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회사를 관두는 최고의 순간」-‘모멸감을 주는 사회’에서 허덕이는 여성들

나를 구원해줄 것은 없고, 만약 그런 게 있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거짓말’인 세상이다. 이 만화 속의 여성들은 최선을 다하며 살지만 ‘알파걸’이 될 수 없는 이들이다.

서점에 나가보면 ‘퇴사’를 제목에 쓴 책들이 부쩍 눈에 띈다. ‘퇴사학교’가 등장해 수강생이 몰린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디어에서 ‘퇴사열풍’이 분다고 진단하는 이 현상의 주체는 20~30대의 직장인들이다. 직장인들은 누구나 가슴에 사표 한 장씩 품고 산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 젊은 층이 보여주는 퇴사에 대한 관심은 그런 일반론을 넘어선다.

나는 궁금하다. 고용불안과 무한경쟁의 시대를 사는 청년들이 보내는 신호를 우리 사회는 해석할 힘이 있을까. ‘욜로(YOLO)’의 유행을 말하는 미디어들의 담론 속에서 퇴사는 마치 ‘대안’의 다른 이름만 같다. 대기업 퇴사 후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는 식의 ‘성공스토리’는 또 다른 자기계발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 ‘퇴사’란 단어가 결코 낭만적일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냥냥돌이 작가의 만화 「회사를 관두는 최고의 순간」의 한 장면. / 코미카

내가, 문제인 걸까?

웹툰 <회사를 관두는 최고의 순간>(냥냥돌이·코미카)은 주인공 연지가 사표를 던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연지는 자신을 괴롭히던 사장과 대리에게 시원하게 할 말을 다하고 나와 꽃길을 걷는 듯 환한 얼굴이 된다. 그러나 이 통쾌함은 앞으로 펼쳐질 답답한 현실의 세밀화를 보기 위해 작가가 준비한 잠시간의 숨고르기다. 이 작품은 연지의 이야기를 축으로 해 스물아홉 동갑내기 친구들인 만화가 남희,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제빵기사 혜영,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인 현, 이렇게 네 여성이 겪는 노동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연지의 이야기부터 따라가 보자. 연지의 회사는 인쇄물을 생산하는 공장을 가진 전 직원 10명의 작은 기업이다. 사무실 직원은 주문을 받고 디자인을 뽑아내는 일을 하는데, 입사한 지 3년 된 이 대리와 입사한 지 3개월 된 연지, 두 여성뿐이다. 이 대리는 업무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서 연지에게 힘든 일을 떠넘긴다. 게다가 사적인 이야기를 시시콜콜 쏟아내며 연지를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취급한다. 그러면서 밑도 끝도 없이 “일하기 싫으냐?”고 다그친다. 연지는 “내가 마치 문제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연지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은 일찌감치 자리를 비우고 술자리에 가 있기 일쑤고, 그나마 자리에 있으면 주문전화를 엉망으로 받아 두 직원들의 일을 더 크게 만든다. 그래놓고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고, 관심조차 없다. 경리 업무를 볼 직원을 하나 더 뽑아달라는 이 대리의 말을 사장은 계속 묵살한다. 사장의 조카인 김 부장도 회사일에 관심이 없긴 마찬가지다. (그는 작품 내내 거의 얼굴을 비추지도 않는다.) 합리적이지 않은 조직, 과중한 업무, 오르지 않는 월급의 삼박자 속에서 이 대리가 화를 분출하는 대상은 늘 붙어서 일하는 말단직원인 연지다. 약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구조는 이렇게 완성된다.

이 구조는 견고하고, 약자들에게 스스로를 혐오하도록 부추긴다. 연지의 친구들조차 연지가 처한 부당한 현실에 공감하다가도 문제를 지속시키는 책임을 연지의 ‘착한아이 콤플렉스’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 말을 한 남희도 얼마 뒤, 한 남성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던 작업실을 뛰쳐나온다. 그녀가 아무리 똑떨어지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작가의 기분에 따라 효율 없이 반복되는 밤샘작업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남성 작가는 작업실을 찾아온 출판사 직원의 바쁘다는 말에 “우리 남희 데려다가 좀 쓰세요. 그냥 쓰세요. 그것도 경험이지”라고 남희의 면전에서 말한다. 남희가 아무리 그에게 돌직구를 날려도 그는 농담이라고 무시하고, 비슷한 일은 반복된다. 그는 남희와의 관계에서 ‘갑’으로서의 권력뿐만 아니라 젠더 권력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춘의 현실을 보는 방법

<회사를 관두는 최고의 순간>은 그렇게 ‘모멸감을 주는 사회’ 속에서 허덕이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이 세계는 자아도 돈이 있어야 찾을 수 있고, 나를 구원해줄 것은 없고, 만약 그런 게 있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거짓말’인 세상이다. 이 만화 속의 여성들은 최선을 다하며 살지만 ‘알파걸’이 될 수 없는 이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녀들이 택할 수 있는 삶의 경로는 아주 한정적이다. 연지가 미래를 묻기 위해 찾아간 타로마스터는 카드를 덮어둔 채 연지의 미래를 읊는다. “전문직도 아니고, 연지가 계속 일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기껏해야 지금보다 더 열악한 비정규직, 아니면 콜센터.”

연지를 비롯한 여성 인물들의 삶을 가장 옥죄는 것은 ‘빈곤’이다. 연지는 한탄한다.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숨이 막힌다. 왜 한 달을 일해 돌아오는 월급은 빠듯이 생활할 정도의 돈뿐이고 한 달이라도 쉬면 생활이 안 되는 걸까.” 이러한 빈곤상태가 무서운 것은 사람을 쳇바퀴에 가둔다는 데 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 겨를도 없고, 오로지 생존을 위해” 밀린 공과금에 떠밀려 다시 취업시장으로 나서게 되는 것. 삶을 사유할 힘을 빼앗기는 것이야말로 진짜 무서운 일이다. 하고 싶은 것이 딱히 없을 때,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인 소비를 통해 자아를 찾아보고자 해도 그러기엔 연지의 월급은 너무 적은 돈이다. 연지는 통찰한다. 통장이 텅텅 비는 건 ‘내 탓’이 아니라 “내 월급이 쥐꼬리”인 탓이다.

연지의 회사는 왜 직원을 더 뽑지 못하고, 이미 있는 직원들의 월급조차 올려주지 못하는 것일까. 연지는 말한다. “가공 제품의 생산 원료 값은 계속 오르지만, 생산품의 가격은 점점 내려간다. 주문하는 회사가 크면 클수록, 많은 물건을 주문하면 할수록 당연히 단가를 낮춰주길 바란다. 어떤 공기업은 낙찰되면 다시 단가 조정하는 게 절차”다. 이 작은 회사에서 연지는 “자본주의란 원래 착취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구조”임을 여실히 깨닫는다.

만화로 본 세상

작가는 후기에서 “청춘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술 한 잔에, 친구들 수다에 풀 수 있는 일들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어떤 결론을 내지 않았다고 말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 나와 다르지 않구나” 하는 걸 알리고 싶었던 것이 작품의 주된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저 작가의 경험담을 녹여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작품에 현실적인 터치를 얹지는 않는다. 이 작품이 현실적인 이유는 발언권을 가져야 할 이들에게 발언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함부로 청년의 현실을 진단하려 하지 않고, 그렇기에 엉뚱한 처방전을 남발하지도 않는다. <회사를 관두는 최고의 순간>은 보는 이의 시선과 태도가 볼 수 있는 것들의 내용과 깊이를 결정함을 알려주는 모범적 텍스트이다.

<박희정 기록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