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세계관을 묻는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지난해 7월 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고인이 된 교사를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해 7월 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고인이 된 교사를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성동훈 기자

2024년 1월 1일부터 한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다. 임기는 2년. 5개의 상임이사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과 10개의 비상임이사국으로 이뤄진 안보리에서 비상임이사국의 역할은 미미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안보리 내 강대국들이 거부권을 남발하며 극한 대립에 빠져들면서, 비상임이사국의 존재감이 부상하고 있다. 안보리의 첫 가자지구 교전 중단 결의안 역시 비상임이사국 몰타가 제출했으며 브라질이 중재한 결과다.

외교의 본질은 ‘우리가 누구인가’란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한다. 강대국이 주도하는 냉혹한 세계질서에서 ‘생존’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최우선 과제였다. 이제 세계질서에 ‘관여’하는 낯선 일을 해야 한다. 세계의 문제를 인식하는 우리의 방식, 즉 ‘세계관’의 점검이 필요하다.

실패로 끝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과정에서 한국식 세계관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개도국·저소득국을 상대로 한 막대한 재정지원 공세에 맞서 ‘물고기’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신생 빈곤국에서 자본주의 선진국으로 거듭난 경험을 가난한 세계와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그럴듯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무엇을 공유하겠다는 것인가. 가난한 세계는 정녕 벗어나는 ‘비결’을 몰라서 가난한가?

한국의 성장에는 한국 스스로의 노력 외에도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일본의 하청으로 시작한 경험,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의 존재 등 ‘지정학적 요인’이 작용했다. 아프리카, 남미 등 국가의 저발전에는 식민지 시대부터 누적돼온 모순이 구조적 원인으로 존재한다. 그리하여 식민지 시대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점점 국제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손실과 보상’ 기금이 출범한 이유다. 사우디 역시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개도국이 진 부채탕감 지원책을 발표했다.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기후위기 해법으로 최첨단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상예보 시스템이나 수상도시 건설 기술 등을 언급한다. 질문 없이 해결을 찾고 ‘돈’과 ‘기술’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국내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스물네 살의 교사가 자살하며 무너진 교육 현장을 고발했다. 정부는 ‘경찰 출신의 학교폭력 전담 수사관이 학교폭력 업무를 맡는다’는 해법을 내놓았다. 교사가 학폭 업무 처리로 인한 스트레스로 숨졌다고 보는 인식에 따른 맞춤형 해결책이다. ‘학부모가 교사를, 타인이 타인을 향해 함부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과 고민은 없었다. 현행 초등학교 학교폭력 예방교육 역시 ‘어떤 처벌을 받는가’부터 시작한다. ‘왜 폭력을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가’란 질문이 빠져 있다.

우리가 생략한 질문은 불행으로 돌아온다. 윤리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 세계에서 ‘돈’은 문제 해결의 유일한 수단이 되고 사회는 더 ‘돈’에 집착한다. 그러면서 불행해지지만 우리는 빠르게 돈이 많은 국가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는 세계관에서 살고 있다. 국제사회 관여자로서 발 딛는 새해, 다른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물꼬가 트이기를 기원한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꼬다리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