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유럽을 매혹시킨 일본 에도시대 대중미술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1만5000원

자포네즈리와 자포니즘. 서양인들의 ‘일본 취미’로 통칭할 수 있을 이 말은 18세기 이후 근대 유럽인들의 일본 예술에 대한 관심을 압축한다. 자포네즈리가 “일본적인 소재 자체가 주는 이국적인 느낌”을 가리킨다면 자포니즘은 “일본 미술의 조형 원리, 미의식, 세계관에까지 관심사를 확장시켜서 서구의 예술 언어 속에 녹여 흡수한 것”이다.

특히 화단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예술계의 일본 애호는 유별났다. 당시 프랑스 비평가 에르네스 셰노는 1869년에 발표한 글에서 자국 예술가들을 사로잡은 일본 미술의 특성을 ‘파격적인 구도’ ‘탁월한 형태’ ‘풍성한 색채’ ‘기발한 회화적 효과와 회화적 수단의 단순함’으로 요약했다. 이 같은 프랑스인들의 일본 애호 한복판에 자리잡은 것은 에도 시대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다.

‘에도 그림’이라 불리는 우키요에는 말 그대로 에도(오늘의 도쿄)가 일본의 수도였던 에도 시대(1603~1867)에 제작된 풍속화다. 에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조성한 인공 수도였다. 도요토미 사후 일본의 실질적 절대 권력자 쇼군의 지위에 오른 도쿠가와가 1603년 에도에 바쿠후(사무라이 계급으로 구성된 관료기구)를 설치하면서 본격적인 에도 시대의 막이 올랐다. 잦은 전란에 시달리던 이전의 무로마치 시대와 달리 에도 시대에는 현세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향락 풍조가 번성했다. 우키요에를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부세회’다. ‘부세(浮世)’를 풀이하면 ‘뜬 세상’이다. ‘신이 나서 마음이 들뜬 상태, 설렘, 두근거림’을 일컫는 일본어 ‘우키우키’와 뜻이 통한다.

비싼 소재를 사용한 고가의 작품도 있었지만 상류층이 즐긴 가노파(派) 회화와 달리 우키요에는 대중을 위한 값싼 미술이었다. 그 쓰임새 또한 일상에 밀착했다. 우키요에는 오늘날 신문이나 잡지, 포스터, 전단지처럼 그 자체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거나 책의 삽화로 쓰였다. 쓰임새가 대중을 상대로 한 것이었으므로 생산과 유통도 협업으로 이뤄졌다. 제작비와 유통을 책임지는 출판업자 ‘한모토(版元)’, 밑그림을 그리는 ‘에시(繪師)’, 밑그림을 목판에 새기는 ‘호리시(彫師)’, 목판에 물감을 얹어 찍어내는 ‘스리시(摺師)’가 하나의 팀을 구성했다.

우키요에의 소재는 대중의 취향과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가부키 배우, 유곽의 미인들, 남녀의 정사를 주된 소재로 쓰던 우키요에는 전국 각지의 다이묘들이 에도로 와서 1년간 부임하고 돌아가는 ‘산킨코타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풍속화 중심으로 옮겨갔다.

우키요에는 서양 근대 회화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선명한 윤곽선과 단색이 특징이던 초기 우키요에는 일본이 서양문화와 접촉하면서 원근법과 명암의 대비, 다채로운 색감을 구사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우키요에의 풍성한 색감, 독특한 공간 배치, 평면적 화면이 주는 단순함의 미학은 역으로 서양 회화에 흡수됐다.

이주의 책

책은 우키요에의 역사와 미학적 특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우타가와 히로시게, 고바야시 기요치카 같은 우키요에 대가들의 작품들과 시기별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빼곡하게 박아 놓은 편집은 호사스러운 시각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