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초대석]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장태평

“윤리경영이 7% 성장 원동력될 것”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수명이 15년입니다. 30년, 50년, 100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업경쟁력은 2, 3년 동안 이익을 많이 낸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단기적 경쟁력은 진정한 의미의 경쟁력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발전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이 뒷받침돼야 해요.”

장태평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59)은 ‘윤리경영’의 전도사다. 대학이나 기업 CEO 모임 등 그가 강사로 초빙될 때마다 그는 ‘기업 사회 책임과 윤리경영’이 기업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의 밑바탕이라고 강조한다. 장 처장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역사가 오래되고 존경받는 기업의 특징은 윤리경영을 기본철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업의 사회책임은 이윤을 낸 다음에 덤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라고 강조한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대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이 부쩍 는 것이 사실이다. 독거·무의탁 노인들이나 사회복지시설에서 대기업 로고가 찍힌 옷을 입은 봉사자들의 활동은 이제 쉽게 볼 수 있다. 한 대기업 홍보실 관계자는 “과거 사회공헌 관련 부서가 한직으로 인식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기업의 핵심 인재들이 모이는 부서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한국 기업들도 사회책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비자금,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 등 대형 기업과 관련한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결국 한국 기업들에 사회책임이나 윤리경영이란 자신의 허물을 가리기 위한 면피용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장 사무처장은 ‘현실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윤리경영을 피상적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상속의 경우 과거에는 세법상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에 과세제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법을 공포하고 나니 발행을 미리 한 거죠. 법은 몇 개월 후에 시행되니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은 아니죠. 정부가 제도를 입안하는 가운데 기업이 이를 거꾸로 이용해서 세금을 회피하는 행동을 하니까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유엔의 ‘글로벌 컴팩트’나 ‘ISO 26000’ 등 현재 추진되는 기업경영의 글로벌 기준은 그가 보기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거에는 농산품·공산품 등에 대해 국가인증제도를 시행했습니다. 국가가 기준을 제시하고 도장을 찍어주는 거죠. 하지만 새로운 기준들은 자율인증제도입니다. 즉 내가 인정하고 도장 찍고 책임을 지는 거죠. 결국 윤리경영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내부조직을 얼마만큼 투명하게 만들고 또 공정하게 돌아가게끔 시스템을 갖추느냐의 문제죠.”

정부기관도 마찬가지다. 국가청렴위는 2002년 이래 공직사회의 투명성·합리성을 제고하기 위해 힘을 쏟아왔다. 국가청렴위의 청렴도 평가 결과에 따라 공공기관이나 시·도 자치단체는 웃고 울었다. 1위를 받은 단체들은 자랑스럽게 홈페이지나 현수막으로 그 결과를 내걸었다. 하지만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 불신은 여전하다.

장 처장은 “하드웨어는 정비가 잘 된 편”이라고 말한다. 실제 한국의 ‘반부패시스템’은 국가연합개발계획(UNDP) 등을 통해 아프리카·아시아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와는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하고 한국 정부의 반부패시스템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몇 가지 나눠볼 수 있습니다. 일단 우리 제도가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변화한 제도를 인식하지 못한 국민들로부터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어요. 또 하나는 과거의 사건이 자꾸 터져 나오면서 그런 불신이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 설문조사를 해보면 ‘뇌물을 준 적 있느냐’라는 항목에는 1% 미만으로 나옵니다. 선진국 평균이 3%인데, 이걸로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이에요. 그런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을 것이다’는 것에는 56%가 나와요. 사실 큰 차이가 나는 건데, 그런 국민 인식이 바뀌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국가청렴위의 실적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평가는 인색하다. ‘한국행정DB센터’의 전문가 조사에서 ‘역할과 기능을 축소해야 할 정부조직’의 1순위로 국정홍보처가, 2순위로 국가청렴위가 뽑혔다. 검찰이나 금감원, 감사원 같은 조직과 업무 중복 이야기도 나온다. 장 처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진짜 유감입니다. 과거는 부정부패 문제를 개별적·사후적으로 하나하나 잡아 조치하는 형태였고, 그런 일을 하는 곳이 검찰이나 감사원이었죠. 세계적 경향은 사회 전체를 어떻게 청렴하게 디자인하고 관리할 것인지의 문제로 나가고 있습니다. 병으로 친다면 사후에 수술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전 예방이 중요한 셈이죠. 선진국도 청렴 문제에 투자를 많이 합니다. 그 설문조사에 참여하신 분들이 그런 시각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검정국’ 당시 청와대에서 ‘공직비리수사처’(공수처)를 언급해 국가청렴위가 정쟁의 대상이 된 감도 없지 않다. 국가청렴위 산하에 공수처를 둬 조사권을 주는 정부 입법안은 현재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국가청렴위로서는 염원 대상이겠지만 현재까지 여·야는 이 법안을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특히 정권 교체 후 여당이 될 한나라당은 이 법에 대해 부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차기 정권에서는 국가청렴위의 축소·폐지를 포함한 위상 변화를 점치고 있기도 하다. “저는 걱정하지 않아요. 국가청렴이나 반부패는 세계적 추세고, 이런 흐름이 끊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국운 상승기를 맞고 있다고 봅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7%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5%에 조금 못 미칩니다. 이 이상으로 성장하려면 지금 단계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죠. 하지만 청렴도를 늘리면 가능합니다. 국가청렴도지수(CPI)라는 것이 있는데 실제 이 지수가 1점 올라가면 GDP는 1.4%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성장률을 추가로 올릴 수 있는 첩경이 바로 청렴 문제를 해결하는 거죠.”

장 처장은 서울대 사회학과 학부·대학원을 졸업한 뒤 행정고시(20기)를 통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경제기획원·재정경제부 등 오랜 기간 ‘경제통’으로 일하다 농림부를 거쳐 다시 2005년 재정경제부 정책홍보관리실장으로 복귀했다. 국가청렴위 사무처장이 된 것은 2006년 9월. 공직이 천직인 셈이다. 좌우명은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반성하라’다. “사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수는 없거든요. 일한 다음 항상 무엇이 부족했나 생각합니다. 낙관적인 생각과 달리 결과가 비관적일 수 있는데 그렇더라도 다시 설계하고 한 단계씩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자녀들에게도 강조하는 덕목이다.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아내도 교직을 하다 보니 많이 이해하는 편이지만 매일 10시 넘어 퇴근하다 보니 썩 가정에 충실했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잘 따라줬어요. 그런 점에서 믿음직스럽죠.”

그가 공직생활을 그만둔다면? 그는 “시를 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실제 그는 ‘강물은 바람 따라 길을 바꾸지 않는다’(2001, 나비)라는 시집도 냈다. 이 시집으로 한국현대시연구소에서 기념상도 받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일화를 강조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한 첫 번째 전쟁이에요. 그게 8~9월인데 그해 7월에 우리 해군이 완전히 박살났어요. 배 12척과 수군 400~500명… 그 자원으로 3만~4만의 왜군을 막아내면서도 우리 측 희생은 30여 명이 안 됐죠. 본받을 점이 굉장히 많아요. 악조건과 부족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창의성과 책임감이 있으면 해내는 자질이 우리 국민에게 있습니다.

정동초대석

얼마 전 미국 투자회사 골드만삭스가 ‘한국이 2025년에는 8위가 되고 2050년에 2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전 그걸 믿습니다. 그동안 정치가 우여곡절을 많이 겪기도 했지만 다 긍정적으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시험적이든 시행착오든 국운 상승으로 연결되는 좋은 경험을 그동안 해왔다고 봐요. 여러 가지 갈등도 있고 불안정도 있지만 결국 새싹 같은 힘을 가진 정신력이 있기 때문에 결국 좋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글·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