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책]진보의 위기를 진보에 묻다

다시 진보를 생각한다

김창호, 동녘

시민을 위해, 인간의 존엄을 위해 진보의 성찰은 필요하다. 그러나 구체성에 바탕을 둔 치열한 자기반성이 먼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 시대를 대비한 미래 담론’을 준비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유서가 말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노무현 행정부 국정홍보처장으로 일한 저자는 이 책이 ‘대통령과의 작업 연장선상’이라고 했다. 워낙 보편적이면서도 전문적일 수밖에 없는 주제를 택하다 보니 욕심이 과했던 걸까. 읽고 난 첫 느낌이 그랬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적 보수주의에 대한 비평과 진보의 재구성이 본래 의도였다면 좀 더 구획되고 지난 정부 시절의 참여와 경험을 강조했어야 했다. 독자들이 책을 선택할 때의 기대는 바로 그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같은 차원에서 언론정책 부분은 별도의 저술로 독립시켰으면 어떠했을까. 언론권력이 한국적 보수주의의 한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다 저자는 노무현 행정부의 언론정책 책임자였다. 전직 보수언론의 전문기자 출신이었다. 이 점에서 저자는 기록과 증언 의무의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국의 진보를 논하기 위한 방편으로 저자는 ‘진보의 위기를 진보에게 물었다.’ 지난 진보 진영의 노무현 행정부에 대한 비판을 평가 대상에 올렸다. 저자는 이를 “진보 개념을 특권적으로 점유함으로써 사실상 사익화하는 현상”의 일종으로 평가함으로써 논쟁을 유도했다.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선 지난 10년, 짧게는 5년에 대한 해체가 필요하다. 해체를 통해 재구성하거나 재창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비판적 자기성찰이 요청된다. 그런데 저자는 지난 행정부의 완고함만큼이나 여전히 방어적이다. 피해자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2006년 9월13일부터 12월21일까지 진보의 위기와 관련한 기획특집 ‘진보개혁의 위기’를 연재했고, 기획은 그해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기획에 대한 저자의 반응. “그러나 불행하게도 당시 진보 매체가 제기했던 진보위기론은 그 내용면에서 보면 사실상 ‘참여정부 실패론’에 불과했다.”

요즘 이 책

언론 정책 부분을 제외하고는 노무현 행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나 반성은 희소하다. 보수성과 진보성을 따지는 책이라면 그리하여 진보의 재구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행정부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라면 평가의 중심에 이론이 아닌 정책이 있어야 했다. 물론 이 점은 저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식 저술의 ‘치명적’ 관행들이다. 미국 행정부에서 일하다 나온 사람의 저술과 한국 행정부에서 일하다 나온 사람의 저술에서 ‘결정적’ 차이다. 경험의 ‘사유화’다. 노무현 행정부는 교육을 비즈니스라고 했다. 사기업이 아닌 주택공사의 부동산 원가공개 여부도 비즈니스라고 했다. 부동산과 교육에 대한 시민의 열망은 성장과 개발주의에 대한 귀환으로 이어졌고, ‘누가 정권을 잡으면 어떠냐’라는 권력 핵심부의 무책임성은 이를 조장했다. 남북 대화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나 준비가 부족했고, 딱 한 번 있었던 한·미 고위급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용인됐으며, 다음 행정부는 충실하게 계승했다. 한·미 FTA는 공공성과 사회적 연대에 대한 자포자기였다. 4대 선결과제로 제시한 쇠고기 수입문제 또한 차기 행정부가 충실하게 계승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최장집 교수의 비판에 대한 저자의 항변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을까. 최 교수는 일관되게 “경제성장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경제정책의 기조로, 재벌과 대기업을 성장의 중심동력으로,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를 소외시키는 쪽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공히 똑같은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오로지 시민을 위해, 인간의 존엄을 위해 진보의 성찰은 필요하다. 그러나 구체성에 바탕을 둔 치열한 자기반성이 먼저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