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왜 당뇨병이 오래되면 췌장암이 생길까?

당뇨인에게 많은 또 하나의 암인 췌장암은 더 큰 고민거리입니다. 췌장암은 증세가 나중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조기진단도 어렵고 5년 생존율이 10% 미만으로 아주 위험한 질환입니다. 그래서 당뇨인은 췌장이 특히 문제입니다.

과거에 평균수명이 짧았을 때는 당뇨병도 적었고 암도 적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의학과 과학의 도움으로 특별히 좋은 체질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무난하게 70세는 넘게 살고 있습니다. 질병에 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단 수명이 연장되었지만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 등의 대사질환과 더불어 암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암통계를 보면 암 발병 패턴이 비만과 관련이 깊은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비만은 모든 암과 관련이 깊지만 특히 소화기암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식도암, 위암, 대장암은 물론 간암, 담낭암, 그리고 췌장암이 대표적입니다. 점점 비만해지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큰 고민입니다.

비만 상태의 직장인의 모습./경향신문 자료일러스트

당뇨병과 암

그런데 암과 관련해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병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뇨병입니다. 당뇨병의 가장 대표적인 합병증은 심장병과 신부전 등의 혈관과 관련된 합병증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당뇨 합병증은 바로 암입니다. 의사나 당뇨인 모두 당뇨병 하면 혈관 합병증을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만, 암이 당뇨병과 관련된 중요한 합병증이라는 것은 잘 망각합니다.

당뇨병은 거의 모든 암의 발병위험을 높입니다. 호주 정부(National Diabetes Service Scheme)가 시행한 대규모 연구의 결과를 보겠습니다. 연구자들은 1997년부터 2008년까지 95만명의 당뇨인에 대한 암통계를 정리했는데, 제2형 당뇨인 87만명 중 약 7만명에서 이 기간 동안 암이 생겼고, 약 2600명이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2형 당뇨인 중 남자는 비당뇨인 남자에 비해 암 발생 위험이 8% 증가했고, 여자 당뇨인은 암 발생 위험이 무려 22% 증가했습니다. 1형 당뇨병 역시 남자의 암 위험은 2% 정도이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당뇨인의 암 위험이 비당뇨인에 비해 10%나 증가했습니다. 이 통계를 보면 당뇨가 되면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고, 특히 여자가 남자보다 더 위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각의 암을 살펴보면 특히 간암과 췌장암이 당뇨인에게서 훨씬 많았습니다. 간암은 일반인에 비해 3배나 많았고, 췌장암은 2배나 많았습니다. 당뇨인에게서 간암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지방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음, 과식, 운동부족 때문에 복부비만이 되고 남아 도는 지방이 간에 끼면 지방간이 됩니다. 지방간은 만성적이고 광범위한 염증을 일으키는데 그 결과 지방간염이 되고 나중에는 간암이 되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특히 당뇨인은 뱃살을 시급히 줄여야 합니다.

당뇨병과 췌장암

간암은 그래도 조기에 발견이 가능하지만 당뇨인에게 많은 또 하나의 암인 췌장암은 더 큰 고민거리입니다. 췌장암은 증세가 나중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조기진단도 어렵고, 5년 생존율이 10% 미만으로 아주 위험한 질환입니다. 그래서 당뇨인은 췌장이 특히 문제입니다. 당뇨병은 췌장의 인슐린 분비에 문제가 있어 생기는 질환입니다. 1형 당뇨병은 인슐린이 안 나와서 문제이고, 2형 당뇨병의 경우에는 처음엔 인슐린이 오히려 많이 나오면서 혈당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세월이 지나갈수록 결국 인슐린 분비가 정상 이하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왜 당뇨병이 오래되면 췌장암이 생길까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 보면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췌장세포가 인슐린에 과다노출되어서 암세포로 변한다는 추정입니다. 인슐린은 세포를 성장하게 하는 성장호르몬의 역할을 합니다. 이 역할이 적당할 때는 좋지만 너무 과하게 오랫동안 지속되면 대상 세포에 좋지 않은 작용을 하게 됩니다. 제2형 당뇨병은 1형처럼 인슐린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초기에는 정상보다 더 잘 나오게 됩니다. 췌장의 베타세포라는 곳에서 인슐린이 나오는데 주변의 다른 세포가 고농도의 인슐린에 노출됩니다. 2형 당뇨병의 초·중기에는 오히려 베타세포에서 인슐린이 더 많이 나오고 그 결과 주변 세포가 증식하고 그 중 일부가 암세포로 퇴행하여 췌장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뇨병이 오래되면서 혈당 조절이 안 되면 이상한 당화 단백질(AGE)이 생기는데, 이 물질은 세포의 염증반응을 증가시키고 암세포로 퇴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췌장뿐만 아니라 대장세포, 유방세포도 이 물질에 영향을 받는데, 그래서 당뇨인에게서 대장암과 유방암도 많이 생긴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바로 뱃살입니다. 내장지방이라고도 하는데 윗배에 낀 지방으로 췌장을 감싸고 있습니다. 이 지방은 다른 피하지방에 비해 유난히 식사에 잘 반응하는데, 고지방 고칼로리 식사를 할 때 가장 활성이 강해서 근처에 있는 췌장세포의 암 이행을 유발합니다. 당뇨병이 아닌 비만인 경우에도 췌장암이 잘 생기는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뇨병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이런 세 가지 기전을 거쳐 췌장암이 비당뇨인에 비해 2배 더 잘 생깁니다. 그런데 여기에 흡연을 하게 되면 무려 8배나 더 췌장암이 잘 생깁니다. 여기에 늘 술을 마시면 더 심해져서 12~30배 이상 더 췌장암 위험이 높아집니다. 50대 당뇨인이 늘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 담배 피우지 않고 술 잘 마시지 않는 같은 나이의 비당뇨인에 비해 췌장암이 12~30배 더 잘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당뇨인은 특히 금연하고 술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췌장염이나 췌장암이 먼저 걸리고 그 합병증으로 당뇨병이 되는 경우입니다. 이걸 제3형 당뇨병이라고 합니다. 아주 드문 것으로 생각했지만 독일의 경우 처음 진단 받은 당뇨병의 9%가 이 경우라고 합니다. 외국 통계를 보면 췌장암을 진단 받은 환자의 74%가 2년 정도 먼저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뇨병이 췌장질환의 조기 경보가 되는 경우입니다. 드물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당뇨병을 처음 진단 받고 검사하다가 췌장암을 조기에 발견해서 수술한 후 정상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처음 발견되는 모든 당뇨병 환자가 다 췌장암에 대한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췌장암이 그렇게 흔한 질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본인이 음주와 흡연을 많이 했거나 50세 이후에 시작된 당뇨병의 경우에는 평가를 해볼 것을 권유합니다.

그렇다고 당뇨병은 바로 췌장암이라고 낙심할 것은 없습니다. 절대적인 비율로 볼 때는 그렇게 흔하지 않은 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뇨병과 비만이 늘어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는 점차적으로 많이 늘어날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당뇨인과 보건정책 담당자는 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암을 예방하기 위해 당뇨인이 해야 할 일

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

앞서 언급한 내용을 보면 당뇨인이든 비당뇨인이든 당연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술을 줄이고 담배를 끊어야 합니다. 위험률을 무려 30배 이상 낮출 수 있습니다. 아주 기본이고 절박한 조치입니다. 내장비만이 췌장암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고지방식과 과식을 피하고 체중과 뱃살을 줄여야 합니다. 당화 단백질을 줄이기 위해 혈당 조절을 잘 해야 합니다. 췌장세포에 암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로 인슐린을 너무 많이 나오게 하는 단순 탄수화물을 줄여야 합니다. 암뿐만 아니라 모든 병을 예방할 수 있는 행동으로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당장 실천하세요.

<연세조홍근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