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과묵한 사람 보듬는 미덕 어디 갔나”

전문가 기고 | 말많은 사람만 인정… 은둔형 외톨이 만드는 건 아닐까?

일상에서 삶의 속도가 빨라지고 사회적 관계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끊임없이 말하고 듣고, 종일 사람에 치이고 부대끼며 사는 일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방에 머무르고 싶다. 그러나 얼마 머물지 못하고 우리는 다시 무리 속으로 돌아온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집단을 형성하여 살아가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무리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면 주변인으로서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고통은 신체적·심리적 측면 모두에서 매우 괴롭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다른 이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혼자만의 삶에 익숙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괴로워서 위협적인 사회를 떠나 자기만의 숨쉴 곳, 자기만의 안전한 방에 장기간 은둔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인간의 은둔과 고립에는 정신병리적인 것과 단순한 부적응 형태가 있다.

은둔형 외톨이, 병리와 다른 부적응

사회공포증, 회피성 성격장애, 분열성 성격장애, 우울증, 망상형 정신분열증 등의 정신병리에서 타인으로부터의 고립증상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회공포증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하며, 비난이나 거부를 당할까봐 지나치게 두려워할 때 나타난다. 사회공포증과 유사하게 회피성 성격장애도 타인의 거부나 비난에 대한 지나친 염려, 사랑과 수용에 대한 욕망, 사회로부터의 격리가 주된 특징이다. 분열성 성격장애는 의심 많고 정서적으로 차갑고 무감각하며 타인의 칭찬이나 비난에도 무관심하며 자기만의 세계에만 고립되어 있는 장애로 한두 명의 친밀한 사람만을 가지는 장애다. 무력감 및 의욕저하, 수면과 섭식에서의 이상이 나타나는 우울증 역시 은둔 행동을 초래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피해망상을 동반한 정신분열증도 단절과 고립을 가져온다.

왕따와 은둔형 외톨이는 병리와는 다른 부적응이라 할 수 있다. 왕따의 경우는 타인들로부터의 폭력이나 고립이며, 은둔형 외톨이는 스스로 방에 은둔하기를 택하고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고립이다. 1970년대 일본에서 등교거부(부등교) 현상으로 시작해 낮에는 집 안에 있다가 밤이 되면 외출하는 형태를 보이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점차 증가하게 되고 또 폭력사건도 발생하여 그 심각성이 강조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현상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원인 중 하나가 기질적으로 지나치게 수줍음을 타는 성격을 지닌 경우이다. 수줍은 이는 다른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위축되기 쉽다. 실제로 적극적 자기표현과 주장을 강조하는 서구에서 수줍음은 샤이증후군(Shy synd-rome)이라 해서 장애로까지 생각되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 수줍음은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미덕으로 여겨 왔지만, 자신을 적극 표현하고 주장해야 성공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자칫 부적응으로 연결될 수 있다. 우리 사회도 지나친 경쟁 위주로 변해가면서 자기주장을 열심히 하지 않는 소심하고 수줍어하는 특성의 사람을 은둔형 외톨이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자.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다른 원인들로 학업능력이나 성적에 대한 열등감,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의 부담감, 또래로부터의 따돌림 등이 있다. 즉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한 것들이다. 우리 사회는 타인을 이해할 때 그 사람의 생각, 흥미와 같은 내적인 속성보다는 집안 배경, 사회적 지위, 성적과 같은 외적인 속성을 더욱 많이 고려하는 경향이 특히 강하다.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이렇게 외적 속성에 따라 타인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행복도 외적 조건에서 찾는 경향이 있고 상대적으로 좌절과 우울 등 부정적 감정을 더 많이 느낀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의 내면을 적절하게 드러내 보이는데 서툰 사람들은 끊임없이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또 스스로 행복의 잣대인 외적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부정적 감정을 더욱 많이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이렇게 상처 입은 외톨이들은 현실에서 도피하여 자신의 방에만 은둔하게 되는 것이다.

한 박자 늦춰서 함께 걷는 여유 필요

인간은 다른 사람과 관계하려는 욕구가 있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더라도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왕따를 당하면서도 그 집단을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 심리도 이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고 주류로부터 벗어날수록, 나만의 사회와 나만의 집단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는 더더욱 강렬해진다. 은둔을 선택한 경우에도 이러한 욕구는 남아 있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서로 온라인상에서 만나기도 하고 모임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런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신병리로 인해 무조건 타인을 피하는 게 아니라,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외부 세계가 위협적인 것만은 아님을 느끼고 방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이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할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일하기를 거부하는 니트족이나, 안전한 부모의 그늘 밑에 마냥 안주하는 캥거루족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이 저하될 우려도 있다. 사실 이보다 앞서 공부라는 한 가지 잣대만으로 꿈 많은 청소년들을 줄세우기 해서 성공한 자와 패배자로 나누는 우리 사회의 잔인한 현실을 반성해야 한다. 학업에서의 실패가 인생 전체의 실패라고 생각해서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의 삶을 앞둔 청소년들을 철저한 패배감으로 은둔하도록 몰아붙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성공의 잣대가 하나뿐인 상황에서 이런 결과는 당연하다.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학업 외의 다른 길을 마련해야 한다.

실제로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 안노 히데야키는 한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톨이 생활을 했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창의적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말 없고 과묵한 사람들을 겸손하다고 보듬어 안아주던 우리 사회의 미덕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보자. 자신을 드러내고 얄팍하게 말 많은 사람들만을 능력 있다고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어 가는 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우리 사회가 인정받지 못함에서 오는 고통을 자기만의 성을 쌓으며 차단하고자 하는 은둔형 외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정신없이 혼자 달음질치기보다 한 박자 늦춰서 함께 걷는 여유가 필요할 때다. 혼자 있을 때뿐 아니라 함께 있어서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