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칼럼]공정한 인터넷의 미래를 위하여

개도국이 모바일 인구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해서 인터넷의 미래를 통해 글로벌 사회 정의가 자동적으로 실현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난 10월 9일 국내에서는 최초로 구글의 인터넷과 사회에 관련된 콘퍼런스인 빅텐트가 구글 코리아에 의해 ‘차세대 혁신을 향해’란 주제로 개최됐다. 해당 행사의 기조강연은 일본 게이오대학 특임교수인 전길남 교수가 맡았다. 전길남 교수는 1982년에 한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도입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후에는 KAIST 교수로서 한국 인터넷 발전에 기여한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적절한 연사 선정이었다.

10월 9일 서울에서 열린 구글 빅텐트 행사에서 전길남 일본 게이오대학 특임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구글코리아 제공

기조강연에서 전길남 교수가 초점을 맞춘 것은 50억 인구가 쓰는 인터넷이었다.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2년 현재는 20억 인구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지만, 2020년에는 50억 인구가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다. 이전에는 국내 IT산업은 5000만 한국 인구를 염두에 두고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했지만, 이젠 50억 세계 인구를 염두에 두고 그들이 쓸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그동안 한국은 IT강국이라는 덫을 스스로 만들고 갇혀 왔다. 그러나 한국은 글로벌 인터넷의 미래가 결정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국내 사회적 약자, 지구촌 소외계층을 위한 인터넷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즉 한국은 인터넷을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빨리 도입했고 우수한 기술 인프라를 구축했지만, 제도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이것이 전길남 교수의 핵심적 지적이었다.

행사장에서 전길남 교수의 강연을 들으면서 나는 전반적인 내용에 동의했다. 2012년 6월에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2011년 말에 모바일 사용 인구는 60억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86%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바일 인구 폭발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성숙기에 도달한 선진국이 아닌 개도국이다. 2011년 한 해에 추가된 모바일 인구 6억6000만명 중 80% 이상이 개도국에서 나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뉴욕, 런던과 같은 대도시의 모바일 인구가 개도국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와 전혀 다른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현실이다.

하지만 개도국이 모바일 인구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해서 인터넷의 미래를 통해 글로벌 사회 정의가 자동적으로 실현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인터넷 핵심 기술, 표준은 대부분 미국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는 개도국 현실에 맞지 않으며, 따라서 관련 적정 기술 개발과 함께 표준에 대한 협의에 개도국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국제기구에 개도국 참여가 확대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최근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과 기존의 기술자 중심의 협의체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포괄한 국제기구가 창설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중국,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적 국가들이 자국의 인터넷 검열·감시·통제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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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인터넷 글로벌 거버넌스에 관련해 두 가지 과제가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으로는 개도국의 입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협의의 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장이 개도국 내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정치적 엘리트 등 일부의 의견만 대변하는 장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투명하고 객관적인 원칙과 기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한국에 또 다른 기회가 왔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정말 IT강국이 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 스스로 그렇게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주변국과 세계 사회에서 그렇게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 우수한 국내 기술 인프라뿐 아니라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그 역량을 바탕으로 인터넷 글로벌 거버넌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유로우면서도 공정한 인터넷의 발달에 기여한다면, 자칭이 아닌 명실상부한 IT강국, 인터넷 강국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김재연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