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사람냄새」와 「먼지 없는 방」-백혈병 사망자들과 삼성의 지난한 싸움

IBM과 인텔 등 세계적 반도체업계는 이미 1995년 이전에 반도체 라인 노동자들이 독성물질에 노출되고 있음을 파악했다. 이에 자국 반도체 생산라인을 축소하고 다른 곳에서 반도체를 구입해 쓰는 방안을 모색했다.

한 사람이 있었다. 고3이던 2003년 10월, 그는 아주 큰 기업에 입사한다. 1993년 이후로 지금까지 메모리 분야 세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회사다. 그곳에서 2년 반가량을 일한 그는 2005년 6월에 질병으로 인한 휴가를 냈다. 1년 4개월이 지날 무렵 회사에 ‘사표’를 냈고 이듬해 2007년 3월 6일 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23세. 고인의 이름은 황유미, 사인은 백혈병이었다. 그리고 회사의 이름은 삼성전자다. 이 글은 황유미씨의 죽음 후로 이어진 삼성을 둘러싼 나비효과를 <사람냄새>(김수박)와 <먼지 없는 방>(김성희), 2012년에 출간된 두 만화작품을 통해 이어간다.

김수박 작가의 만화 「사람냄새」의 한 장면. / 보리

주요 언론사들이 침묵을 지킨 이유

두 만화의 정리에 따르면, 죽음은 우선 고인 부친의 입으로 말해졌다. 부친 황상기씨가 당시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황유미씨의 사연을 알리고 공론화할 곳을 찾은 것이다. 그 말이 잡지 <말>지를 통해 활자화되었다. 장례를 치른 직후였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소재지 수원의 지역지 <수원시민신문>이 활자화의 바통을 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딱 스톱’이었다. 삼성으로부터의 광고수입을 무시할 수 없는 언론사들이 침묵을 지킨 것이다. 하지만 황상기씨는 시끄럽기를 멈추지 않았다. 회사에 계속해서 항의하는 한편으로 다산인권센터와 함께 반도체 직업병 산업재해 문제를 환기해 나갔다. 중병을 앓거나 죽은 이들이 황유미씨 하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2007년 11월부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활동을 시작했다.

황상기씨와 반올림이 삼성에 맞서 이어간 싸움은 지난했다. 하지만 끊이지 않았다. 그 싸움의 한 편에 만화가 있었다. 김성희와 김수박은 다른 작가들과 함께 작업한 옴니버스 형식의 르포 만화 <내가 살던 용산>(2010)과 <떠날 수 없는 사람들>(2012)을 통해 한국 사회의 재개발·재건축을 둘러싼 문제를 환기한 바 있다. 이어진 <먼지 없는 방>과 <사람냄새>에서는 각자 한 권씩 장편을 맡아 그려냈다. <사람냄새>는 고 황유미씨와 부친 황상기씨를 중심으로 했고, <먼지 없는 방>은 황유미씨보다 2년 앞선 2005년 7월에 같은 백혈병으로 사망한 반도체 노동자 황민웅씨의 이야기를 그의 부인이자 동료인 정애정씨의 목소리로 재구성했다. 140쪽 내외의 장편인 만큼 취재와 인터뷰, 자료조사 등 사전작업이 꼼꼼하다. 또한 만화의 장점을 살려 반도체공장 내부의 모습과 작업공정을 알기 쉽게 그려 보여준다.

하지만 이야기는 공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두 작품 모두 이 싸움의 어려움/이 어려운 싸움을 촘촘히 기술한다. 정애정씨는 남편의 죽음 이후에도 한동안 반도체공장에서 일했다. 직업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로 가족의 생계를 짊어져야 하는 상황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황상기씨도 황유미씨가 투병 중이던 때 사표를 제출하면 치료비를 지원하겠다는 삼성 측의 제안에 숨은 저의를 의심하지 못했다. 조금 늦게, 반도체공장의 책임을 깨닫고서야 두 사람은 싸울 수 있게 되었다. 피해자들이 부족한 정보 속에서 싸워야 할 대상도 이유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앞선 언급한 언론의 침묵도 이런 어려움의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반올림의 활동 덕에 반도체 노동자들의 제보가 잇따랐고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제보만도 191건(전체 전자산업 376건)이다. 그 가운데 사망자는 무려 63명이다.

삼성이 반도체 산업 강자로 떠오른 배경

한편, 반올림이 출범할 무렵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의 양심선언이 있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한 그의 양심선언은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정계·법조계·언론 등을 망라하는 ‘삼성 네트워크’의 존재를 폭로했다. 삼성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네트워크와 그것을 묵인하는 한국 사회가 까발려졌다. 이후 그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2010년)를 통해 더 소상히 기술된 삼성의 병폐는 ‘국민기업’답게 크고 넓었지만, 이 글이 그 전체상을 다룰 ‘깜냥’은 없다. 그저 황유미씨가 죽은 이후로 이어진 나비효과들을 저 양심선언을 포함해 일부 소개할 수 있을 뿐이다.

안타깝지만, 이후로 이어진 수많은 산재 관련 재판은 대체로 삼성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형 로펌들이 삼성을 위해 변론하고 있는 상황이고, 삼성에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산재가 최종 인정된 경우도 있으며, 황상기씨도 반올림도 계속 싸우고 있다. ‘이어말하기’와 노숙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김성희 작가의 만화 「먼지 없는 방」의 한 장면. / 보리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니 말도 글도 끊어지지 않는다. 지난 7월 7일자 <경향신문> 인터뷰 “산재 조사과정서 느낀 ‘그들의 억울함’ 나도 트라우마 생길 정도”도 그 중 하나다. 반올림 자문의인 공유정옥은 그가 임종을 지킨 노동자만 셋이다. 그는 “당신의 병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 직업병입니다. 치료를 도와줄게요. 설령 잘못되더라도 가족에게 최소한의 생계비는 지급될 테니 걱정마세요”라는 최소한의 약속을 정부로부터도 회사로부터도 받지 못하고 사망한 산재노동자들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7월 26일자 <시사IN>에 실린 “나는 삼성의 진짜 주인을 안다”(문정우)라는 제목의 기사 역시 그 나비효과다. 기사에 따르면 IBM과 인텔 등 세계적 반도체업계는 이미 1995년 이전에 반도체 라인 노동자들이 독성물질에 노출되고 있음을 파악했다. 이에 자국 반도체 생산라인을 축소하고 다른 곳에서 반도체를 구입해 쓰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곳이 삼성이다. 이것이 삼성이 반도체산업의 강자로 떠오른 배경이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떠안고서 반도체를 생산한 노동자들에게 삼성은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삼성의 ‘진짜 주인’이 누구겠는가.

나는 앞서 소개한 기사들을 읽고서 <사람냄새>와 <먼지 없는 방>을 다시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비효과는 말과 글과 이미지를 타고 이어진다. 가장 대중적인 형식인 만화와 2014년에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까지 다양한 문화형식이 삼성에 그 죽음의 책임을 묻고 있다. 영문학계에서는 흑인 민권운동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해리엇 비처 스토)의 역할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환기한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아우슈비츠를 다시 성찰하게 한 아트 슈피겔만의<쥐> 등 만화까지, 사회적 변화에 역할을 한 문화형식의 예는 많다. <먼지 없는 방>과 <사람냄새>도 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작품들이다. 물론 변화의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작품은, 텍스트와 이미지는 그저 거들 뿐이다.

만화로 본 세상

그 텍스트와 이미지를 읽고서, 사태를 알고서 ‘사람’이 하는 말과 활동을 기다린다. “제품을 ‘사람’에게 팔고 싶다면, ‘사람’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 김수박 작가의 말이다. “(싸우는) 이들의 끈질김으로 이 사회가 이끌려간다. 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김성희 작가의 말이다. 나 역시 그들에 이어 말했고,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정확하게 책임지고 진실하게 사죄하라.” 곧 ‘최순실 특검’ 선고공판에 설 이재용 부회장에게 건네고픈 말이다.

<조익상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