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폭염보다 강렬한 <뜨거운 여름>

무더위와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여름이다. 에어컨 없이는 숨 쉬기도 힘든 계절이 됐지만, 덥다고 계속 늘어져 있다 보면 더 힘이 빠지게 마련이다.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듯이, 때로는 아주 강렬하고 뜨거운 ‘한 방’이 오히려 이맘 때 지친 몸과 마음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연극 <뜨거운 여름>은 바로 그런 강렬한 ‘한 방’이 있는 무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젊은 연극인들이 만든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라는 이름이 처음 대학로에 알려진 것은 2004년 창작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통해서다. 얼룩덜룩 알 수 없는 의상의 배우들이 어떤 무대장치나 소품, 심지어 음향도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몸과 목소리만 가지고 한 편의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소문이 소극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결국 이들은 이 작품으로 밀양 여름공연축제에서 상을 휩쓸고 대학로를 ‘접수’한 뒤, 미국 공연까지 성공리에 끝마쳤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롱런 이후, ‘간다’ 특유의 기발한 작품들이 꾸준히 무대에 오르기는 했지만, 초창기만큼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대신 진선규, 이희준, 김지현, 박민정 등 많은 간다 출신 배우들이 TV와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며 이름을 알렸다. 이제는 무대나 스크린을 통해 자주 만날 수 있는 얼굴이지만, 이들을 볼 때면 언제나 이들이 함께 만들었던, 그 “말도 못하게 젊고 뜨겁고 유쾌했던” 무대가 떠오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간다 창단 10주년 퍼레이드는 관객과 배우 모두에게 간다의 기억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무대였다. 특히 퍼레이드의 마지막을 장식한 민준호 작·연출의 <뜨거운 여름>은 그 자체로 젊음을 기념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그 열기에 힘입어 올여름 재공연에 들어가게 됐다.

<뜨거운 여름>의 주인공 재희는 연극배우다. 공연을 앞두고 학창시절 첫사랑의 부음을 듣게 된 그는 문득 잊고 있던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그 시절 자신을 가슴 뛰게 했던 꿈과 사랑, 뜨거웠던 열정을 다시금 떠올린다. 세월 속에 희미해진 열정을 찾아 떠나는 극중 재희의 시간여행은 지난 10년간 간다의 행보를 떠올리며 이 작품을 쓴 민준호 작가의 작업과 비슷한 데가 있다. 또 어릴 적 기억을 찾아가는 무대 위 주인공 역시 10년 전 연극을 막 시작했던 시절의 풋풋한 열정을 다시 보여주려는 간다 배우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초창기 ‘간다’의 작품 같은 인상을 물씬 풍긴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이를 구현하는 배우들의 몸과 움직임은 유연하고, 매 장면 기발한 발상과 톡톡 튀는 재치가 넘쳐난다. 어떤 부분은 허술하고 때로는 과도한 욕심을 부린 부분도 있지만, 그마저도 치기어린 청춘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추억의 노래와 이제는 아련하게 느껴지는 유행댄스 역시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며 추억여행에 동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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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극중 과거의 재희를 연기하는 배우 진선규의 열정과 에너지다. 창단 초기부터 극단과 함께 해 이제는 불혹을 향하는 나이지만, 온 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노래하고 춤추고 웃고 떠드는 그는 여전히 20대의 풋풋한 에너지를 지닌 ‘청춘’ 그 자체다. 변함없는 열정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는 나이도 세월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무대다. 8월 11일부터 11월 1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