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교수 주승현의 ‘우리는 모두 조난자다’](1) 스물두 살의 겨울, 경계를 넘다-다시 사선에 선 ‘휴전선 귀순자’들 많다

그해 겨울밤, 찬바람이 휴전선 철조망에 부딪혀 꺼이꺼이 울음을 토하던 그 밤에 비무장지대(DMZ) 북측 심리전 방송국에서 근무하던 나는 목숨을 건 귀순 길에 들어섰다. 손에는 직전의 동료(북한군)들로부터 몸을 지킬 AK자동소총뿐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북한군 GP(Guard Post)에서 한국군 GP 초소까지 뛰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5분, 걸어서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거리에는 남북 분단의 70년이라는 긴 시간이 멈추어 있었고, 그 길은 북한에서의 스무 해 넘는 인생을 뒤로 하고 내디딘 목숨 건 노정이었다.

귀순은 사실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군 특수병종에 뽑혀 DMZ에서 근무하는 민경대원(북한은 DMZ 내의 군인을 민경대원으로 칭하고, 한국은 민정경찰로 부른다)으로 선발되려면 우수한 출신성분뿐만 아니라 사상과 체력까지도 높게 검증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심리전 제압 방송국에서 나는 어린 나이에 전선지대 방송국 한 곳을 책임진 방송조장의 직무를 수행했고, 적과 아군이 대치한 전초선이자 대북방송과 대남방송이 뒤섞여 충돌하는 곳에서 남북의 분단상황을 6년간 목도했다.

북한에서는 어려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와 ‘조선은 하나다’라는 구호를 들으며 성장한다. 어릴 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한반도 지도가 그려져 있는 포스터에 적힌 ‘조선은 하나다’라는 구호였다. 체득한 논리대로라면 남북한은 원래부터 한민족이고 ‘남조선’은 미군이 일시적으로 강점하긴 했지만 곧 그들을 몰아내고 통일할 텐데, 굳이 ‘조선은 하나다’라는 표현이 맞을까 하는 갸우뚱해지는 의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임에도 통일의 필요성보다는 당위성이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었던 것 같다. DMZ는 북한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걷어낼 수 있는 철책선으로 보였고, 그래서 북한주민들은 휴전선 혹은 DMZ라는 용어보다 ‘38도선’이라는 용어에 더 익숙한지도 모른다.

1961년 베를린장벽을 넘어 탈출한 최초의 동독인민군 한스 콘라드 슈만의 사진 'come over.' 그의 뒤를 이어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던 1989년까지 2000명이 넘는 인민군 장교와 병사들이 서독으로 왔다. 냉전시대에 자유의 아이콘으로 떠받들렸던 콘라드 슈만은 통일 후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primterest.com

만 16살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입대

행복했던 기억들이 꿈이라도 되듯 급작스럽게 찾아온 나라의 위기는 중·고교 내내 계속됐다.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의 대기근은 마을과 거리에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내가 살던 한적한 군부대 지역으로 부모 잃은 아이들과 식량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밀려들었고, 군인들이 동원되어 길목들을 차단했다. 가끔 시내로 나가면 굶어서 쓰러진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한 번은 굶주린 채 건물 귀퉁이에 앉아 있던 내 또래로 보이는 소녀에게 빵을 사서 내민 적이 있었다. 빵이 그의 입가에 오르기도 전에 주변에서 맴돌던 개가 낚아채 도망쳤고, 나 또한 황급히 줄행랑을 치면서 공포감에 제대로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그 두려움은 죽어가는 소녀를 더 이상 내가 도울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미국과 ‘남조선 괴뢰도당’ 탓이라고 했다. 선군정치로 고난을 이겨내고 남조선을 해방해야 한다고 했다. 수령의 전선 시찰 뉴스와 전선에 대한 노래가 크게 울려퍼졌고, DMZ 내에서 도발하는 괴뢰군(한국군)들을 쫓아서 북한 군인들이 남측의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까지 내려갔다가 가슴을 치며 되돌아서야 했다는 소문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또 그즈음에 남조선을 해방하면 호남평야 등 기름진 곡창지대에서 지은 한 해 농사만으로도 남북한 주민들이 3년은 먹는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처음으로 민족 아닌 생사로서의 통일이 북한주민들에게 절박하게 인식되던 때였다.

만 16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했다.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계셨던 공군에서 군복무를 할 것을 바라셨지만 비무장지대를 고집했다. 지금은 북한군의 사병 근무기간이 10년으로 단축되었지만 당시에는 13년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통일을 향한 성스러운 남진(남한 진격의 길) 명령이 내려지면 13년 동안 군복무를 안 해도 될 것이라는 다소 이상적인 생각도 있었다. 처음 접한 비무장지대의 풍경도 그러한 생각을 충분히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란 듯이 남북한은 서로 고성능 확성기로 귀 따가운 심리전 방송을 진행했고, DMZ 밖에서 쉼 없이 쏴대는 중화기의 사격훈련 소리와 오랫동안 묻힌 탓에 들짐승이 지나치기만 해도 터지는 지뢰 폭발음, 가끔씩 오발인지 도발인지 모르게 상대구역으로 날아드는 적의 총탄이 여기가 일촉즉발의 대결장임을 확인해주는 듯싶었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남북한 간 급작스러운 해빙의 징조 또한 비무장지대에서 먼저 감지할 수 있었다. 희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던 MDL 순찰(중앙분계선 순찰)의 횟수가 줄어들었고, 서로를 비방·비난하던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은 각자 수위를 낮추어 진행됐으며, 양측의 전단지 살포는 전면 중단됐다. 곧이어 남북한 정상회담 소식이 터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DMZ 안팎의 철책을 절단하고 GP 초소를 옮기고, 지뢰구역을 드러낸 자리로 서울~신의주 철도와 문산~개성 도로를 다시 잇는 공사가 시작됐다. 근무하던 북한군 초소에서 남측의 도라산역이 착공되어 완공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고, 남북관계가 평화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소문이 주민들과 군인들 사이에서 파다해졌다. 비무장지대 인근지역에 개성공단이 들어선다는 발표에 13년 군복무를 마친 전역군인들은 대학 추천과 직업을 받아 고향으로 가는 대신 개성공단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군 출신 귀순자는 탈북민 사회서도 주변부

몸 담고 있던 방송국에도 변화가 있었다. 전력난과 장비 노후화 탓인지 대남 확성기 방송 중단을 지시한 상부의 명령 하에 우리는 대북 확성기를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한 제압방송을 운용했으나 그마저 장비와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여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웠다. 공세적인 대북 확성기 방송을 속수무책으로 들어야 하는 날이 거듭되면서 의도치 않게 남한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위치에 있게 됐다. 어느덧 육안으로 확인되는 한국군 GP 병사들을 뒤로한 채 ‘위험한 재미’를 찾아 여름이면 뱀장어와 잉어 잡이로, 가을이면 땅에 쫙 깔린 밤 줍는 재미로, 겨울이면 DMZ 안에 찾아든 기러기와 물오리 사냥으로 자연과 계절이 주는 포만감을 만끽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한편으로는 직업군인을 희망하여 군관학교(장교학교) 준비도 차근차근 진행했다. 그즈음 아버지가 뜻하지 않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고 깊은 고민 끝에 나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비무장의 북한지역에 설치된 4선의 1만 볼트 고압전기 철조망과 촘촘한 매복호, 각종 장애물과 겹겹의 철책선들, 넓은 지뢰구역과 전방 탐지기기의 추적을 피하면서 마침내 MDL(중앙분계선)을 넘었고, 귀순사실을 알리고자 허공에 총을 연발로 쏘며 탈출 25분 만에 나는 한국 측 GOP(General Outpost) 초소에 도착했다. 아마도 한국에 들어온 3만명의 탈북민 중 북한에서 남한까지 최단 시간 내에 온 사례에 속할 것이다. 목숨을 걸고 넘어온 만큼 자유와 희망에 대한 기대는 컸다. 그러나 탈북자, 새터민, 북한이탈주민, 월남이주민 등 특정사람임을 구분 짓는 용어 중 내키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자유는 있지만, 탈출한 이들이 이방인으로 취급받고 있는 사회에서 내가 기댈 곳은 없어 보였다. 특히 휴전선을 넘어온 귀순자로서의 정체성 혼란과 상대적 박탈감은 심한 좌절과 절망으로 바뀌었다.

간혹 사람들은 비무장지대를 넘어온 군 출신자들에 대한 대우와 보상에 대해 묻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군 귀순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소멸됐고, 오히려 군 출신 귀순자는 춥고 어두운 동면을 강요당해야 했다. 심지어 그들은 3만의 탈북민 사회에서조차 주변부가 되고 왕따가 된다. 같은 탈북민 처지에서도 ‘어떻게 부모형제를 버리고 공개적으로 휴전선을 통해 올 수 있느냐’는 힐난과 경계이다. 뭔가 이상한 것은 그뿐이 아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군 귀순자들 대다수는 ‘노크귀순’, ‘호출귀순’, ‘숙박귀순’, ‘대기귀순’ 등의 (군의 감시망을 뚫은) 당사자라는 이유로 연 2000회가 넘는 군부대의 탈북민 안보강의에도 초청받지 못한다. 다만 사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귀순’이라는 심벌이 해결사로 동원되기도 한다. 메르스 사태로 사회가 어수선할 때 ‘함흥에서 200㎞ 걸어서 귀순한 병사’에 대한 냄비 같은 뉴스가 언론매체를 뒤덮더니 친절하게도 귀순 동기와 소속부대, 보직과 고향, 경로와 귀순 시 제스처까지 낱낱이 조명했다. 자유를 찾아 왔지만 평생 고통과 죄책감 속에서 살아야 할 어린 귀순자는 분단사회가 만든 피해자이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또 한 명의 조난자였다.

그렇다면 3만의 탈북민 중에 휴전선을 넘어온 인민군 귀순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동서독을 가로지른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1963년부터 그 장벽이 붕괴된 1989년까지 서독으로 탈출해온 동독 인민군은 장교와 부사관 595명, 병사 1469명 등 모두 2064명이었다. 한국의 경우 탈북민의 입국이 본격화된 2000년부터 지금까지 휴전선을 넘어온 북한 인민군은 나를 포함하여 8명 정도다. 2064명 대 8명이라는 단순비교보다는 목숨 걸고 온 한국 사회에서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는 현재에도 자유를 찾아 귀순한 선배들의 행복한 삶을 매일같이 전하며 그들의 귀순을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넘어온 그들은 과연 행복하게 정착하고 있을까?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호출귀순’과 ‘노출귀순’의 주인공들인 엘리트 장교와 부사관 출신의 귀순자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형을 선고받아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숙박귀순’으로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주인공은 자신에 대한 신속하고 자세한 정보공개 탓에 고통과 죄책감 속에서 살고 있으며, 일부는 탈남(脫南)하여 외국을 떠돌고, 나머지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세상을 뜬 이도 있고, 직업을 찾아 막노동판을 전전하다가 불구가 된 이도 있다. 먼저 온 선배들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터전에 후배 귀순자들이 더 잘 정착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목숨을 걸고 휴전선을 넘어온 것이 후회될 뿐이다.” 언젠가 동료 귀순자를 면회 갔던 날, 창살 너머 저편에서 그가 나에게 던진 한마디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휴전선으로의 인민군의 귀순은 사실상 뚝 끊긴 상태다.

휴전선 인민군 귀순 사실상 뚝 끊긴 상태

대북 확성기는 DMZ 안의 인민군을 겨냥한 심리전 방송이다. DMZ 밖 북한지역에선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잘 전달되지는 않는다. “요즘 같은 타이밍에 휴전선으로 귀순자가 넘어와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고 왔다고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느 대북방송 관계자의 희망사항이 담긴 발언에 씁쓸하게 웃고 말았던 적도 있다. 지금까지 온 몇 안 되는 귀순자도 사실은 과거 방송을 진행하던 때가 아닌 합의로 중단되었던 시기에 대부분 넘어왔지 않았는가. 최근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무일푼에 가까운 보로금(報勞金·반국가단체나 그 관련 구성원으로부터 금품을 취득해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에 제공했을 경우 금품 가격에 따라 국가가 지급하는 돈)에 대한 정보를 반복하여 내보내기 시작한 배경에는 그만큼의 절박함이 배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보로금 때문에 탱크나 장사정포를 끌고 휴전선을 넘어오는 것이 현실상 가당키나 한 것인가.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는 인민군의 경우 출신성분뿐만 아니라 체제에 대한 충성도는 우리가 아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 DMZ에서 군복무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파격적인 대우는 물론 제대 후 탄탄대로가 보장된다. 그러한 그들조차 심리전 방송을 통해 대한민국을 동경한 나머지 그 기득권을 버리고 넘어올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북 확성기에서 말해주지 않는 또 다른 한국은 충분히 존재한다. 자유가 있는 사회인 것은 맞지만 직업은 아니더라도 기술 배우는 것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한국 사회를 차치하더라도 탈북민 사이에서조차 귀순자란 존재가 떳떳하지 못한 존재로 자리한다는 것을 과연 그들이 한 번이라도 상상해 봤을까? 이러한 사실까지 안다면 목숨 걸고 넘어올 만한 이유는 이미 크게 상실되어 있다.

체제경쟁이 더 이상 무의미해지고 국내로 입국하는 탈북민의 특성과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휴전선을 넘어오는 귀순자가 대우를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그러나 휴전선 귀순자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차별받거나 분단사회의 희생양으로 고통받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엘리트 탈북인들을 제외한 여느 탈북민과 마찬가지로 귀순자들은 ‘실업’과 ‘호구지책’의 사선에 서야 한다. 그럼에도 사회 무경험자로서 곱절로 가중되는 정착의 어려움이나 휴전선으로 넘어왔다는 환경적 요소조차 고려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게 지금도 진행형인 슬픈 고난의 현실이다.

탈북 교수 주승현의 ‘우리는 모두 조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