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열린 과학 없이는 열린 정부 없다

현대사회에서 과학만큼 권위를 가지고 있는 말도 많지 않을 것이다. 현대 기술문명의 상당 부분이 과학 발달에 기초했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건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신의 은총과 과학의 발견은 이제 비슷한 수준의 축복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작 과학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이는 답하기가 쉽지 않다. 답하기가 쉽지 않은 첫째 이유는 대부분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로 과학이 무엇인지를 하나로 정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학은 조작 가능한 실험에 기초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해보자. 이런 실험을 천문학에서 하기는 어렵다. 지질학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관측 데이터에 기초한 게 더 많다. 과학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학이 무엇을 얼마나 성취해야 하는가는 분야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이런 구분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에 더 심하다. 가장 잘 알려진 법칙 중 하나인 뉴턴의 제2법칙을 생각해보자. F=MA.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이다. 여기서 M과 A와 F를 연결하는 건 물리적인 법칙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케인지언 경제학에 따라서 정부 지출과 경제성장 간의 관계(소위 승수효과)를 따져본다고 하면, 여기서 연결고리는 물리적인 법칙이 아니라 경제환경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선호 변화에 대한 가정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가정은 말 그대로 가정이다. 따라서 경험적인 근거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 물리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대상으로 한 학문이 일반적인 법칙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이런 부분 때문이다.

정부3.0 포스터

이런 배경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연구대상이 좀 더 가변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무리 화려한 수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더라도, 그 관계는 물리적인 법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대다수의 사회과학 및 생물학, 의학이 해당된다. 잘못된 의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약과 수술을 생각해보자. 그 대상이 되는 개인들은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엉터리 사회과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정책을 생각해보자. 이들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손해는 대대손손 전승될 수도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은 더 신뢰성이 높은 학문이어야 한다.

이런 열린 과학의 중요성은 열린 정부의 맥락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열린 정부의 기본 개념은 정보 공개를 통해 정부 투명성, 신뢰성, 책임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가정이다. 이 가정이 얼마나 맞는지는 연구를 통해 검증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무 정보나 공개되면 모두 위와 같은 목표를 이룰 수 있는가? 어떤 정보 공개가 더욱 중요한가? 정보가 어떻게 공개됐을 때 더 효과적인가? 필자가 아는 한 국내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가 전무하다. 이걸 제대로 연구하다는 것은 최대한 임의적으로 정보 공개를 적용한 대상(실험군)과 적용하지 않은 대상(통제군)을 구분한 후 이들이 중요한 사회적 태도, 활동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이것이 인과 추론(causal inference)의 기본이다. 각 정부 부처마다 얼마나 많은 정보가 공개됐는지는 해당 정부 부처가 정치지도자의 지시를 얼마나 충실하게 따랐는지를 확인하기 좋은 지표이지 애초에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정부 투명성, 신뢰성, 책임성 같은 목표와는 매우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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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실 이런 열린 과학의 기초가 부족한 건 열린 정부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다른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창조경제가 됐든 무엇이 됐든 엄청난 규모의 세금이 투입되고, 그 결과에 따라서 많은 사업체와 개인들의 운명이 좌우된다면 정책은 신중하게 도입돼야 하고, 엄격하게 평가돼야 한다. 특별히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건 정부의 책임성 측면에서 반드시 돼야 할 일 중에 하나이다. 디지털 시대에 정부 3.0은 좋은 슬로건이다. 그러나 그 슬로건이 이상에 그치지 않고 실제가 되려면, 투명하고 책임있는 과학이 그 기초가 돼야 한다.

<김재연 대학사용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