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욕망과 현실의 비극적 간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욕망은 삶을 이어가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을 황폐하게 만들거나 파괴하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8월, 명동예술극장에서는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욕망과 차갑고 냉정한 사회의 간극이 만들어낸 비극 한 편이 무대에 오른다. 유진 오닐, 아서 밀러 등과 함께 미국 현대 연극의 대표적 작가로 손꼽히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1946년 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배경은 산업화되어 가는 미국의 남부도시 뉴올리언즈다. 이는 산업화 과정에 있던 당대 미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담고 있는 동시에, 욕망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현대 사회의 모습 역시 보여주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노동자 스탠리는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본능에 충실한 동물적인 남성으로, 인생이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술과 포커에 빠져 있는 스탠리 덕분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는 포커 장면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와 동료들이 벌이는 포커 장면은 하층 노동자들의 출구 없는 일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삶 자체를 게임처럼 힘겨루기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무한경쟁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명동예술극장 제공

스탠리의 아내 스텔라는 한때 남부 지주 가문의 딸이었지만 몰락해가는 농장을 떠나 이곳 뉴올리언즈에서 스탠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지나간 과거는 모두 잊은 채 스탠리와 그의 친구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이미 익숙해진 여성이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 도시의 허름한 빈민구역에 스텔라의 언니 블랑쉬가 찾아오면서 두 여성과 한 남성의 이질적인 동거가 시작되고 이들의 필연적인 갈등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남부 농장에서 수많은 신사들로부터 구애를 받으며 우아한 청춘을 보낸 블랑쉬는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다. 남편의 동성애와 자살이라는 끔찍한 현실을 겪으며 블랑쉬는 자신이 늘 꿈꿔왔던 삶과 냉혹한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끼게 되지만,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아름다웠던 과거에 더욱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방황 끝에 유일한 혈육 스텔라를 찾아오게 된 블랑쉬는 자기 여동생이 저급한 폴란드 출신 노동자와 함께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그녀의 실망은 여동생의 남편 스탠리에 대한 거부와 분노로 드러나고, 스탠리 역시 블랑쉬의 고자세와 위선, 몽상적인 태도에 대해 적대감을 갖기 시작한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명동예술극장 제공

결국 스탠리는 블랑쉬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했던 과거를 알아내 그녀 앞에서 낱낱이 열거하고, 그녀와 약혼하려 했던 자신의 친구에게도 모든 사실을 폭로한다.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블랑쉬를 몰아붙이던 스탠리는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그녀를 강간함으로써 그녀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는다. 결국 지나친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된 블랑쉬가 환각 상태에서 자신을 데리러 온 병원 스태프를 따라 나서면서 극은 막을 내린다.

문화내시경

진실을 대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욕망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하여 결국 잔인한 사회로부터 내쳐지고 마는 블랑쉬라는 인물은 분명 까다롭지만 누구보다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연희단거리패를 20년간 지켜온 극단의 대표배우 김소희가 블랑쉬 역을 맡았는데, 특유의 존재감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오랜 세월 한 무대에 서온 동료배우 이승헌(스탠리 역)과 만들어내는 호흡도 훌륭하다. 8월 13일부터 9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