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아세안](27) 동남아까지 파고들어 가는, 파묘

인도네시아에서 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파묘>를 축하하는 포스터 /현지 배급사 핏 픽처스(Feat Pictures) SNS 제공

한국 공포 영화 최초 1000만 관객 돌풍의 주인공 <파묘>가 동남아에서도 흥행 신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첫 시작은 인도네시아. 지난 2월 28일 개봉한 <파묘>는 개봉 12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간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 최고 흥행 작품은 아카데미 4개 부문을 휩쓴 <기생충>으로 70만 관객을 동원했다. 하지만 <파묘>는 개봉 10일 만에 <기생충>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공포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이자 인도네시아 전체 영화 흥행 5위를 기록한 영화 <사탄의 숭배자>의 감독 조코 안와르(Joko Anwar)는 <파묘>를 극찬했다. 조코 안와르 감독은 자신의 X(구 트위터)에서 “파묘는 짜릿한 각본, 강렬한 연출과 연기로 구성된 영화로 좀처럼 접하기 힘든 공포 영화다. 마음속(뼛속)까지 무섭다”라고 호평했다. 인도네시아 관객들은 일반적인 공포영화들이 주로 사용하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갑작스럽게 어떤 사물이나 인물, 동물 등이 불쑥 튀어나와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 기법)나 슬로 번(Slow Burn·영화 내용이 전개될수록 점차 공포감이 극대화되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아 좋았다는 평이 많았다. 이 부분에 대해 기존 공포 영화 방식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무섭지 않아 기대에 못 미치는 심심한 공포 영화’라는 평가도 상당수 있었지만, 공포 영화를 무서워서 못 보던 관객들을 극장으로 오게 만든 요소가 되기도 했다. 마치 한국 음식을 좋아하지만 매운맛 때문에 한국 음식을 시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한식을 즐길 수 있게 만든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영화 <파묘>는 인도네시아 개봉 23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베트남에서 흥행은 더 흥미진진하다. 인도네시아보다 2주 늦은 3월 15일에 개봉한 베트남에서는 개봉 3일 만에 63만 관객을 동원하고, 7일 만에 150만 관객, 15일 만에 200만 관객을 기록했다. 베트남에서는 인도네시아보다 더 빠르게 반응한 정도가 아니라 개봉 3일 차에 50만 관객을 돌파한 할리우드 초블록버스터 영화 <아바타 2>보다 빠르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기존 베트남 역대 한국 영화 최대 흥행작 <육사오(6/45)>의 매출 성적 1500억동(약 81억5000만원) 역시 8일 만에 갈아 치웠다. <파묘>의 베트남 흥행에 관한 분석은 다양한데, 우선 ‘굿’과 ‘묘 이장’에 대한 익숙함을 들 수 있다. 베트남 네티즌들은 “베트남에서도 큰 사업가들은 사업 성공을 위해 무당을 통해 굿을 하고 풍수를 이용해 좋은 묫자리를 찾고 묘를 옮기기도 한다”며 영화의 내용이 베트남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언급했다. 베트남은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지만 문화적으로는 유교 문화권으로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중히 여기는 정서가 한국과 같다.

영화 <파묘>의 굿하는 장면을 패러디하는 베트남 누리꾼 /duoungguoc.my1605

<파묘>는 베트남 MZ세대가 영화를 예매할 때 주로 이용하는 전자지갑 모모(momo)의 영화 예매 페이지 리뷰에서 10점 만점에 평점 9.1점을 받았다. 관람 관객 1만명이 넘게 참여했다. 평점 내용을 살펴보면 인도네시아와 마찬가지로 “기존 공포 영화와 달리 놀라운 장면을 억지로 넣지 않아 좋았다”는 후기가 상당수 있다. 또 빠지지 않는 호평은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극찬이었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로 한국 콘텐츠에 익숙한 베트남 관객들은 연기파 배우인 최민식, 유해진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력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는 평이다. 또 <도깨비>·<작은 아씨들>의 배우 김고은, <더 글로리>·<스위트홈>의 배우 이도현은 베트남에 상당히 많은 팬층이 형성돼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 훌륭한 연기력에 팬들의 호응은 더욱더 뜨거웠다. 특히 극중 김고은의 연기력이 절정으로 치닫는 굿하는 장면을 패러디한 영상이나 이도현의 팔에 새긴 한자 문신을 따라 해 펜으로 팔에 한자를 쓰는 영상이 틱톡과 유튜브를 통해 다양하게 올라오고 있다. 또한 극중 주인공들의 이름이 항일 투사들과 같다는 것과 타고 다니는 자동차 번호판 번호가 독립운동, 광복절의 날짜라는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한 여러 블로그도 계속 퍼지고 있다. <파묘>의 인기가 재생산되며 파급되는 것이다.

<파묘>의 베트남, 인도네시아 흥행 성공에는 현지 언어로 번역되는 자막이 조용하면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한 후, 각 나라에서 번역된 영어 자막을 기준으로 각 현지어로 2차 번역하다 보니 최종 현지어 자막에는 본래 대사 취지에 맞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또한 영화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던 베트남, 인도네시아는 영화 전문 번역가가 부족해 단순 한국어 전공자들의 딱딱한 직독·직해가 많았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산업 발전으로 비영어권 국가 언어로 직접 번역하는 전문 자막 인력 수요가 대폭 늘어났다.

한편으로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한국 콘텐츠를 음성적으로 내려받는 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현지 자막을 달아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한 이유다. 음성적으로 유포되는 한국 드라마의 베트남어 자막은 현지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표현이 많아 젊은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베트남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육사오(6/45)>의 흥행 요인 중 하나로 베트남 현지에서 유행하는 젊은 감성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자막도 꼽힌다. 당시 베트남어 번역은 전문 번역가가 아닌 <육사오(6/45)>를 배급한 CJ HK엔터테인먼트의 현지 직원들이 했다. 이들은 한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특유의 관용구나 최신 유행어를 최대한 베트남 상황과 정서에 맞게 현지화해 번역하는 데 공을 들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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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아세안 한류의 중심이고 한국 콘텐츠의 인기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한국 영화가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그간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상영됐지만, 소리소문없이 막을 내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베트남에서 한국 영화는 수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애써 개봉을 안 하는 것이 낫다”라고 한 한국 극장 관계자도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큰 흥행을 하지 못했던 영화가 해외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얻는 예도 있다. 영화 <더 문>은 한국에서 관객 51만명으로 흥행에 참패했지만, 의외로 인도네시아에서 32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역대 인도네시아 개봉 한국 영화 중 3위를 기록 중이다. 한국의 흥행 코드와 다른 나라의 흥행 코드가 일치하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한데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이번 <파묘>의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의 흥행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성공 요소를 분석해야 한다. 그것이 한류 콘텐츠 발전의 해법이다.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