해

연쇄살인범 유영철(왼쪽)과 정남규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타인을 해쳐도 자책감을 느끼지 않는 전형적인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다. <경향신문>

조씨처럼 참혹한 범죄로까지 발전하는 반사회적 외톨이는 의학적으로 인격(성격형성)의 이상이나 결핍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격의 이상은 질병이 되는 것으로, 약물 및 알코올 남용이나 망상장애, 정신분열 또는 뇌손상 등에서 비롯한다. 우종민 교수는 “예를 들어 망상이나 환각이 심해도 살상을 비롯한 이상행동을 할 수 있는데, 마약이나 알코올, 본드 흡입 등이 흔히 이런 결과를 불러온다”고 설명했다.

결핍은 크게 세 가지. 성장기에 습득해야 할 윤리의식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심 등이 형성되지 않아 다른 사람을 해쳐도 자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한 가지다. 희대의 연쇄살인범인 유영철과 정남규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 정서적·감정적 안정성이 부족해 감정기복이 심하고 히스테릭한 성격을 가진 경계선 인격장애도 결핍에 해당하고, 충동조절 능력의 결핍으로 갑자기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돌발적 행동을 하는 사람도 여기에 속한다.

분노를 품은 채 복수를 꿈꾸는 반사회적 외톨이가 보일 수 있는 범죄행태는 다양하다. 1992년 서울 여의도광장으로 택시를 질주해 어린이 등 일가족을 들이받은 뒤 달아다나가 다시 사고현장을 구경하던 시민들에게 돌진해 15명에게 부상을 입힌 택시기사도 세상을 미워해 그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 앞서 1991년에는 같은 장소에서 해고자가 훔친 승용차를 몰고 돌진해 초등학생 2명이 숨지고 2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불만과 분노를 품은 외톨이들은 조승희처럼 정신적으로 크게 일탈한 사람들”이라며 “몇 년 전 소방서에서 근무하던 20대 청년이 동료들이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으로 직장을 그만둔 후 복수를 하기 위해 소방서가 있는 곳마다 불을 지른 사건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총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지, 미국처럼 총기 사용을 허가한다면 그 동안 조승희와 같은 대량학살 사건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서도 총기를 이용해 많은 인명을 해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일병 사건’과 ‘우순경 사건’이 있다.

지난 2005년 6월 경기 연천군 중면 최전방 GP에서 총기 난사로 장병 8명을 살해한 김모 일병은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욕설 등 인격모욕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범행 이틀 전부터 선임병을 살해할 결심을 했다. 김 일병과 같은 부대 소속인 천모 일병은 육군 합동조사단에게 “선임병들이 평소 동료인 김 일병을 내성적인 성격과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자주 질책했으며 이에 대해 김 일병은 GP에 투입된 뒤 ‘수류탄 까고 총으로 쏴 죽이고 싶다’는 등의 폭언을 3~5회가량 했다”고 진술했다. 조사 결과 김 일병은 평소 내성적인 성격 탓에 주변인들과도 쉽게 어울리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김 일병은 조승희처럼 세상에 대한 적개심은 없었고 군대가 아니었다면 그 같은 사고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외부와 단절된 GP에서 겪은 인격모욕으로 인해 분노가 증폭된 것”이라고 말했다.

우순경 사건은 1982년 4월 발생했다. 당시 경남 의령경찰서 궁유지서에서 근무하는 우모 순경(당시 27세)이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 실탄 129발, 수류탄 6발을 들고 나와 8시간 동안 궁유면 내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무차별 난사, 주민 56명을 죽이고 34명에 중상을 입힌 사건이다. 자신도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당시 경찰은 술버릇이 나쁜 그가 내연의 처와 말다툼을 벌인 후 술에 취해 흥분한 상태에서 좌천에 대한 인사문제와 애정문제가 폭발하면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으로 매듭지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 알려줘야

2005년 6월 최전방 소초 총기난사로 동료 병사들을 숨지게 한 김모 일병(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군 수감시설로 돌아가는 모습. <경향신문>

이웅혁 경찰대 교수는 “분노를 품은 외톨이들이 큰 범죄를 저지르기 전 보내는 신호를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심각한 범죄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특정 건물 등을 폭파하겠다는 등의 허위 협박전화는 소외감에 사로잡힌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억울함, 세상이 자기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분노를 드러내는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좌절이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파괴나 공격으로 나타나는 기본 매커니즘은 자기가 지금까지 소외되고 희생당했다고 믿는 것을 이제는 되갚을 때가 됐다는 식의 믿음”이라며 “학교나 사회가 무한경쟁체제로 치달으면 치달을수록 이 같은 분노를 지닌 반사회적 외톨이들은 한층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분노 치료의 기본은 표현”이라며 “이를 표현하지 못하면 가슴에 쌓이고 이것이 결국 정신장애로 발전하며 이때 전문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로 방치하면 분노가 증폭해 분노 조절이 실패로 이어지면서 범죄 등 공격적 행동으로 표출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조승희도 편집증 수준까지 망상이 심해지지 않았다면 대량살상과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씨가 범행 1주일 전 미국 폭스TV 인기 프로그램인 ‘아메리칸아이돌’에 출연 신청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메리칸아이돌’은 미국 청소년들이 출연해 경합하는 노래자랑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인 코웰은 “조승희가 보낸 테이프에서 조승희는 윌리엄 헝의 노래를 로드 스튜어트처럼 부르더니 갑자기 디스코를 추는 등 특이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이수정 교수는 “이 모습이 조씨의 원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며 “그의 기본 욕구는 인정받고 싶고 영웅이 되고 싶으나 한편으로는 너무도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 자신의 욕구를 일상적 소통으로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경우 상태가 나아지기보다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심각한 상황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왕따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움츠려든 생활을 하게 되고, 그럴수록 자기만의 세계에 함몰돼 세상과 소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연히 스스로 병원을 찾아오는 일도 없다. 우종민 교수는 “현실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니까 이들은 게임, 공상과학 소설 등 판타지에 관심을 느끼고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999년 미국 콜롬바인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들이나 조승희는 게임광이었고, 서남부연쇄살인범 정남규는 공상과학소설에 탐닉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1년에는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던 중학생 양모군이 초등학생인 동생을 도끼로 살해한 뒤 40~50명을 더 죽이겠다며 돌아다니다가 경찰에 잡힌 일도 있었다. 양군은 범행에 앞서 자신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일기 형식으로 “살인이라는 걸 꼭 해보고 싶다”는 글을 올려놓았고, ‘자기소개란’에는 “앞으로 삶의 계획은 세상을 즐겁게 살고, 군대 갔다 와서 살인을 맘껏 즐기는 것! 침대 밑에는 할인점에서 구입한 도끼 등을 숨겨 놓았다”고 적어놓았다.

그렇다면 큰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이들을 구별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우종민 교수는 “다른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게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것과 달리, 불법 약물을 남용한다거나 피해의식이 강하거나 혼자서 굉장히 공격적인 내용이나 상상을 반복적으로 표현하거나 중얼거리는 사람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또 “주위에서 관심을 가지고 전문가와 상담을 권유하고 문제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고립되고 친구들과 대화를 하려 하지 않으며 글이나 그림 등에서 폭력성이 드러나는 경우 전문가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며 “그 아이들이 지닌 문제가 더 심각성을 띠기 전에 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