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21세기 기억해야 할 장르영화

㈜영화사폴

제목 살인소설

원제 Sinister

감독 스콧 데릭슨

배우 에단 호크, 빈센트 도노프리오, 제임스 랜슨, 프레드 달튼 톰슨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110분

개봉 2012년 11월 15일

그럴 수는 있겠다. <월하의 공동묘지>(1967)를 만들면서 권철휘 감독이 공동묘지에서 며칠 밤을 샌 건 유명한 이야기다. 좋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취재가 필요하다.

영화 <살인소설>의 주인공 엘리슨(에단 호크 분)은 베스트셀러 소설가다. 그는 과거 유명한 살인사건을 파헤친 소설로 유명세를 떨친 적이 있다. 영화의 서브플롯으로 유추해 보건대, 과거 사건을 단순히 묘사한 것이 아니라 당시 경찰이 놓쳤던 단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의 진짜 모습을 소설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마을 보안관으로서는 자신의 동료들을 물 먹인 그 소설가가 달갑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 소설가가 이주해온 집은 그 전 해 일가족을 목 매달아 죽인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집이다. 더군다나 그 불행한 일가족의 막내는 실종된 상태다. 말하자면 뭔가 찜찜한 게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종결된 사건이다.

사건은 앨리슨이 사전에 조사한 자료에서는 텅 비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다락에서 상자 하나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상자 속엔 슈퍼8 필름과 영사기가 들어 있다. 첫 번째로 건 필름엔 일가족 살인사건의 과정이 담겨 있다. 소설가로서는 이 자료는 입수과정에 찜찜함은 있지만 한 마디로 ‘대박’이다.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단서다. 앨리슨은 나머지 필름도 차례로 본다. 비슷비슷하게 끔찍한 일가족 몰살사건을 담은 필름이다. 도촬된 것으로 보이는 이 필름은 도대체 누가 찍었을까. 자신의 살인 과정을 대담하게 기록해놓고, 마치 의도한 것처럼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밀어넣은 이 사이코 연쇄살인마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영화는 앨리슨의 내면과 앨리슨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 벌어진 범죄소설로 명성을 날렸던 작가였지만, 사실 앨리슨은 강심장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면서 앨리슨이 세상을 보는 관점도 조금 달라졌다. 직업상 자신이 대면해야 할 끔찍한 악몽 같은 사건에 가족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다. 앨리슨이 자신의 고민이나 생각을 털어놓을 대상은 없다. 그래서 의존한 것이 술이다.

뭔가 떠오르는 영화가 있지 않나. 맞다. 이 영화 속 앨리슨이라는 캐릭터는 딱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에서 잭 니콜슨이 맡아 연기했던 ‘잭’이다. 앨리슨은 초조하다. 요즘 인터넷 용어로 ‘리즈시절’, 그러니까 전성기는 과거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 과거의 ‘명성’만 먹고 살기에는 실제 현실의 생계가 팍팍하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집으로 이사한 건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것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싼 임대료도 큰 이유였다. <샤이닝>의 잭네 가족이 소설 창작의 목적도 있지만, 겨울에는 손님이 없어 운영하지 않는 산속 호텔을 지키러 간 것처럼.

터치스크린

얼핏 봐서 영화는 그동안 서양 공포영화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묘사되어온 부기맨(boogey man·침대 밑이나 옷장 속에 숨어 있다가 혼자 자는 아이를 납치하거나 잡아먹는다는 괴물) 이야기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건드리는 건 보다 근본적으로 공포영화에 자리잡고 있는 테마다. 이런 측면에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 필름에 붙어 있는 이름들은 의미심장하다. 1966년 사건 필름에 붙어 있는 이름은 풀장파티(pool party)였고, 1978년 사건에 붙은 이름은 비비큐(BBQ)였다. 1986년 사건의 이름은 마당 풀베기(Lawn Work)다. 바로 도시 인근의 베드타운에서 미국 중산층 가장들이 꿈꿨던 삶을 상징하는 이름들이다. 그 꿈이 말 그대로 악몽으로 뒤바뀐다. 풀장파티는 익사당하는 것이고, 바비큐는 산 채로 태워 죽는 것이다. 마당 풀베기는 잔디 깎는 기계로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는 앞으로 영화를 볼 이들을 위해 남겨놓자. <살인소설>은 21세기에도 이후에도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장르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