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차별받는 오키나와인들의 두 얼굴

차별당하는 주체가 도리어 차별하는 측의 입장에 동화되어 또 다른 차별의 주체가 되는일은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오늘의 한국에서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일본 제국주의 시기 조선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이른바 자유주의 사관을 견지하는 뉴라이트 사학자들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를 ‘근대화’라는 관점에서 ‘살 만한 지옥’이었다고 주장한다.

주권 상실이 조선인을 노예적 상황으로 내몬 건 명백하지만, 식민지기가 ‘어둠’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문명화’로 상징되는 ‘빛’도 있었음을 이들은 강조한다. 이런 시각은 일본 우익 사학자들의 오키나와 인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오키나와의 역사시대가 열린 것은 12세기후반이다. 그런데 17세기 사쓰마 번의 침략 이후 무려 400여년간 오키나와는 사실상 일본의 반식민지와 내부 식민지의 역사를 경험해 오고 있다.

적어도 19세기 류큐처분(1879년 일본 메이지유신으로 류큐왕을 폐하고 오키나와현을 설치하면서 450년간 이어온 류큐왕국이 막을 내린다. 이것을 류큐처분이라고 한다) 이전까지의 오키나와인들은 류큐왕국의 백성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독자적인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보존했다.

오키나와에서 죽은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평화의 초석. / 경향신문

물론 이 시기의 지배계층들 가운데 일부는 아이덴티티의 뿌리를 중국에서 찾거나, 반대로 일본에 친화력을 느꼈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다수의 오키나와인들은 류큐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회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류큐처분으로 주권을 상실하고 오키나와현으로 무력 병합, 편입된 이후의 오키나와인들은 일본에 의한 제국주의적 동화정책 속에서 오키나와 아이덴티티의 균열을 경험하게 된다.

주권이 일본에 회수되었으므로 그들은 ‘일본인’으로 규정되었고, 일찍부터 국민교육과 징병제를 통해 일본신민으로 개조될 것을 강요받았지만, 1등 신민인 일본인에 의한 오키나와 차별은 조선에 대한 차별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했기에, 오키나와인인 동시에 일본인이라는 민족적 아이덴티티의 균열과 상흔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주권 상실 이후 ‘일본인’으로 강요받아
형식논리학적으로 보자면 차별하는 일본 측에 대항하여 피차별 상태에 있는 오키나와가 ‘저항’하는 것이 순리이겠지만, 류큐처분 이후의 오키나와인들의 차별 철폐를 향한 집단적인 동력은 기묘하게도 일본에 대한 과잉된 정념의 자발적인 동화사상(同化思想)으로 귀결된 예가 많다.

가령 ‘오키나와학(學)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하 후유가 <고류큐>에서 류큐처분을 미국의 노예해방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에서도 그것은 단적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일본 제국기 같은 식민지이자 피차별 민족에 대한 오키나와인들의 인식은 어떠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인류관 사건(1903)’으로 명명된 역사의 무대로 시선을 옮겨보는 게 필요할 듯하다.

1903년 일본 본도 오사카에서 ‘권업박람회’가 열렸다. 오늘날로 치면 ‘무역 엑스포’와 같은 행사였다. 박람회 건물 가운데 특이하게도 ‘인류관’이라 불리는 한 시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시설에는 ‘상품’이 아니라 남녀 한 쌍의 ‘인간’이 민족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이들은 아이누인, 대만의 선주민, 조선인, 중국인, 오키나와인, 인도인, 하와이인 등으로 일본인들이 이들 민족을 ‘야만인’으로 간주해 전시한 것이었다.

오키나와 전쟁 중 사망한 한국인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이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 세워져 있다. / 경향신문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조선인과 중국인 유학생들은 일본 당국을 향해 격렬하게 항의했고, 당시 <류큐신보>의 주필이었던 오타 쵸우 역시 이것은 주변국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이므로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사실이 오키나와에 알려지자 대다수의 오키나와인들 역시 격렬한 항의 행동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오키나와인들의 분노의 성격은 어떠했는가? 오타 쵸우는 류큐신보에 기고한 같은 글에서, 명백히 일본 국민인 오키나와 현민들을 미개한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이나 대만의 생번인 취급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고 굴욕이라고 통탄했다.

오키나와 현민이야말로 완전한 일본 민족의 빼어난 일원인데, 어찌 아이누인이나 대만의 생번들과 같은 미개인들과 함께 진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차별을 낳는 ‘굴절된 동화사상’
오키나와인의 입장에서 이것은 당연한 분노일 수 있지만, 이 부분에서 놓쳐서 안 되는 것은 같은 ‘피차별 민족’인 아이누인과 대만의 원주민들을 경멸적으로 배제하는 뒤틀린 논리이다.

요컨대 이런 항의 행동을 전개하는 오키나와인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일본으로의 강력한 동화주의적 지향을 통해, 같은 처지의 피차별 민족을 ‘차별하는 편’에서 바라보는 뒤틀린 시선이다.

피차별 주체가 차별하는 민족 편으로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투사·굴절시키는 태도에 대해 <오키나와 독본>의 저자인 나카무라 키요시는 오키나와인들의 ‘굴절된 동화사상’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생존을 위해 일본 본도로 이주한 오키나와인들은 조선인들이 거주하는 도시 슬럼가 인근에서 함께 거주했다. 일본인들이 ‘오키나와인들과 조선인 출입 금지’라는 문구를 식당에까지 내걸 정도로 오키나와인들에 대한 차별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같은 피차별 부락의 사람들이라면, 응당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연대해야 옳다고 우리는 말하고 싶지만, 당시 많은 수의 오키나와인들은 스스로를 근면한 일본인으로 규정하는 것과 달리, 이웃하고 있는 조선인에 대해서는 민족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차별당하는 주체가 도리어 차별하는 측의 입장에 동화되어 또 다른 차별의 주체가 되는 일은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이것은 동화주의적 생존논리의 비극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 동화주의적 생존논리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1923년 일본 본도에서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많은 수의 오키나와인들이 조선인, 중국인들과 함께 자경단에 의해 학살당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 탓에 학살당한 조선인은 3000명에서 6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오키나와인들은 왜 학살당했을까? 오키나와어와 일본어는 다르다. 설사 오키나와인들이 일본어를 구사했다고 하더라도, 발음과 성조가 달랐다. 이 때문에 그들은 조선인 또는 비(非) 국민으로 간주되어 학살당한 것이다.

이런 비극은 1945년 오키나와 전쟁 당시에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이 전쟁에서 1만명 이상의 조선인 군부(軍夫)와 위안부가 일본군의 학살과 미국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오키나와인들 역시 조선인과 똑같은 ‘스파이 혐의’로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하거나 ‘집단 강제사’에 내몰렸다.

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

완전한 일본신민이 되기 위하여 이름도, 언어도, 문화도 철저히 부정했던 오키나와인들은 그것을 강제한 일본에 동화된 결과 비극적인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