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로건은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사고뭉치 찐따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주드 애퍼토우 감독 사단의 일원인데, 주드 애퍼토우 하면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를 빼먹을 수 없다.
여러분은 울적하고 쓸쓸할 때 무엇을 하시는지? ‘병맛’을 사랑하는 나는 늘 그 맛으로 치유받기 위해 ‘병맛’을 찾아 헤맨다. 플롯과 스토리가 탄탄하고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내가 여기서 늘어놓는 영화나 배우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으실 테니 양해의 말씀부터 드리고, 일단 가장 최근의 찐따 영화부터 살펴보자. 감독도 겸직하기 시작한 배우 세스 로건이 출연과 연출을 맡은 2013년 작
지구 종말을 다룬 황당한 이야기
세스 로건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비행기까지 타고 온 제이 바루첼은 친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어딘가에 가자고 할까봐 조마조마하다. 아니나 다를까, 세스 로건은 제임스 프랭코가 최근 끝내주는 집을 지어서 파티를 열었다며 가자고 꼬드기고, 제이 바루첼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엠마 왓슨, 리한나, 마이클 세라 등이 모인 화려한 파티지만 제이 바루첼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울려퍼지면서 한창 파티를 즐기고 있던 중 갑자기 집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 그 사이로 사람들이 마구 떨어진다. 그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초록색의 아름다운 빛과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종말이 온 것이다! 빛과 함께 올라간 사람들은 구원을 받은 선한 이들이고, 온통 불타는 땅에 남은 것들은 전혀 이타적인 짓을 하지 않은 못된 종자들인 것이다.
끝내 어떻게든 착한 짓을 하려고 애쓰던 찐따 녀석들은 간신히 이타적인 짓에 성공해 천국으로 올라가는 이런 황당한 이야기에 돈을 쓰다니, 용감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어딘가 좀 선량하지만 모자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제이 바루첼이 이런 찐따 영화에 나온 게 이게 처음은 아니다.
벤 스틸러 감독이 만든 2008년작 영화 <트로픽 썬더>.
벤 스틸러가 감독을 맡은 2008년작 <트로픽 썬더>는 얼핏 보면 거창한 전쟁영화를 표방하고 있는 것 같지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잭 블랙, 닉 놀테, 톰 크루즈 같은 호화 출연진을 보고 <씬 레드 라인> 같은 걸 기대했다면 뒤로 발라당 넘어가게 된다. 짓궂게도 거창한 가짜 영화 예고편을 세 개나 보여주는데, 그 중에서도 <사탄의 골목길(Satan’s ally)>이라는 영화에서 금발로 염색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수사 복장을 하고 <스파이더맨>으로 유명한 토비 맥과이어와 사제끼리의 금지된 사랑을 보여주는 척, 진짜 그런 영화가 있는 양 있는 대로 폼을 잡고 <트로픽 썬더>가 시작된다. 전쟁영화를 찍으려고 모인 배우들은 실수로 마약밀매상과 정글에서 마주치게 되어 버리는데, 이 중에서도 백미는 극중 5회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로 등장하는 커크 라자러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설정이다. 한 번 배역을 맡으면 너무 몰입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흑인 역을 맡게 되자 흑인으로 성형수술을 해 버린다! 처음에는 절대 그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고 알아볼 도리가 없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톰 크루즈라고 알아볼 수 없는 대머리 가발에 뚱뚱한 분장을 한 악질 영화제작자로 나오는 톰 크루즈의 능청도 미남 액션스타가 아니어도 매력적인 그를 구경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사실 벤 스틸러는 <청춘스케치(reality bites)> 같은 진지한 영화로 필모그래피를 시작하긴 했지만 ‘병맛’에 일가견이 늘 있는 사람이었다. 주연, 제작, 원안, 각본, 연출까지 완전히 도맡은 2001년작 <주랜더>는 15년이나 지난 2016년 속편이 나올 예정이라니 이 흔치 않은 병맛을 사랑한 사람이 나 이외에도 많은 모양이었다. <주랜더>는 주인공 데릭 주랜더의 이름으로, 말레이시아 총리가 직물 생산에 대해 미성년자의 노동착취를 뿌리 뽑겠다는 성명을 밝히자, 큰 손해를 보게 생긴 윌 페럴은 아주, 아주, 아주 멍청해서 세뇌시키기 쉬운 인물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 있었으니… ‘올해의 모델’에 세 번이나 뽑힌 데릭 주랜더(벤 스틸러)가 바로 적절한 인물. 그가 입술을 삐뚤어지게 해 짓는 특유의 표정을 보면 모두 그 섹시함에 쓰러지고 만다.
벤 스틸러가 남자 슈퍼모델이라니 세상에 농담도, 그렇지만 그의 자리를 위협하는 신인 슈퍼모델은 다름 아닌 오웬 윌슨.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싸움질을 하다 코가 부러졌다는 그도 미남 대열에 낄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그 둘을 세계 최고의 미남으로 설정하고 그걸 실컷 써먹는다. 결국 ‘올해의 모델’은 오웬 윌슨의 차지가 되고, 둘은 ‘런웨이 파이트’를 벌인다. 멋있게 걷는 것부터 시작해서 팬티를 입었다 벗었다 하며 런웨이를 걷는 것까지 온갖 병맛 경쟁을 하는데, 더 웃기는 건 아주 진지한 얼굴로 록스타 데이빗 보위가 시크한 수트를 입고 나와 심판을 본다는 것. 이 영화 역시 패리스 힐튼, 밀라 요요비치 등 화려한 카메오로 가득하다.
화끈한 언니들의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어쨌든 세뇌하기 아주 적절한 인물인 이 두 남자 슈퍼모델은 결국 경쟁관계를 벗어나 친구가 되어 말레이시아 총리를 패션쇼장에서 살해하려는 윌 페럴의 음모를 막게 되지만, 윌 페럴의 사악한 계획이 들어 있는 아이맥 컴퓨터를 발견한 이들은 찾아낸 것까진 훌륭한데 도대체 컴퓨터를 켤 줄을 모른다. 마우스를 들었다 놨다, 아이맥 옆구리를 툭툭 쳐 봤다, 손톱으로 긁어 보지만 켜질 리가 없다. 아이고 저걸 어쩌나, 싶을 때 오웬 윌슨이 윌 페럴이 음모를 꾸민 패션쇼장에 타잔처럼 줄을 타고 나타난다. 옆구리에는 그 음모가 들어 있는 문제의 아이맥이 끼워져 있다! 악당들은 이제 끝이다, 라고 생각하고 한숨을 내쉰다. 오웬 윌슨은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너희들의 모든 음모가 여기에 다 들어 있다! ” 그리고 아이맥을 바닥에 내리쳐 깨뜨린다. 벤 스틸러와 오웬 윌슨은 박이 갈라져 보물이 터져나오듯 비밀이 나오길 의기양양하게 기다리지만 물론 아무것도 나올 리가 없다…. 바보.
벤 스틸러는 찐따 영화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데, 2004년작 <피구의 제왕>에서도 갑자기 얼굴을 닦던 수건에서 스승의 메시지를 발견하질 않나, 2007년작 <블레이즈 오브 글로 리>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남자-남자로 구성된 피겨 스케이팅 듀엣을 결성해 깃털이 하늘대는 옷을 입고 얼음 위에서 듀엣을 펼치는 뱃살 두둑한 아저씨들의 픽, 하고 웃을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 준다. 아까 처음에 이야기한 세스 로건은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사고뭉치 찐따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주드 애퍼토우 감독 사단의 일원인데, 주드 애퍼토우 하면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를 빼먹을 수 없다. 물론 세스 로건도 여기에 출연했고, 폴 러드나 스티브 카렐 등 주드 애퍼토우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들은 모조리 나왔다. 남자는 스물다섯이 넘으면 마법을 쓸 수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영화의 주인공 스티브 카렐은 대마법사다. 지금까지 언급한 미워할 수 없는 찐따들이 죄다 남자라서 실망했다면, 화끈한 언니들이 나오는 영화를 주드 애퍼토우가 제작했으니 빼먹지 마시길.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은 2011년 작으로, 화끈한 언니들이라고 해서 <섹스 앤 더 시티>처럼 잘나가는 여인네들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용기를 내어 시작한 베이커리 사업은 말 그대로 ‘폭싹’ 망하고, 차는 똥차에 룸메이트는 왕싸가지. 결국 되는 일이 없어 체면을 구기고 엄마 집으로 기어들어가고 절친이 결혼해서 신부 들러리를 하게 되지만 좋은 집에 시집가서 우아하게 사는 유한 마담이 절친의 절친 행세를 하는 바람에 주인공이 결국 말 그대로 난리를 치는 장면은 여자라면 누구라도 ‘웃플’ 수밖에 없는 이 영화의 백미다. 메르스 때문에 밖에 나가기도 뭣하고 집에 있자니 기분이 처진다면 이런 사랑스런 ‘찐따’ 영화들을 정주행해보는 건 어떠실지. 찐따들이라고 영 세상에 필요 없는 건 아니라는 인류애적 결론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김현진 컬럼니스트>
![[오늘을 생각한다]](http://img.khan.co.kr/spko/ranking/weekly/140098/20240430104625_14009801.jpg)
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이채양명주’ 의제로 올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