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완전한 수장룡의 날

과거를 통해 목도하게 되는 서글픈 진실

환상과 현실을 뒤섞는 것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흔한 수법 중 하나다. 살인범의 칼에 찔리는 순간 발작하듯 깨어나 꿈이었음을 깨닫고 안도하는 클리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장면이 두 번 세 번 반복된다면 어떨까. 그 효과는 점증해 어느 순간 착각을 넘어 진짜로 일어난 일이 어느 쪽인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현실을 완벽히 모사한 가상현실까지 더해진다면 현실, 진짜, 실재가 담보했던 굳건한 경계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를 <매트릭스> 류의 SF가 현실과 가상의 투명한 경계로 이야기했다면, 미스터리 장르는 진실을 유예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정공법 그대로 환상과 현실을 하나씩 정렬시켜 나간다. 요는 현실감각의 결여와 이에 대한 회복이다. 과연 현실이 맞긴 한지 그 진위만큼은 기필코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누이 로쿠로 작가의 <완전한 수장룡의 날> 한국어판 단행본 표지 / 21세기북스

제9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인 <완전한 수장룡의 날>은 SF와 미스터리가 탐구하던 부정확한 현실감각을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만화가 가즈 아쓰미는 자살 미수로 혼수상태인 동생 고이치의 뇌에 접속하는 최신 의료기술 ‘센싱’을 통해 그와 정기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아쓰미가 센싱을 통해 우선 알아내려는 것은 동생의 자살 이유다.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면 만에 하나 고이치가 깨어난다 하더라도 다시 자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쓰미는 고이치를 다시금 현실 세계로 이끄는 한편 그를 자살로 내몬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재차 캐묻는다.

그러나 둘의 커뮤니케이션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고향인 외딴섬에서 놀다 둘이 함께 파도에 휩쓸려갈 뻔했던 위험천만한 추억이나, 괴팍한 외할아버지에게 혼났던 기억을 빙 돌다 이내 센싱은 종료되기 일쑤다. 성과 없는 센싱을 마치고 마침 오랫동안 연재하던 만화마저 종료가 결정된 시점, 섭섭한 마음을 추스르던 아쓰미 앞에 느닷없이 고이치가 나타난다. 고이치는 J. D. 샐린저의 단편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에 대해 이야기하다 마치 소설의 마지막을 흉내내듯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고 쓰러진다. 벌어질 리 없는 일을 목도하고 나서야 아쓰미는 생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고이치와 ‘센싱’을 이어가고 있는 거지?

<완전한 수장룡의 날>을 지배하는 것은 지극히 서정적인 분위기다. 혼수상태인 고이치가 집에 나타나 쓸쓸히 자살하는 불가해한 사건을 시작으로, 같은 상황과 대화가 마치 데자뷔처럼 반복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조금씩 허물어진다. 게다가 아쓰미의 현재는 늘 아릿한 맛을 자아내는 유년기의 추억으로 이어지곤 한다. 어릴 적 가족과 여행 간 남쪽 섬의 나른한 분위기,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만화가로 데뷔하기까지의 암울했던 시절을 담담한 필치로 묘사하면서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환상과 불안한 현실감각을 교묘하게 엮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아쓰미는 일상을 침식하는 비일상을 경험하면서 결국 마음속 깊이 침잠시켜야 했던 진실을 깨닫는다.

장르물 전성시대

작중 여러 번 언급되는 ‘호접몽’ 또한 이 작품의 주제이자 소재이면서 특유의 환상적인 필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꾼 것인지 갸우뚱하는 그 어렴풋한 순간 그대로 아쓰미가 맞닥뜨린 현실과 그 현실이 풍기는 분위기는 내내 기이한 느낌을 자아낸다. 아쓰미가 진실에 다가서는 모든 순간이 과거를 통해 그려지고, 그 역시 기억이라기보다는 추억에 가까운 것도 그래서다. 그렇게 추억의 미로를 헤집다 현실이라는 단단한 바닥마저 무너뜨리는 순간, 끝내 아쓰미가 덮어둔 서글픈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더불어 인간이라는 미스터리와 인간적인 SF가 교차하는 순간까지도.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