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충전 구걸’을 피하는 전기차의 자립정신

커피숍은 대화와 휴식 공간이어야 하므로 콘센트도 와이파이도 필요 없다던 커피빈. 하락하는 선호도와 매출 탓인지 최근에는 함께 제공하는 매장이 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중무장한 현대인에게 전파와 전기는 생명선이었다. 고독한 현대인에게는 화면을 밝히는 일이 대개 카페에서 대화나 사색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즈음 노트북은 9시간 이상 가는 체력에, 심지어 모바일 기기용 배터리팩으로도 비상 충전이 가능하다. 배터리팩 하나로 폰과 태블릿에 노트북까지 휴대품 모두를 충전할 수 있게 되니 콘센트 생각도 사라진다. 와이파이도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데이터통신과 테더링으로도 그럭저럭 충분하다. 생존을 우연한 생명선에 의존하는 대신 소지품만으로 어떻게든 해결하자는 황야의 자립정신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모처럼 엉덩이를 쉬게 할 그곳이 디지털로도 쾌적한 환경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휴대기기의 빈약한 배터리는 여전히 골칫거리지만, 기약 없는 혁신을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CPU의 소비전력을 줄이거나 운영체제의 효율을 높이고 충전 전력을 낮추는 내핍이 방책이다. 그래도 모자라면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하이브리드차 생산라인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IT의 상식은 또 하나의 성장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로 전기차(EV)다. 전기차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도내 모든 차를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야심을 밝혔다. 그러나 와이파이와 콘센트를 찾아 메뚜기처럼 뛰어다녔듯이, 빈자리 충전기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일상은 전기차를 상전으로 만들어버렸다. 겨우 찾은 충전기, 그런데 완속이라 몇 시간이나 멍하니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며 대기한다. 이런 궁상맞은 일상이 전기차로 꿈꾸던 미래였을 리 없다.

종일 버티는 노트북과 이틀 가는 휴대폰이 어댑터 소지에 대한 부담을 사라지게 한 것처럼 전기차의 연비가 하루 이상을 버텨 준다면 충전은 밤에만 하면 그만이다. 밤에는 게다가 심야전기다. 문제는 내 방에서 마음껏 충전할 수 있는 전자제품과 달리, 공동주택에서 자야 하는 차에게는 자기 방이 없다. 퇴근 후 주차공간 빈자리 찾기도 쉽지 않은 마당에 콘센트 달린 지정석을 요구하면 입주자 대표회가 좋아할 리 없다. 멀티탭을 곳곳에 늘어놓고 나눠 쓴 후 공동전기료에서 적절히 배분하는 공동체적 삶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적잖은 배려와 교섭력이 필요하다. 층간소음 문제보다도 풀기 힘든 문제일지도 모른다.

작년 서울시 전기차 2000만원 지원사업에 당첨자 넷 중 한 명이 포기했다. 바로 충전 여건이 걸림돌이 된 탓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전기 구걸을 하기 싫어 배터리팩을 들고 다니듯 나만의 전기 공급법을 찾는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PHV)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하이브리드차의 대명사 도요타는 물론 현대, 혼다, 포드, 볼보, BMW, 아우디, 폴크스바겐에 포르쉐와 벤틀리까지 그 선택지는 무궁무진하다.

IT 칼럼 구독

어엿한 전기차(EV)이지만 전선을 통한 충전(P) 이외에 발전과 구동을 위한 기름(H)도 싣고 다닌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모터와 전지만으로 깔끔하고 가볍게 순수한 전기차(EV)로 달리고 싶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도 삶이다. 차의 어깨도 그렇게 점점 무거워진다. 가방이 무거워지듯 말이다. 생존을 우연한 생명선에 의존하는 대신 소지품만으로 어떻게든 해결하자는 황야의 자립정신을 전기차도 이제는 배운 것이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