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게임회사 여직원들>-대한민국 과로노동의 대명사 ‘게임회사’

한 번 게임을 출시하면 브라질, 미국 등 시차가 다른 여러 나라의 유저들을 상시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밤샘은 기본이다. 모 게임회사는 사무실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아예 ‘등대’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얼마 전 국정감사 현장에 국회의원 한 명이 황색 프라이팬을 들고 나왔다. 최근 돌풍을 일으킨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무기다. ‘오버워치’의 많은 유저들이 ‘배틀그라운드’로 넘어갔다고 할 만큼, ‘배틀그라운드’는 지금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황색 프라이팬을 들고 “제2, 제3의 배틀그라운드가 나오게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상대는 문화체육관광부였다. 이 국회의원은 문체부 때문에 국산 게임이 ‘대박’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문체부가 게임산업과 관련 없다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게임산업의 가장 큰 폐해는 외려 외면하는 것 같아 이 풍경이 다소 의아했다.

다른 장면이 있다. 일전에 게임회사에서의 면접 자리에서 들었던 질문이다. 면접관이 내게 대뜸 “가정을 포기하실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당연히 금방 대답할 수 없는 말이었다. 얼떨떨하니 있었더니 면접관이 어두운 얼굴로 한 번 게임을 출시하면 브라질, 미국 등 시차가 다른 여러 나라의 유저들을 상시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밤샘은 기본이고 ‘어쩌다 한 번’ 정시 퇴근하는 날에라도 새벽에 출근해야 한다고 했다.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을 운영해본 적이 있어서 어떤 이야기인지 가늠이 되긴 했지만, 이 회사의 노동강도는 슬쩍 들어도 그 이상인 듯했다. 모 게임회사는 사무실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아예 ‘등대’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게임회사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과로노동의 대명사가 됐다.

마시멜 작가의 만화 「게임회사 여직원들」의 한 장면. / 다음 웹툰

재밌는 게임과 돈 버는 게임은 다르다

웹툰 <게임회사 여직원들>은 바로 이런 게임회사의 일상을 그린 웹툰이다. 수년을 게임 기획자로 일했지만 기획한 게임이 매번 론칭 전에 엎어진 ‘여기혜’, 공대를 졸업했지만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마시멜’, 그리고 늘 버그를 잡느라 눈밑이 퀭한 개발자 ‘아름’이 주요 인물이다. 이 외에도 ‘아름’과 함께 게임을 개발하는 ‘곰개발’, UI 디자인을 하는 신입 ‘푸딩’이 함께 게임회사 ‘마시멜 컴퍼니’를 구성하고 있다.

처음부터 웹툰의 배경이 마시멜 컴퍼니인 건 아니었다. 시즌1에서 이들이 다니던 게임회사는 ‘식빵’ 사장과 ‘맹팀장’이 있는 ‘식빵소프트’였다. 그러나 개발하던 게임이 몇 차례 기획단계에서 뒤집어지고, 투자자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사태를 맞이하면서 회사 운영상황이 점점 나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렵게 오픈한 게임의 버그가 크게 터지고 제때 조치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게임이 큰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결국 식빵 사장의 판단으로 회사를 정리하고, 사장과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의기투합하여 각자 지분을 출자해 ‘마시멜 컴퍼니’를 설립한다.

마시멜 컴퍼니가 만드는 게임은 유저들이 ‘게임회사’를 운영해볼 수 있는 모바일 RPG 게임이다. 이들이 기획한 게임 세계 안에서 ‘게임회사’가 잘 되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요소가 모두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 직원들의 만족도, 충성도, R&D 투자, 연봉협상, 사내 분위기, 마케팅, 개발력 등 여러 가지 요건들이 여기에 속한다. 유저들은 게임 안의 게임회사를 원활히 경영하기 위해 각각의 ‘스탯’을 잘 관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무실에 앉아 있는 캐릭터들의 상황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간혹 랜덤한 확률도 등장하는 이벤트나 희귀 캐릭터들 역시 캐릭터들이 앉아 있는 사무실에서 일어난다.

마시멜 컴퍼니는 그들이 개발한 게임 세계의 회사뿐 아니라 이들 회사 역시 게임처럼 운영한다. 마시멜 컴퍼니는 회사 직원들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데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자잘한 보상체계를 갖추고 있다. 게임 오픈 직전엔 보통 ‘크런치 모드’라고 해서 야근과 주말 출근을 불사하고 집중적으로 근무하는 기간이 있는데, 마시멜 컴퍼니에서는 오히려 오픈 직전에 팀원들을 쉬게 한다. 게임을 오픈하고 난 뒤 생길 긴급상황에 대처할 체력을 예비하기 위해서다.

그런가 하면 직접적인 게임 요소를 회사에서 활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신입사원 ‘푸딩’이 야심차게 디자인한 UI 기획안들이 연거푸 퇴짜를 맞았을 때(98화) 사장인 ‘마시멜’이 나서 ‘경험치’라고 쓰여진 실제 종이 카드를 ‘푸딩’에게 선물한다. 지금 당장은 애써 한 작업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허망하겠지만, 실제 작업물이 사용되진 않더라도 이 경험이 모두 ‘푸딩’에게 실재적인 실력과 경험으로 쌓이고 있다는 의미다. 직원 복리후생으로 건강검진을 도입해 다음 건강검진 결과에서 더 건강이 호전된 구성원에게는 ‘특별 보상’을 하자는 제안도 한다. 마시멜 컴퍼니는 당장 대박 날 게임 하나만 바라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게 모두의 상황과 컨디션을 살뜰히 돌보면서 전진한다.

‘제2, 제3의 넷마블’이 나오지 않기 위해

작중에서 마시멜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 게임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죠. 재밌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돈이 없고, 돈이 있는 사람은 돈 버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재밌는 게임을 만드는 건 판타지다.”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과 상관없이 맥락에서 파악했을 때, 국회의원이 말한 ‘제2, 제3의 배틀그라운드’가 암시하는 건 ‘돈 있는 사람의 돈 버는 게임’이다. 재밌는 게임, 혹은 게임을 ‘재밌게’ 개발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러니 노동부가 아니라 문체부에 ‘잘하라’고 했을 것이다.

게임이란 뭘까. 최근 <게임회사 여직원들>의 추석 휴재 특별편에서 작가가 게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웹툰으로 그렸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현했다. 작가는 게임에서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세계, 제때 찾아오는 보상에 의한 성취감, 게임 내 동료들과 연대와 협력을 통한 유대감 등이 사람들을 게임으로 끌어당기는 가장 큰 매력 요소라고 짚었다. 그게 게임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게임회사 여직원들>은 우리가 게임을 왜 사랑했는지, 그 당시의 즐거움을 다시 상기시킬 뿐 아니라 무엇이 게임의 본질이고 어떤 것이 게임회사의 이상적인 모습인지 하나의 롤모델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롤모델을 따라가면, 구성원들이 즐겁게 개발하고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게임 개발의 과정이 그 어떠한 것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이 만드는 게임 속의 게임회사도 이의 연장선에 있다.

얼마 전 ‘크런치 모드’ 때문에 과로사한 넷마블네오의 게임 개발자가 비로소 처음 산재로 인정되었다. 이 내용은 <게임회사 여직원들>에도 고스란히 나온다. 개발자 ‘아름’의 선배가 단지 게임이 좋아서 입사한 게임회사에서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에 시달리다가 급사한 내용이다. 만화 안에서는 산재로 인정되지도 않았다.

만화로 본 세상

그러니까 지금은 ‘제2, 제3의 배틀그라운드’가 나와야 하는 게 아니라 ‘제2, 제3의 넷마블’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게 우선 아닐까. 게임산업의 고질적인 폐해는 문체부가 할 수 있는 문화적 정책이나 제도 따위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보다는 노동부를 앉혀놓고 황색 프라이팬을 드는 게 먼저일 것이다.(옐로카드?) 게임산업은 일단 ‘게임’다운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게임다운, 그러니까 적절한 보상과 더불어 유저가 결제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아주 긴 쿨타임(스킬 재사용 대기시간. 여기선 캐릭터들의 쉴 시간) 말이다.

<조경숙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