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멀리서 보면 푸른 봄」-‘가까운’ 관계로 인해 빚어지는 놀라운 성장

먼 채로 있었더라면 자신을 위해 선을 긋고 마음 썼을 것을, 가까이 있기 때문에 타인을 위해서도 긋고 쓴다. 그렇게 해서 확보되는 것은 놀랍게도 타인의 자리에서 자신을 보는 감각이다. 동정이 아닌 공감이고 자기애가 아닌 성찰이다.

모르는 두 사람(혹은 그 이상)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것은 서사의 기본이라 할 만하다. 많은 경우 그것은 남녀의 연애 이야기로 이루어지지만, 그렇게 환원되지 않는 다른 이야기들도 맥을 이어 왔다. 그 중 하나가 한 공간에서 함께 사는 ‘유사 가족’ 이야기다. 최근 드라마 <청춘시대>(JTBC)가 그렇고, <이번 생은 처음이라>(tvN) 역시 마찬가지다. 전자가 여자 청년들의 셰어하우스를, 후자가 임대차계약 관계로 맺어져 한 집에 사는 남녀를 그렸다면, 다음 웹툰 <멀리서 보면 푸른 봄>(지늉, 이하
<멀푸봄>)은 한 집에 사는 두 남자 대학생을 그린 이야기다.

<멀푸봄>은 흔히 20대 ‘청춘’에 대한 텍스트로 비춰진다. 제목의 ‘푸른 봄’(靑春)이 그 시선을 허용한 열쇠이겠으나, ‘멀리서 보면’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다른 사안이 함께 읽힌다. 시각의 문제, 거리의 문제, 곧 관계의 문제다. <멀푸봄> 예고편에서도 인용된 찰리 채플린의 말대로, 인생이 ‘멀리서 보면(in long-shot)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in close-up) 비극’이라면 어떤 거리에서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가 인생이라는 극의 장르를 결정짓는 것이다. 희극과 비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에 따라 달리 보인다.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이라는 잘 붙여진 제목은 그래서 멀리서 보지만 말 것을, 가까이서도 볼 것을 넌지시 요청한다. 그에 그치지 않고 ‘멀리서 보았을 때 푸른 봄’을 달리 보는 방법을 실천해 낸다. 요는 ‘멀리서 보았을 때 푸른 봄’이 가까이서 보았을 때 무엇으로 보이는가가 아니다. 어떻게 ‘가까이서’라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달리 보는가이다.

지늉 작가의 만화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의 한 장면. / 다음웹툰

청춘이 청춘을 바라보는 희비극

‘가까이서’를 이끌어 내는 <멀푸봄>의 첫째 방법은 ‘먼 두 사람을 마주치게 하기’다. ‘가까이’라는 거리는 ‘멀리’라는 거리와 대쌍을 이루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때 거리란 물리적인 거리이면서 동시에 인물됨의 차이다. 새내기 대학생 여준이 전공 수업 조별 프로젝트에서 3학년 선배 남수현과 한 조가 되며 둘의 마주침이 성사되는데, 둘은 기초적인 사실부터 무척이나 다른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여준은 유복한 집안의 둘째 아들이고, 키가 작으며, (겉으로는) 사교적이다. 남수현은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키가 크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멀푸봄>은 이처럼 대조적인 둘의 ‘브로맨스’ 혹은 ‘케미’를 주축으로 한다. 다른 둘이 서로를 낯설게 바라보는 거리를 조성하되, 그 차이가 이끌림을 자아내는 친숙한 장르적 문법 속에서 가까이를 향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작가가 말하듯

<멀푸봄>은 “여자주인공은 없고 장르는 순정이지만 BL은 아닌” 친숙한 듯 낯선 이야기다.

장르가 순정이라는 것은 두 번째 방법과 연관된다. 잦은 독백의 활용을 통한 ‘스스로를 드러내기’가 순정만화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기법이기 때문이다. “무너지지 않도록, 주저앉지 못하도록 나를 버티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를 버티게 하는 이들은 동시에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이들이기도 하다. (중략)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까지가 애정이고 어디서부터가 의무감일까. 부채감의 무게에 짓눌려 기억나지 않는다.” 그림과 함께 이어지는 남수현의 이런 독백은 표정을 가까이서 비추는 영화의 클로즈업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의 내면을 비추어 보여준다. 서사를 통해 그의 상황과 인생 여정을 이해한 독자들은 남수현이 ‘마음 속으로’, ‘스스로에게만’ 드러낸 마음을 스스로인 양 보게 된다. “하나씩 하나씩 바꿔나가자.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나를 놓아주지 않는 우울이,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막연한 불안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그리하여, 나를 아껴주려는 사람들을 내가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여준의 독백 역시도 독자가 가까이 다가서게 만든다. 이제 독자는 ‘마음을 아는(知音)’ 관계로 들어서며 이야기의 밖에서 ‘여준을 아껴주려는 사람들’의 자리에 서게 된다.

이 모든 ‘보기’는 인물을 경유해 이루어진다. 첫 방법을 인물을 통해 ‘멀리서부터 타인을 보게 하기’로, 두 번째 방법을 ‘가까이에서 자신을 보게 하기’로 환언할 수 있다면, 가장 중요한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가까이에서 타인을 보게 하기’라 할 수 있다. <멀푸봄>은 여준과 남수현을 함께 살게 하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서 대조적인 두 인물이 살게 하여 일상을 공유하게 하면, 둘의 다른 인생 서사가 합류하는 지점이 생겨난다. 이제는 가까운 관계 속에서 다른 서로가 보여진다.

여준이 남수현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고민을 털어놓으라고 할 때,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하던 남수현은 “정말로 해결해버릴 것 같아서” 싫다고 말한다. 여준에게 경제적인 능력이 있지만, 그것이 둘의 관계를 매개하게 두고 싶지 않은 탓이다. 그러면서도 남수현은 자책한다. 여준이 좋은 집에서 좋은 것들을 안락하게 누리며 “그곳에 있는 네가 생각보다 너무 외로운 인간임을, 나에 대한 곪은 애착이 있음을 알아가며” “안심했던 건 아닐까?” 그가 누리는 편의가 여준의 외로움 덕택이라면, 여준이 “외로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이런 고뇌 끝에 남수현은 여준에게 말한다. “네가 정말 날 도와주면, 넌 나한테 고마운 사람이 될 거야.” 그러면서 부탁한다. “넌, 나한테 고마운 사람 되지 마.” “좋아하는 친구로 남아라.”

뒤틀린 가족 간의 관계로 고민하는 여준

반면 뒤틀린 가족 간의 관계로 고민하는 여준은 남수현에게 친형과 나누지 못했던 것을 갈구한다. 그래서 더욱 돕고 싶고, 도움으로써 친밀한 관계의 보장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동등한 관계로서의 ‘좋아하는 친구’를 원하는 남수현을 가까이서 보고 겪고 알아가며, 남수현과 이룰 수 있는 관계의 선을 고민한다. 가끔은 남수현이 그은 선을 넘기도 하고 넘도록 이끌기도 하지만, 그만큼 여준은 남수현을 이해해 간다. 그리고 이해하기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을 끝낼 때가 왔다는 결론에 이른다.

시즌 2까지 진행된 <멀푸봄>의 이야기 속에서 ‘가까이’ 보여진 둘의 관계는 거치나마 이렇게 조망될 수 있다.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욕망과 금기를 알아가면서도 모른 척하고 조절하는, 섬세한 감정선과 마음 씀이 그렇게 ‘가까이’ 보여진 관계를 채운다. 먼 채로 있었더라면 자신을 위해 선을 긋고 마음 썼을 것을, 가까이 있기 때문에 타인을 위해서도 긋고 쓴다. 그렇게 해서 확보되는 것은 놀랍게도 타인의 자리에서 자신을 보는 감각이다. 동정이 아닌 공감이고 자기애가 아닌 성찰이다. ‘가까운’ 관계로 인해 빚어지는 놀라운 성장이다.

만화로 본 세상

<멀푸봄>의 이 거리 조절은 윗세대에 의해 ‘푸르다’고만 말해지는 청춘의 희극도, 스스로에 의해 ‘푸르지 않다’고만 비하되는 청춘의 비극도 껴안는다. 그래서 <멀푸봄>은 희비극으로 나아간다. 단, 비극으로 시작해 희극으로 끝나는 방식이 아니라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볼 때 다른 것이 보이는 방식으로.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그러니까 나누기 싫은 거지. 슬픈 사람 둘 되잖아. 반이어도 충분히 무거운데.” 이런 말장난처럼 합류하는 희비극이 청춘의 인생 이야기 <멀푸봄>이 이룩해 가고 있는 성취다.

<조익상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