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중의 복잡미묘](7)‘사회적 합의’라는 허울

지난 4월, 서울 관악구청은 ‘성별영향분석평가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조례에 사용된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성평등’으로 변경하는 단순한 개정안인데, 특별히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상위법에서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기에 그 표기를 따른 것이었다. 단순한 용어정비 개정안에 댓글 700여개가 달렸고, 구의원들에게 100여개의 문자가 왔다. 기초단체의 공무원들과 의원들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고, 결국 구청은 개정안을 철회했다. 필자가 그다음 회기를 앞두고 같은 조례를 다시 발의했으나, 의원들은 지역의 교회에서 반대한다며 조례 상정을 보류했다. 정치가 소수의 혐오세력에 휘둘린 사례이다. 이럴 때 나오는 마법의 문장이 있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 말은 서울시 국감에서 다시 등장했다. 서울시가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비영리법인 설립을 불허한 것에 대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서울시가 어느 한쪽 입장에서 판단할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질리도록 익숙한 수사법이다. 2017년 대선 TV토론에서 홍준표 후보가 물었다. “동성애 반대하냐?” 문재인 후보가 답했다. “당연히 반대한다, 차별은 안 되겠지만.” 2020년 총선 서울 광진을 TV토론에서 오세훈 후보가 물었다. “동성애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 저는 반대한다.” 고민정 후보가 답했다. “동성애에 대해서는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거침없이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당선 직후 인터뷰에서 말했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시기상조다.” 이 대표의 말 한마디마다 비판하던 민주당도 이 발언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면, 그것이 차별이 아니고 무엇일까. 의제를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인데,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책임회피다. 차별과 혐오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바꿀 의지가 없다는 말과 같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변희수 하사를 비롯한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서울교통공사는 변희수 하사의 전역취소소송 승소를 기원하는 광고를 불승인했고, 국방부는 변희수 하사의 승소에 대해 항소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몰라도 거대양당의 합의는 이루어진 것 같다. 민주당의 중앙정부나, 국민의힘의 서울시나 똑같은 모습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1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기중의 복잡미묘

거대양당이 사회적 합의가 있는 일만 했던가. 국민은 공공개발사업이 부동산 투기세력에게 천문학적인 이익을 안겨줘도 된다는 합의도, 정당이 검찰과 모의해 상대 당의 정치인을 고발해도 된다는 합의도 한 적 없다. 대장동 의혹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책임이고, 고발사주 의혹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책임이라는 국민의 의견이 각각 절반을 넘는다. 상대방을 감옥에 보내겠다는 것 외에 어떠한 비전도 보이지 않는 정당과 후보들에게 과연 어떠한 사회적 합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우선 그들의 출마자격에 대한 사회적 합의부터 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기중 서울 관악구 정의당 구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