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교수 주승현의 ‘우리는 모두 조난자다’](11·끝) 분단선에 선 채, 다시 자유를 찾아서

어느 날 함께 도라산역에 갔던 고향후배가 북한쪽을 응시하며 물어왔다. “언제면 저곳으로 갈 수 있을까요?” 10년 전 북측의 DMZ에서 내게 물었던 부하의 질문처럼 남측의 DMZ에서 진지하게 묻는 후배의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근무했던 DMZ 내의 북측 방송국에서 창문을 열어젖히면 남측 DMZ에 위치한 도라산역이 마주 보인다. 엊그제 착공한 것 같은데 벌써 완성의 형태를 갖춰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게 방송국 후임이 슬며시 물어왔다. “쟤네들 우리보다 잘산다는 게 맞습니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글쎄’라는 단어만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부하가 던진 질문의 의도를 의심하고 경계해서라기보다 수년간 온갖 심리전에 노출되어 생활했던 경험으로도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무장지대의 상쾌한 공기와 함께 남쪽에서 오는 특유의 냄새에는 기가 막히게 적응했다.

휴전선 넘는 귀순자들의 동경과 착각

내가 수행한 방송국 업무 중에는 DMZ 내의 북한군 전투원들을 대상으로 녹화영상물을 통한 ‘정치교육’도 있는데 그 중에 <면전 심리전의 검은 내막>이라는 영상자료가 있었다. 이 영상물을 반복하여 보여주라는 지시가 자주 내려왔다. 영상물에는 휴전선을 넘어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간 북한군들도 등장하는데 그 귀순자들의 말로는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고도 비참했다. 처음에는 남쪽정부의 극진한 환대, 집과 자가용뿐만 아니라 좋은 직장으로의 취직알선도 있지만 이용가치가 없으면 국군의 생체실험 대상으로 특수부대 여군들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당한다는 내용과 영상이다. 영상물이 얼마나 섬뜩하고도 생동감 있게 제작됐는지 실제의 다큐로 믿는 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미 남쪽에서는 휴전선을 넘어오면 진행했던 환영행사나 기자회견 따위는 오래전에 그만뒀다. 집과 자동차를 선물해주고 취직을 시켜주는 호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이 미처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거다. 반대로 생체실험 대상으로 총에 맞아 죽고 칼에 배갈려 죽는 비참한 최후는 애초에 없었다. 정리하자면 귀순에 성공만 한다면 자유도 찾고 목숨도 보장받지만 다만 그 이후는 알아서 생을 개척해야 한다.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경의선역에 정지 표지판 너머로 북측으로 향한 철길이 보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그런데 그 어설프고 기망적인 영상물이 놀랍게도 ‘정-반-합’의 고리를 형성해가는 과정과 실체로 인해 본말전도의 ‘다큐’로 둔갑되고 있다. 휴전선을 넘어오는 귀순자들은 아주 간혹 있는데 대체로 심저엔 자유에 대한 원초적 동경과 함께 영상물에서 기억한 ‘취직’이나 일정한 대접에 대한 착각과 환몽이 존재한다. 역설적이게도 귀순을 선택하지 않는 대부분의 북한군들도 귀순 후 ‘실업’이라는 자본주의적 분단상황을 죽을 때까지 파악 못한다. 이는 북한주민들도 마찬가지다. 남한에 가는 순간 실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지만 한민족·한동포들로부터의 ‘차별’은 북한에서 사는 한 아무리 설명해줘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한국에 와서 마주친 현실은 책임지는 자유와 스스로의 개척을 통한 생존이지만 사회주의권에서 태어나 성장한 탓에 이에 익숙지 않은 많은 이들이 견디기 어려워한다. 특히 귀순에서는 성공했지만 사회생활 경험조차 없는 탓에 이곳에서 좌절하는 군 출신들의 형편은 더 어렵다. 국가가 이를 챙기기엔 남한주민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또 상대적으로 몇 안 되는 숫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이미 오래전에 실종됐다. 더 이상 목숨을 걸고 넘어와도 취직과 같은 호혜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경제적 대접보다는 자유의 땅에 온 그들도 함께 살아가야 할 구성원이자 동등한 국민이라는 사회적 인식만큼은 챙겨줘야 한다. 북한이 발본적인 상상력으로 구색하고 보급한 시나리오는 예상과 다르게 전개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의도치 않았던 이율배반적인 상황으로 효과를 보는 셈이 됐다.

남한의 도라산역에 서서 북측을 눈 시리도록 바라볼 기회가 자주 있었다. 한때 근무했던 초소도 확인하고 그 너머 개성공단의 표면적인 변화와 최근의 척박해진 상황도 살펴볼 수가 있었다. 넘어온 초기엔 아르바이트인 관광 가이드로 도라산역에 출입했고 시간이 흐른 후 교육자가 되어 학생들과 다녀오곤 한다. 자주 바뀌는 신분만큼이나 매번 착잡한 심정으로 그곳에 선다. 다시 설 때마다 이번에도 버텼다는 안도감이 그리움보다 먼저 의식을 감금하고 이런 저런 부침으로 그 자리에 설 수 없는 후배 귀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앞선다. 이 같은 상황에는 아랑곳없이 북한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북방송을 통해 이들의 풍요롭고도 행복한 삶은 끊이지 않고 DMZ를 넘어간다.

DMZ를 넘어와 이곳에서 살면서 ‘탈북’이라는 신분과 꼬리표를 떼어내고 싶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탈북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작금의 상황에 한숨 지으며 새벽을 맞이하는 날들이 적지 않았다. 공문서와 여권 등에서 드러났던 주홍글씨들은 점차 지워지고 있지만 분단사회 안에서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에서는 좀처럼 벗어나기가 어렵다. 언제인가 북한말투를 고쳐 신분을 세탁해보려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표준말을 따라하다가 울컥 감정이 북받쳐 크게 울었던 날이 있었다. 그날에 깨달았던 것은 분단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탈북자’란 신분과 꼬리표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울적할 때마다 DMZ로 와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익숙한 그곳의 공기와 북쪽지역에서 오는 냄새인 추억과 그리움의 냄새에 위로받곤 한다.

동등한 자격으로 인정 못받는 탈북자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했다. DMZ를 살아서 넘어 왔으니 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되고 실패하는지는 경험해서 안다. 그런 이유로 다른 경로를 통해 입국한 탈북민들 사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탈북자 주제에 무슨 대학이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귀순한 해에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이런 저런 차별도 있었지만 국회를 비롯한 여러 대기업에서도 근무해 봤다. 박사도 됐고 교수라는 소리도 듣고 산다. 어느 행사장에서 사회자가 자수성가로 잘 정착한 군 출신 탈북민으로 나를 소개할 때 밀려오는 현기증 앞에서 아찔했었다.

지난했던 개인사가 떠올라서가 아니라 동료 군 출신과 또 다른 탈북민들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든 것을 지켜본 나로서는 운이 좋았다는 말조차도 죄인의 독백처럼 내뱉어야 했다. 그리고 숱한 분단사회의 저변을 경험하면서 또 하나를 알아챘다. 분단사회에서 아무리 성공의 모자를 쓰고 명함을 만들어줘도 ‘탈북자’라는 신분이 존재하는 한 동등한 자격으로 인정받고 성장하기 어려운 경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조금 더 확대해 보면 분단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실상을 접하면서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운 좋게 생각하는 발상이나, 북한의 어려움과 비교하며 물질의 축복을 받은 것에 만족하는 태도, 혹은 탈북민을 보며 탈북자가 아닌 것에 대한 다행스러움도 결국엔 분단구조에 기거하고 있는 동거인들의 이중인식이자 모순어법이다. 분단이 민족의 번영과 국가의 도약을 가로막고 우리 사회의 모든 대립과 분열의 근원임을 직시할 때 현재의 분단이 미래에도 지속된다면 개인사적인 운도 보장받기란 불투명한 것이 아닌가. 보다 나은 삶과 미래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도 분단과 민족, 통일과 동포에 관심을 두어야 할 때이다. 진정 개인이나 공동체의 천운을 바란다면 분단 극복을 위한 노력에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기여해야 한다.

탈북 교수 주승현의 ‘우리는 모두 조난자다’

어느 날 함께 도라산역에 갔던 고향후배가 북한쪽을 응시하며 물어왔다. “언제면 저곳으로 갈 수 있을까요?” 10년 전 북측의 DMZ에서 내게 물었던 부하의 질문처럼 남측의 DMZ에서 진지하게 묻는 후배의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쪽에서 살았던 시간과, 이곳에 와서 살아남고자 버둥거렸던 노력이 다시 합쳐지면 저곳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분단선에 선 채 혼자 중얼거렸지만 ‘꿈의 정반합’에 기댄 진정한 자유에 대한 갈망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주승현(전주 기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