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자기만의 線으로 고립시키다

외톨이 진단과 치유… 그림 속에서도 친구나 가족과 분리시켜

놀이와 미술, 언어, 음악활동을 통해 자녀들의 은둔형 외톨이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해 ‘블록체험전’ 에서 블록 쌓기를 하고 있는 가족 관람객.

이번 조승희 총격사건을 접한 부모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사건이 가져다준 충격이 그 첫 번째라면 “내 자식도 혹시?”라는 의문이 그 후 반응이다. 때문에 최근 들어 외톨이 문제 상담프로그램이 있는 정신과나 청소년상담기관 등에는 부모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친다고 한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이 2005년, 일반 인문계 고등학생 14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은둔형부적응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 9.4%가 은둔형부적응 잠재군으로 분류됐다.

타인의 놀이개입을 회피하는 경향

조사에 따르면 1)등교나 사회적 관계를 거부하고 집에 머물러 있는 경험이 있고, 2)친구가 없거나 한 명밖에 없으며, 3)학교나 일을 그만둔 적이 있다고 응답한 ‘고위험군’이 0.3%로 나타났다. 또한 1)과 2)의 경험을 가진 ‘위험군’이 2.3%, 1)을 겪은 ‘잠재군’이 9.4%로 나타났다.

상담원의 김태성 선임상담원은 “이 결과를 전체 인문계 고등학생으로 확대한다면 5000 ~6000명 정도가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이라며 “만 9세에서 24세의 청소년이 1000만 명쯤 되는데 이 경우 당장 도움이 필요한 고위험군이 33만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청소년 상담 전문가들은 부모가 자녀의 외톨이 성향을 미리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자녀가 커갈수록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는데다 부모도 자녀의 학교 성적 등에는 큰 관심을 갖고 있으나 사회성 문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선임상담원은 “은둔형 외톨이 증상을 보이는 청소년 치유엔 가족의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하다”며 “외톨이가 돼 불편과 고통을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면 고위험군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대부분 잠재군 당시 이를 발견하고 보살펴야 할 가정의 기능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학업 부진, 잦은 결석, 우울증, 정신분열증 초기 증후와 같은 본격적인 부작용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생이나 중학생 연령대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고1 남학생이 그린 ‘빗속의 사람’.

전문가들은 자녀의 놀이와 미술, 언어, 음악활동 등을 통해 은둔형 외톨이 성향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톨릭대학교 아동청소년가족상담센터의 김미정 실장은 “자녀가 혼자 노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거나 다른 사람이 놀이에 개입하는 것을 회피한다면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어린 시절의 사회성은 친구들과 노는 과정에서 다투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면서 성립하는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공부나 지식에 의해 갖추어지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실장은 “핵가족화로 인해 아이를 주인공으로 ‘섬기다’ 보니 아이가 자기 위주의 사고와 행동을 하면서 고립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자녀가 그린 그림 자체에서도 학교생활과 가족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한국미술치료학회 김갑숙 총무이사(영남대 미술치료학과 교수)는 “학교를 배경으로 친구들과 고립되어 있는 모습, 가족과의 그림에서 자신과 다른 가족 사이에 선을 그려 넣는 것 등, 상호작용이 아닌 고립과 구분을 그리는 아이가 많다”며 “인물화의 경우에도 신체의 한 부분을 지나치게 과장되게 그린다든지, 일반 풍경화 속에서 지나친 왜곡이 있다든지 하면 자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복한언어치료실 김이정 연구소장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며 “말 주고받기가 안 되는 경우가 많으며, 감정이입이 안 되어 상대방 입장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것도 특징”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말이 많더라도 상대방 이야기의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경우도 외톨이 성향이 있음을 의심해야 한다고 김 소장은 충고한다.

가족들의 조기발견이 가장 중요

상담원의 조사 결과 은둔형부적응 잠재군의 아이들은 인터넷이나 컴퓨터 게임에 몰두(37.7%)하거나 가족에 대한 공격적 언어 사용(15.9%), 낮과 밤이 뒤바뀜(14.5%) 등의 부가적인 문제 행동도 보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모의 양육행동은 방치(30.4%), 권위적(17.4%), 허용적(17.4%), 지나친 간섭(15.9%) 등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고1 여학생이 그린 ‘불타는 학교’.

또한 일본의 히키코모리 경우에서 보듯 부모의 소진도 큰 문제다. 외톨이 성향의 아이들로 인해 부모는 이미 탈진되어 있거나 자책감, 우울, 무력감, 분노 등의 다양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은 상태. 그러나 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 성향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싫어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역할 못지않게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선임상담원은 “우리 세대는 부모 역할에 대한 모델이 전무한 상태라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가정 내 치유에는 한계가 있다”며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들에 대한 상담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되고 있으니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은둔형 외톨이 성향을 보이는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를 위한 상담프로그램은 한국청소년상담원(02-2253-5056, www.kyci.or.kr), 동남신경정신과(02-363-0412), 사는기쁨신경정신과의원(02-888-0675),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전국지부, 가톨릭대 아동청소년가족상담센터(02-2164-4656, www.childfamily.or. kr), 성신여대 정신건강연구소(02-926-1272, www.sungshin.ac.kr/~phi)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