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자동차, 미국인의 삶을 주조한 거푸집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머리말에서 린우드 브라이언트 MIT 명예교수의 말을 인용한다. “자동차가 미국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상응하는 연구가 학계에서 이루어진다면, 그렇게 해서 나오는 책이 우리 도서관 장서의 40%는 차지할 것이다.” 과장이 아니다. 미국인은 전 세계 인구에서 5%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자동차 운행거리의 50%, 휘발유 소비의 40%를 차지한다. 미국은 자동차 공화국이다.

강 교수는 2010년 펴낸 <미국사 산책> 시리즈를 통해 미국 독립부터 21세기 초반까지의 미국사를 다룬 적이 있는데, <자동차와 민주주의>는 자동차라는 열쇳말로 주로 20세기 이후의 미국 역사를 풀어내고 있다.

<자동차와 민주주의>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1만4000원

미국 자동차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헨리 포드다. 포드는 조립라인을 도입해 자동차 대량생산시대의 문을 열었는데, 이는 단순히 생산방식의 개혁으로만 그치지 않고 ‘포드주의’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문명사적 파장을 일으켰다. 포드주의는 “기능성과 효율성 중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국가·정부의 경제 규제, 대중문화 동질화”를 특징으로 하는 20세기 전반 자본주의 체제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자동차는 1950~1960년대 미국 문화를 주조한 거푸집이었다. 특히 청년문화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강 교수는 1957년 출간돼 당시 미국 사회에서 ‘비트 세대’라는 말을 유행시킨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가 사실은 자동차 이야기라고 말한다. 비트 세대는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물질적 풍요 속에서 물질중심적 가치관에 반기를 든 세대를 지칭하는데, <길 위에서>는 히치하이킹을 통해 미국 대륙을 여행하는 주인공의 방황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자동차는 도심 거주 필요성을 줄여 주거의 교외화를 촉진했는데, 그 결과 공동체의 약화라는 부정적 현상이 나타났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로버트 퍼트넘은 저서 <나홀로 볼링>에서 미국인들의 공동체 활동이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퍼트넘 교수에 따르면, 운전 시간이 10분 늘어날 때마다 공동체 관련 활동은 10% 줄어들었다. 1969년에서 1995년까지 미국인들의 운전 시간은 26~29%가량 증가했다.

신간 탐색

미국 최대 자동차 기업인 GM은 자사 자동차의 문제점을 고발한 한 변호사를 집요하게 음해한 전력이 있다. GM은 1965년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책에서 자동차 안전문제를 파헤친 이 변호사를 회유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결국 차량 안전 관련 법률이 제정되는 걸 막지는 못했다. 이 변호사의 이름은 미국 소비자 운동의 대부 랠프 네이더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