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바토리의 아들>-자식을 지키기 위한 고전적 의미의 ‘모성’

작품 속의 모성은 실제로는 모성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며, 이데올로기적 편견만을 강화한다. 현실의 모성은 빈곤한 상상력을 박차고 변화무쌍해진 지 오래다.

‘피의 백작부인’이라 불리는 여성이 있다. 에르제베트 바토리(1560~1614). 젊음과 미모를 유지시켜준다는 믿음 때문에 젊은 처녀 수백 명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죽여 그 피로 목욕을 했다고 알려진 헝가리 왕국 출신의 귀족 여성이다. 세상은 ‘바토리 부인’의 이야기를 확인된 진실처럼 소비하지만, 사실 그녀가 저질렀다는 악행을 구체적으로 증거하는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한편에서는 그녀가 정치적 싸움의 희생자였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바토리 가문은 당시 헝가리 왕국의 왕위를 가지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과 경쟁관계였으며, 왕가에 큰 돈을 빌려준 상태였다. 그녀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는 세력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정황적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근거 없는 의심이라고 할 수도 없다. 실제로 16~17세기의 유럽에서는 6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마녀사냥’으로 희생됐고, 그 중에는 혼자 있는 여성의 재산을 노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바토리의 아들」에서 에르제베트가 아들 미겔이 인육을 먹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다음웹툰

새로운 듯 새롭지 않은 이야기

가상의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로 에르제베트 바토리를 다시 대중 앞으로 불러낸 다음웹툰 <바토리의 아들>(글 호르자, 그림 영광)은 이러한 관점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듯하다. 작품 속에서 에르제베트는 자신이 다스리는 ‘기보르’의 부를 노린 세력에게 마녀로 몰려 죽는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세상에 알려지면 파멸할 죄를 저지른 잔혹한 악인이기도 하다. <바토리의 아들>은 다만 에르제베트가 죄를 저지르게 된 이유를 비튼다. ‘피의 백작부인’은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위해 살인했지만 여기에서는 아들 ‘미겔’을 지키기 위해 살인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미겔’은 오로지 인육만을 먹을 수 있다는 설정이다. 가문의 명예와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에르제베트는 아이를 지하실에 숨기고 측근을 시켜 죽은 지 얼마 안된 시신들을 훔쳐와 먹인다.

<바토리의 아들> 속 에르제베트와 ‘피의 백작부인’ 이야기 속의 에르제베트는 살인의 동기만 다른 것이 아니다. 여성 캐릭터의 측면에서도 둘은 다르다. ‘피의 백작부인’ 이야기에서 에르제베트의 주변 인물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마녀는 혼자 있는 여성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통상의 가족제도 안에 포섭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공포와 혐오가 더해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 <바토리의 아들> 속 에르제베트는 매우 잔혹하고 위험한 여성처럼 등장했으나 극이 진행되면서 사랑하는 남자를 통해 아버지의 폭력에서 구원 받고, 그 사랑을 지키는 청순한 아내였음이 드러난다. 그녀는 학대당하는 장면에서조차 성애화된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녀는 화면 밖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이들에게 결코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다. 에르제베트 바토리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에서 익숙하며 안전하게 소비될 수 있는 범주의 인물로 들어온다.

실존 인물을 창작에 활용할 때는 그 인물이 해석되고 수용되는 기존의 방식과 긴장관계를 가진다.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이건 모티프만을 따와서 완전히 다른 인물로 그려내는 것이건 간에 말이다. 그 관계 속에서 어디에 설 것인가를 작가가 분명히 인식할 때 캐릭터는 한 단계 도약한다. 인육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파격적인 설정의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그가 이끌어갈 복수극의 동기를 제공하는 역할로 가공된 에르제베트 바토리는 아쉽게도 전형성들의 익숙한 조합을 선보일 뿐이다. 이러한 변주는 <바토리의 아들>이 에르제베트라는 인물의 재해석보다 미겔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남성 주인공의 성장서사에 방점이 찍힌 작품이라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현실의 어머니, 판타지 속의 어머니

또한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그녀를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고전적인 의미의 ‘모성’이다. 그녀는 아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미겔을 세상과 격리하고, 타인을 거리낌 없이 해한다. 그 정도로 ‘지독한’ 것이 모성이라고 자신감에 차서 말하는 이러한 식의 태도는 모성에 대해 실제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며, 이데올로기적 편견만을 강화한다.

나는 현실 속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선 수많은 ‘어머니’들을 만났다. 촛불광장에서, 탈핵을 위해 싸우는 밀양에서, 4·16 이후의 거리에서, “사드 가고 평화 오라”를 외치는 성주에서…. 수없이 많은 한국 사회의 ‘현장’ 속에서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선 엄마들은 싸움을 주도하거나 연대의 핵심 세력으로 존재했다. 이 현실의 어머니들은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의 행복을 대립이나 경쟁관계에 매몰시키지 않는다. 생물학적 관계를 넘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공존하는 원리를 성찰한 결과일 것이다. 현실의 모성은 빈곤한 상상력을 박차고 변화무쌍해진 지 오래다.

나에게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장면은 미겔이 인육을 먹게 된 이유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설정에서 나온다. 작가는 이에 대해 ‘때때로 어떠한 이유도 없이 사람은 힘든 상황에 내던져지는데 그것을 어떻게 겪고 극복해나가는가, 그것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선악으로 구분지어질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풀어보고 싶었다고 밝힌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부모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요즘 연구에서는 식성마저도 유전의 결과라 하지 않던가. 그런데 엄마들은 엄마가 다양한 맛을 접하게 해주어야 아기가 편식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란다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듣는다. 아이는 부모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발견해주어야 하는 존재에 가깝다. 그러나 양육의 책임을 혼자 진 엄마들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까지 내 책임으로 받아들이며 불안감에 짓눌린다. 사방이 막힌 지하 독방 안에 미겔과 마주 선 에르제베트의 모습은 그래서 오히려 나에게 묘한 현실감을 자아냈다.

만화로 본 세상

모성이 나쁜 의미로 지독해진다면 그것은 어머니가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평등한 육아환경,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올해 6월 창립한 ‘정치하는 엄마들’은 “모성은 생식적 어머니와 분리하여 돌봄과 살림을 수행하는 모든 주체의 역할을 가리키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독박육아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고, 모성이 헌신과 희생이라는 단어 안에 갇혀 있는 한 우리 사회가 가진 수많은 문제들은 해결할 길이 요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희정 기록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