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포비든 플래닛> 내한무대

초여름에 방문하면 좋은 도시가 있다. 바로 대구다. 뮤지컬로만 축제를 여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딤프)이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창작 뮤지컬은 물론 영국, 대만, 독일, 체코 등지에서 초청된 뮤지컬들이 관객을 만났다. 서울에서도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다양한 문화와 국적의 작품들이라 누구라도 솔깃할 만큼 반가운 무대였다. 개막작으로는 영국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이 공연됐다. 사실 원래 제목은 조금 더 길다.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금단의 별로의 귀환’이란 의미인 <리턴 투 더 포비든 플래닛>(Return to the Forbidden Planet)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 작품의 첫 시발점은 셰익스피어의 미완의 희곡인 <템페스트>다. 그리고 1950년대에는 미국에서 이 <템페스트>를 가져다 우주공간으로 배경을 바꾼 공상과학 영화 <포비든 플래닛>이 만들어져 인기를 누린 적이 있다. 뮤지컬은 바로 그 영화를 가져와 무대용 콘텐츠로 재가공한 경우다. ‘귀환’했다는 제목의 의미는 추억의 희곡과 공상과학 영화를 무대용 콘텐츠로 다시 만들었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주크박스 뮤지컬하면 무조건 반사처럼 <맘마 미아!>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 역시 잘못된 선입견이다.

포비든 플래닛

<맘마 미아!>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초창기 흥행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비든 플래닛>이 그보다 10여년이나 일찍 인기를 누렸다.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음악은 모두가 1950~60년대 인기를 모았던 록앤롤이다. 제임스 브라운의 <잇츠 어 맨스 월드>, 제리 리 루이스의 <그레이트 볼스 오브 파이어>, 니나 시몬이나 애니멀스의 노래로 유명한 <돈트 렛 미 비 미스언더스투드> 등 주옥같은 올드팝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노랫말들이 스토리에 적절히 어울리게 이중적인 의미로 쓰이거나 혹은 1980년대 우리 대학가에서 인기를 누렸던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처럼 재치와 해학을 더하는 변화가 가미됐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맘마 미아!>에서 노랫말을 바꾸지 않고 스토리를 짜맞춘 아이디어도 이 작품이 먼저 선을 보였던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첫 모티브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이었던 점에 착안한 영국 예술가들은 셰익스피어 스타일의 대사를 코믹하게 등장시키는 재미도 더했다. 덕분에 <템페스트>는 물론 <리어왕>,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서 차용한 대사들이 ‘키득거리며’ 웃고 즐기는 색다른 묘미를 안겨준다. “사랑은 절망이고 한숨이고 눈물이다”, “신이여, 저들에게 벌을 내리소서”, “바람아 불어라, 살갗이 찢길 정도로”와 같은 고전적인 셰익스피어풍 대사들이 때때로 진지하거나 때로는 코믹하게 변화돼 등장한다. 또 다른 파격은 액터 뮤지션 형식의 활용이다. 이번 딤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쿠키역의 마크 뉴덤이 선보이는 기타 연주는 객석 맨 앞 공간으로 1층 관객들을 우르르 몰려나가게 만들 만큼 열정과 기교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다. 앙코르 넘버인 <자니 B. 굿>이 연주될 때면 마치 거대한 대중음악 콘서트 장으로 변신한 느낌마저 든다.

문화내시경

<포비든 플래닛>은 우리말로도 꾸며진 적이 있다. 2002년 서울의 LG아트센터에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배우가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는 이 작품의 재미는 우리말 공연에서 연주자와 배우가 분리되거나 혹은 어설픈 연주 실력 탓에 아쉬움만 남기고 말았다. 올해 딤프에서 다시 만난 내한 무대가 더욱 새롭고 충격적이며 반갑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작품 말고도 이번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에는 좋은 작품이 많았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