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극장전]선거서 ‘우리 목소리 전하는 자’ 누구?

20대 대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주변에선 지지율 1·2위 후보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누굴 뽑을지 모르겠다는 체념이 교차할 뿐, 한국사회 전망이나 미래담론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만의 고민일 리 없다. 세계 각국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 독재와 선동적 포퓰리즘이 득세한다는 이야기는 숱하게 목격된다. 경제 불황과 빈부격차 심화 앞에 ‘정치’에 신경 쓸 새 없고, 내 한표가 뭘 할지 모르겠다는 냉소가 팽배한다. 하지만 그렇게 정치를 방치해도 괜찮을까.

멕시코 다큐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에 최근 공개된 멕시코 다큐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La Vocera·2020)는 2018년 멕시코 대선에 무소속 출마하려는 원주민 여성 ‘마리 추이’의 여정을 따라간다. 소속정당도 정치적 후광도 전무한 그는 무슨 생각으로 선거에 뛰어든 걸까.

마리 추이가 예비후보로 결정되는 순간은 우리에겐 낯선 ‘원주민 의회’ 현장이다. 멕시코에는 국가 지원을 거부하고 자치로 꾸려가는 500여개가 넘는 공동체가 존재한다. 원주민 의회는 공동체 대표들이 권리를 주장하며 상징적으로 꾸린 대표체다. 이들의 결집에는 1994년 남부 치아파스주에서 봉기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EZLN은 무장투쟁을 최소화하고 미디어로 이념과 주장을 펼치며 새로운 ‘혁명’을 시도해 한때 전 세계 좌파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무장투쟁과 합법정당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않았고, 멕시코에서 그들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해방구’에서 ‘공동체’ 실험을 유지하던 중 2018년 대선 대응 결정으로 다시금 멕시코 언론에 조명되기도 했다.

마리 추이는 전국을 다니며 후보 등록 서명과 유세를 이어나간다. 영화는 마리 추이를 우상화하거나 치열한 스릴러 전개를 취하진 않는다. 대신 활동가들이 곳곳 공동체 현안을 교류하고 원주민들이 겪는 탄압과 전국적 강제개발 참상을 조명한다. 수백년간 내려온 경작지는 송유관과 송전탑과 태양광 패널로 뒤덮이고, 저항의 목소리는 소외된다. 마리 추이와 동료들은 100만 서명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지지층은 가난해 서명 가능한 사양 스마트폰을 사기 힘들거나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지역에 산다. 방송 출연 인터뷰 자리에서 정말 등록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무례한 질문이 쏟아진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도전은 수치상 실패했다. 등록에 성공한 타 후보 서명에서 무더기 서명 복사가 발견되지만, 결과는 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 추이와 원주민 의회는 쿨하게 다음 활동을 논의한다. 2018년 멕시코 대선에선 나름대로 기존 제도권 3당 중심질서가 대대적으로 재편되는 결과를 맞는다.

방구석 극장전

어느 순간, 우리에게 선거는 누가 당선 가능한지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처럼 돼간다. 하지만 마리 추이의 선거운동 과정은 당선 여부를 떠나 고립된 원주민 공동체 현실을 전국에 알리고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계기로 활용된다. 2022년, ‘선거의 해’에 우리는 그저 차선 혹은 차악을 고르기 위해 결정장애에 처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사회 미래 전망을 놓고 시민 각자의 주체적 의지를 행사할 것인가.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