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기기괴괴」-상식을 뛰어넘는 ‘기기괴괴’한 작가들

<기기괴괴>는 기괴하거나 기발한 이야기, 규정하자면 스릴러 장르물이다. 2013년 5월 ‘예고편’이 올라온 이후 지난주에 189화가 연재되었다. 작품마다 편차는 있지만 “어떻게 이런 소재를 계속 생각해내는 거지?” 싶은 것들이 꾸준히 올라온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혜성처럼 나타나는 새로운 작가들이 있다. 화려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그들은 종종 어디에선가 흔적 없이 소멸해 버리곤 한다. 전작의 훌륭함을 스스로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누구나 한두 편의, 혹은 몇 편의 작품을 잘 쓸 수는 있다. 하지만 꾸준히 ‘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등장한 역작보다는 그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좋다.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좋은 작가를 바라보는 일은 기쁘고 설렌다.

오성대 작가의 만화 「기기괴괴」의 한 장면./네이버 웹툰

네이버 웹툰의 오성대 작가에 경외심

그런데 가끔, 어느 상식을 한 단계 뛰어넘어 버리는 작가들이 있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그렸지/썼지?” 하고 감탄하고 나면, 곧이어 그보다 나은 후속작을 내놓는다. 처음 몇 편은 그럴 수 있다지만 몇 년 동안 그것이 이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실함과 재능을 겸비한, 정말이지 드문 종류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네이버 웹툰에 <기기괴괴>를 연재하는 오성대 작가가 그렇다. <기기괴괴>는 기괴하거나 기발한 이야기, 규정하자면 스릴러 장르물이다. 2013년 5월 ‘예고편’이 올라온 이후 지난주에 189화가 연재되었다. 작품마다 편차는 있지만 “어떻게 이런 소재를 계속 생각해내는 거지?” 싶은 것들이 꾸준히 올라온다. 작가는 <절벽귀>라는 개별 단편을 통해 이미 장르물에서의 탁월함을 입증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최근 네이버 웹툰에서 ‘레전드 웹툰’으로 분류되며 재연재되었다. <기기괴괴>에서는 <절벽귀> 분량의 단편들이 계속 연재된다. ‘성형수’라는 에피소드에서 기괴함의 정점을 찍었고, 최근 연재되고 있는 ‘14k’ 역시 그간의 전작들이 높여둔 기대감을 충족시켜 준다. 두 편의 줄거리를 각각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몸을 잠시 찰흙처럼 만들어 주는 성형수가 발명된다. 원하는 만큼 살을 떼어내거나 붙이는 것도, 코를 높이거나 눈을 크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누구나 집에서 간단히 시술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비싼 가격에도 잘 팔려 나간다. 주인공은 성형수를 욕조에 부어 놓고 들어갔다가 깜빡 잠이 든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몸이 거의 녹은 뒤다. 그의 부모가 자신의 살을 떼어 몸의 일부를 복원시켜 주지만, 그는 살인을 저질러 그의 살과 뼈를 이용해 ‘예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어느 날, 주인공의 피부가 금빛으로 변한다. 사람들에게 괴물 취급을 받던 그는 자신의 몸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금은방에 가져가고, 자신의 몸에 순금이 도금된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인터넷 방송에도 진출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시작하지만 연예기획사 직원으로 가장한 이들에게 납치를 당한다.”

오성대 작가를 만난다면 나는 그에게 “매번 소재를 어떻게 구상하시나요?” 하고 묻고 싶다. 어느 작가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하면 그렇게 잘 선별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능력이고, 직접 구상한다고 하면 물리적으로 그게 가능할까 싶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소재를 찾기 위해 기억을 헤집고 들춰내야 하는 나로서는 그의 꾸준함과 재능이 몹시 부럽다. 그가 스릴러라는 서브컬처 영역의 장르물 작가로 계속해서 활동해 주기를 바란다.

만화가 아닌 영역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좋은 작품을 꾸준히 내놓는 소설가로는 장강명이 있다. 2011년에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대표작인 <한국이 싫어서>와 <댓글부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글을 쓰고 있다. 수림문학상, 문학동네 작가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제주 4·3 평화문학상 등 수상경력이 말해주듯 단순히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글을 많이 쓴다. <표백>에서 보여준 특유의 속도감 있는 우울함은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만의 문체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아스타틴>이라는, 목성과 토성을 배경으로 하는 SF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다. 장르를 오가는 모습 역시 우리 세계가, 또는 독자가 장강명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한 명의 작가를 더 소개하고 싶다. ‘오늘의 유머’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공포게시판에 ‘복날은 간다’라는 필명으로 스릴러물을 쓰는 김동식 작가다. 그는 아마도 작년과 올해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글을 쓴 작가 중 한 사람일 것이다. 2016년 5월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단편을 쓴 이래로 지금까지 총 300여편의 글을 썼다. 분량을 원고지 30장으로만 잡아도 대략 1만장에 달하는 글을 쓴 것이고, 단행본으로 환산해도 10권이 훌쩍 넘는다. 정식 연재도 아니고 원고료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2~3일에 한 편씩은 꼭 글을 올린다. 커뮤니티에는 그의 독자들이 많이 생겼다. 올리는 글마다 조회수가 1만이 넘어가고 그를 좋아하는 이용자들의 댓글이 수십 개씩 달린다. 일반 게시판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일명 ‘베오베’로 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나 역시 그의 글을 일부러 찾아서 읽는 독자다.

글쓰기를 배운 적 없다는 김동식 작가

나는 <기획회의>라는 잡지에 ‘김민섭이 만난 젊은 작가들’이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연재한다. 이번 달에는 김동식 작가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민망해 했지만, 나는 그의 글을 무척 좋아한다. 처음 몇 편의 단편을 보았을 때는 글이 좋아 이름을 기억하는 정도였고, 언제까지 그 수준이 유지될까 했는데 그것이 10편이 되고 20편이 되더니 이제는 300편이 된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덧 흥미로움에서 경외로 바뀌었다. 그는 이전에 없던 문장으로 <기기괴괴>만큼이나 기발하고 기괴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에게 “글쓰기를 혹시 공부하신 일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어린 나이에 공장의 노동자로 생계를 위한 노동을 시작했고, 아연을 주물하는 공장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고 했다. 글쓰기를 배운 바는 없고, 그래서 ‘글 쓰는 법’이라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기승전결이라는 단어도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글의 소재 같은 것은 공장에서 노동하는 시간 동안 계속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면 좋을 텐데’ 하고 상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1년 4개월에 이르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풀어내고 있는 셈이다. 비로소 그의 문장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들이 왜 전에 없던 것으로 와닿았는가를 알았다. 그는 누군가의 문장을 닮으려 해본 일이 없고, 지금도 자신의 언어를 구축해 가고 있는 전에 없던 작가인 것이다. 요즘에는 독자들의 댓글을 보며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는 그가 어쩌면 새로운 시대의 작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화로 본 세상

장강명 작가는 이미 기대 받는 수준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소설가 중 한 사람이 되었고, 오성대 작가는 네이버 웹툰의 목요일을 대표하는 만화가로 자리매김했다. 각각 소설과 만화라는 장르에서 내가 ‘경외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들이다. 거기에 나는 김동식이라는 작가를 추가하고 싶다. <기기괴괴>라는 만화의 제목은 어쩌면 1년 3개월 동안 그가 써내려간 300여편의 단편 작업들을 그대로 설명해 주는 듯하다. 한 작가가 그만큼 거대한 분량의 글을 쓰며 자신을 꾸준히 성장시켜 나가는 것은 그 자체로 몹시 놀라운 일이다. 나는 이들의 만화를, 소설을 독자로서 즐겁게 지켜보려 한다.

<김민섭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