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역시 대인배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스도를 믿으라며 전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붙들렸다가 소리친다. “나는 너(예수)를 믿어!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는 나도 기독교인이야!” 둘이서 DVD 대여점에 가서 성공한 스핀오프를 찾다가 마리아신앙? 하며 예수는 고개를 갸웃하고, 부처는 설법을 들으려고 몰려드는 새들을 쫓느라 항상 바쁘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강대국이라는 이유를 빼고도, 나카무라 히카루라는 30대 초반 여성 만화가의 <세인트☆영멘>은 일본이 아니었다면 결코 등장할 수 없었을 작품이다. 일단 2000년간 할 일이 너무 많아 고생이 너무나 많았던 그야말로 사상 최강의 성인(聖人) 2인조, 예수 그리스도와 부처가 하계에 내려와 일본의 도쿄에 단칸방을 얻어 함께 생활하며 느긋하게 휴가를 보낸다는 설정의 이 만화는 이 성인들에게서 성스러운 점을 죄다 제거하고 30대 중반의 평범한 청년들로 바꾸어 버린다.
그것도 고행과 선교에 열중하느라 현대 문물이나 세상 물정은 도통 모른다는 설정은 이 위대한 두 사람을 그냥 시골에서 갓 올라온 듯한 촌스러운 총각들로 보이게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신성모독적인 표현 등을 피하고 특히 성적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등 열렬한 불교나 기독교 신자라도 거슬리는 점 없이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물론 가스통을 들고 다니며 부채춤을 추는 종류의 신자들이라면 당장 이 책을 분서갱유하려 들겠지만.
한창 교세를 떨치던 1990년대에 개신교도 비율이 전 국민의 20~25%에 달했다는 우리나라와 달리 기독교인이 인구의 1%에 불과한 일본이라 극성스러운 보수성향을 가진 신도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화장실의 신이며 다다미의 신까지 온갖 것에 신이 깃든다는 일본의 전통문화 덕분에 각종 신이 800만이나 된다니 특별히 예수나 부처를 신성화하지 않고 그들의 인간다운 면, 하계의 각종 신기한 것들에 신기해하고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깨알같이 그려낸 이 만화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2013년 1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발표되었고, 2012년 국내에도 만화책이 정식 발매되었지만 의외로 별다른 문제없이 순조롭게 한국 독자들과 만났다.
나카무라 히카루의 만화 <세인트☆영멘>.
하늘 영광 버리고 낮은 데로 임한 병맛
전작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에서도 엄청난 ‘병맛’을 자랑했던 작가답게, 이번에는 성서의 조그마한 구멍을 볼 때마다 병맛 넘치는 상상력을 하염없이 터뜨린다. 언덕길도 콧노래를 부르며 올라갈 수 있다는 선전문구가 붙어 있는 모터 달린 자전거 광고 포스터를 보며 이런 게 있었더라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도 편하게 올라갔을 거라며 부러워하는 예수는 사실 서운한 일이 많아 치유의 천사 라파엘의 멘탈케어를 받았다.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이나 모른 척했던 것도 서운했지만, 애써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고 고통스럽게 죽고 부활했더니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동산지기로 착각해 버린다. 같이 식사를 하고 나서야 빵껍질을 뜯어서 따로 놔둔 후 속을 먹은 다음 껍질을 먹는 특유의 버릇을 보고 나서야 알아보았다. 이것이 성서에서도 유명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알아보고 “랍오니여!” 하고 외친 바로 그 장면이라는 식이다. 제자들도 예수와 함께 조반을 든 후 예수를 알아보는데, 성서에는 예수가 생선도 좀 가져오라며 아침을 차려 제자들을 따뜻하게 먹이는 일화다. 이 만화에 의하면 같이 식사를 한 후 ‘저렇게 생선살 못 발라 먹는 사람은 처음 봐’ 하며 역시 주님이시다, 하고 알아봐서 예수님의 마음에 살짝 ‘스크래치’를 낸다.
나는 기독교인이라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만화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모습은 가슴이 뭉클할 만큼 사랑스럽다. 사실 예수야말로 병멋, 병신 같지만 멋있음의 시초 같은 존재 아닌가. 하늘 영광 버리고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선언을 하고, 사회적 지위도 그럴싸한 부자 청년이 자신의 제자가 되겠다는데 얼른 끌어들여 교세를 확장할 것이지 굳이 그럼 네가 가진 걸 다 남을 주고 와라, 하며 밀어내신 분. 끗발 좋고 배운 것 많은 사람도 얼마든지 많았을 텐데 굳이 갈릴리 촌동네의 어부들을 찾아가 제자로 삼아 사람을 낚는 어부로 전직을 시켰으며, 세리와 창녀의 친구, 술을 좋아하고 먹는 것을 밝히는 자라고 욕을 먹은 알 수 없는 인물. 십자가에 못 박혀 굴욕적인 죽음을 맞는다는 지상 최악의 패배를 “다 이루었다”는 승리로 바꾸었으며, 천형의 형틀인 십자가를 구원의 상징으로 바꿔놓은 하나님의 아들.
<세인트☆영멘>에 등장하는 예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처럼 엄숙하지는 않지만 순진무구하고 사랑스럽다. 가짜로 점을 봐주고 안 좋은 결과를 늘어놓아 불안감을 자극한 다음 마음이 평안해지는 항아리 따위를 거금에 떠안기려는 속셈으로 사이비 점술가가 예수의 손금을 본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죽을 거예요, 하고 말하자 예수는 하얗게 질린다. “그렇다면 세계 인류가 멸망한다는 거군요! ” 우연히 소방관 자원봉사 활동에 부처와 함께 참가하게 된 예수에게 고참이 메가폰을 쥐어주며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자 예수는 힘껏 외친다. “저기, 누가 제 사진이나 그림 같은 걸 내놓고 밟고 지나가라고 하면 그냥 밟으세요! 화내지 않을 테니까 그냥 밟아요! 불은 무서우니까 화형당하면 안 돼요! ” 일본의 기독교 탄압 시절 ‘후미에’라고 하여 성화나 성물 등을 밟고 지나가는 것으로 기독교인을 골라내 화형시킨 역사 이야기다.
<세인트☆영멘>
예수를 뜯어말리는 부처
부처는 이제 일본은 기독교를 탄압하지 않아, 라며 애달프게 자기 그림을 그냥 밟고 지나가라고 외치는 예수를 뜯어말린다. 자칫 단순한 우스개 같지만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후미에’를 거부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택하는 일본인 성도들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며 로드리고 신부는 왜 당신은 침묵만 하고 계십니까, 하고 소리친다. 그때 그에게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린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이렇게 그리스도와 부처가 평범한 청년의 모습으로 도쿄에서 룸메이트로 지내며 오봉 행사에 참석하고 축제날 가마를 메며 즐거워한다는 설정이 신성모독까지는 아니지만 신성을 다소 침해한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봉 행사라는 것은 죽은 영혼들이 1년에 하루 인간계로 돌아오는 날이고, 영혼들이 영계로 돌아갈 때 타고 가라고 가지 등에 성냥개비를 꽂아 탈것을 만들어 장식해 두는 날이니 말이다. 기독교의 교리와는 정면으로 위배되지만, 예수는 천진하게 웃으며 브로콜리에 성냥개비를 꽂아 자기도 탈것을 만든다. “먼저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 마음만은 이해할 수 있어.” 여기에서 ‘병멋’의 최강병기, ‘대인배’스러움이 등장한다.
부처 역시 대인배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스도를 믿으라며 전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붙들렸다가 소리친다. “나는 너(예수)를 믿어!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는 나도 기독교인이야!” 둘이서 DVD 대여점에 가서 성공한 스핀오프(파생작품)를 찾다가 마리아신앙? 하며 예수는 고개를 갸웃하고, 부처는 설법을 들으려고 몰려드는 새들을 쫓느라 항상 바쁘다. 성부는 문자를 보낼 때 쌍자음을 못 쳐서 항상 오타를 내고, 덩치 크고 껄렁한 예수의 제자들은 우리 주님의 쩔어주심을 믿나이다! 하고 소리친다. 얼핏 장난이 심하군, 싶다가도 <세인트☆영멘>을 보며 결국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만화가 성부 성자 성령 할 것 없이 그들의 인간성을 따뜻하게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한때 인간이었던 것이다. 머릿속부터 발끝까지, 마치 우리처럼.
<김현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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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이채양명주’ 의제로 올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