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며느라기>-며느리라는 ‘원죄’를 끊기 위하여

가족의 행복을 지키면서 가부장제 바깥을 향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그 ‘행복’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행복한 우리 가족’을 깨뜨려, 행복이 어디의, 누구의 전유물이었는지를 밝히고 단호하게 결딴내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결혼 후의 일상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얼마 전 행사에서 사람들과 두런두런 수다를 떨다가 우연히 서로의 최근 고민이 일치한다는 걸 발견했다. 결혼생활에서의 갈등을 어떻게 원만히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이런저런 가사노동과 육아일을 어떻게 분업해야 하는지도 주요 테마였지만 무엇보다도 남편과 아내의 원가족을 대하는 일에서 많은 갈등이 빚어진다고 했다. 특히 행사에 참여했던 한 사람의 말이 인상 깊었다. 그녀는 대안적인 결혼식을 고민하여 진행했지만, 결혼식 이후의 삶은 대안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허례허식을 최소화하는 것이 ‘결혼식’에 그치지 않고 결혼식 이후의 실제 삶으로까지 연결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된다는 그녀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지지를 보냈다.

남편의 원가족 대신 시댁일 가사 책임

최근 SNS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웹툰 <며느라기>(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서 연재)의 핵심 갈등은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원가족과 맺는 관계에서 기인한다. <며느라기>의 주인공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민사린’으로, 그녀의 남편은 대학 동창이었던 ‘무구영’이다. ‘무구영’의 원가족은 부모님(‘무남천’, ‘박기동’)과 삼남매로 이루어져 있다. ‘무구영’의 손위 형제인 ‘무구일’ 역시 결혼해서 현재 만삭인 ‘정혜린’와 함께 살고 있고, 손아래 여동생 ‘무미영’이 있다.

결혼 후 사린은 지금까지 세 차례의 큰 행사―시부모의 결혼기념일, 시어머니 생신, 할아버지 제사―를 치렀다. 이 행사들을 치르면서 중간중간 과일을 깎거나, 음식을 준비하거나, 설거지하는 일에 있어서 남편인 구영이 개입하는 일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음식은 대개 구영의 어머니인 기동과 사린이 준비하고, 설거지나 과일 깎는 일은 전적으로 사린의 몫이다. 남편의 원가족은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데 사린은 원가족의 일원도 아니면서 늘 혼자 일을 한다. 가사노동에 더해 구영의 부모님이 하는 말들도 사린에게 상처가 된다. 구영의 아침밥을 챙겨줘야 하니 출장을 가지 말라고 한다거나, 사린에게 린넨 앞치마를 선물로 주는 등 기동은 사린을 구영의 뒷바라지하는 사람으로만 대한다.

둘째 며느리인 사린이 ‘나를 지키지 못’하는 것과 달리 첫째 며느리인 혜린은 당당하게 자신을 방어한다. 당일 갑작스럽게 연락받은 제삿날에도 어김없이 찾아가 전을 부치는 사린과 달리 형님인 혜린은 아예 오지 않는다. 만삭이어서 그랬는지, 만삭이 아니어도 그럴지는 모르지만 혜린은 자신이 제사에 안 가는 게 ‘맞는’ 일이라고 여긴다. 생신 아침에 사린이 혼자 미역국을 끓였다는 말에 시누이, 시어머니를 향해 “자식들은 가만히 있고 인제 결혼한 동서만 했다면서요? 정말 너무했어요”라고 일침을 날린다. 구영이 말하는 바 혜린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혜린은 남편의 원가족이 부과하는 가사노동에 참여하지 않고, 도를 넘는 참견은 칼같이 끊는다.

혜린과 사린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단지 서로 지닌 ‘개념’ 차이인 걸까? 사린에게 씌워진 굴레는 복잡하다. 사린의 친정엄마는 사린이 시어머니의 생일상을 차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오히려 “사부인에게 잘해야 부모 욕먹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종신 노비 며느리의 옷을 완벽하게 입은 사린의 어머니나 시어머니는 사린을 싫어하거나 업신여겨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그렇게 대우 받아 왔기에 같은 상황을 반복한다. ‘원래’, ‘당연히’ 그랬기 때문이다. 찬밥이나 남은 사과를 사린에게 먹일 때도 늘 기동이 절반을 먹는 모습에서 기동의 ‘며느리 됨’을 짐작할 수 있다. 기동도 늘 찬밥을 먹어 왔고, 남은 과일을 처리하는 역할을 자임해 왔을 것이다. 사린에게 비슷한 며느리 상을 요구하는 사린의 친정엄마 역시 기동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사린이 며느리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시부모의 사랑, 자신의 인정욕구, 남편과의 평화를 포기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사린의 원가족인 친정엄마의 기대마저도 깨뜨려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고작 고민이 설거지라니 시시하다. 그런데 그 시시한 고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네.” 사린이 시시하다고 말하는 이 고민은 며느리로 환원되지 않고 ‘민사린’으로 존재하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존재하는 민사린은 누구인가? 민사린이 남편의 원가족에서 어떤 관계로 있을지 결정하는 데에 있어 친정엄마의 말과 구영의 기대 역시 큰 영향을 끼친다. 그 말들이 민사린의 내면을 구성하는 하나의 면면들로 존재할 때, 며느리의 의무를 벗는다는 건 사린 자신에 대한 폭력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민사린이 민사린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민사린을 깨야 하는 것이다.

‘민사린’이라는 여성의 결혼생활을 다룬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 / 며느라기 페이스북 캡처

며느리 부담은 며느리에게로 대물림

‘며느리’에서 해방되는 데에는 여러 길이 있겠지만, 혜린을 본받아 가장 확실하게 탈주할 방법은 ‘내 인생 사는 사람’, ‘가족의 고생을 외면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감수하는 것이다. 착하지 않아야 하고, ‘네네’ 하지 않아야 하고,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애써 ‘No’를 선언했을 때 다른 피해사실에 영향 받지 않는 ‘강철 멘탈’까지 지녀야 한다. 혜린이 혼자 전 부치는 사린을 걱정한다고 해서 그녀를 위해 함께 그 자리에 가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린이 가지 않으면 기동의 몫으로 남을 노동이지만, 사린이 사린으로 있기 위해서 (이미 남성 캐릭터들은 계속 외면해 오고 있지만) 기동의 고된 가사노동을 외면해야 한다. 고민은 ‘시시’할지언정 정말 많은 용기를 무릅써야 하는 일이다.

가장 고통 받는 건 며느리인데, 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것도 다시 며느리로 수렴되는가. 구영에게서 볼 수 있듯 (작중의) 남성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린이 하나하나 지적해주고, 인상을 쓰고, 어르고 달래도 마찬가지다. (작중의) 남성들은 집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밥 먹을 권리를 손에 쥐고 있다. 특권을 포기하라고 설득해봐야 그들은 놓지 않는다. 그나마 지금까지 등장한 캐릭터 중 가장 좋은 남성은 ‘무구일’이다. 그는 ‘조신’하게 혜린의 언행에 일절 참견하지 않는다. 혜린을 두고 괜히 혼자 제사에 와서 대신 쓴소리를 받느니 아예 그도 함께 오지 않는다. 구영도 형을 본받아 딱 그 정도만 하라고 하고 싶다. 사린이 무진 용기를 내고,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도 모자라 사린의 원가족에게도 죄책감을 가지면서 그 시시한 일과 투쟁하려 할 때 구영의 자리는 딱 여기, ‘유구무언’이다.

만화로 본 세상

가족의 행복을 지키면서 가부장제 바깥을 향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그 ‘행복’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행복한 우리 가족’을 깨뜨려 행복이 어디의, 누구의 전유물이었는지를 밝히고 단호하게 결딴내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며느라기>는 사린이 그때 쓸 칼을 벼르는 이야기가 아닐까. 스스로 노예되기를 거절하는 숱한 여성들과 함께 모든 ‘며느라기(며느리가 스스로 예쁨 받고 싶어서 노동 착취를 자임하는 기간)’의 종말을 손꼽아 기다린다. 바람이야 모든 며느리(혜린, 기동, 사린)들의 해방이지만 불가능하다면 사린만이라도 행복해지는 길을 찾았으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예쁨 받지 않아도 괜찮아”가 아니라 “미움 받아야 나라도 산다”다.

<조경숙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