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언론사는 관습적으로 ‘올해의 인물’을 꼽는다. 한 해를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나름의 방식이다. 정치부는 정치인, 문화부는 문화·예술계 인사 중에서 후보군을 추린다. 명단 작성은 현장 기자들 몫이지만 “올해 안에 특정한 성취를 보인 인물이 아니라면 빼달라”는 등 명확한 주문은 그간 없었다. 올해 테일러 스위프트를 선정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처럼 ‘정치·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 기준이려니 한다.
결과는 매체마다 다르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가상인물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반면 ‘시사IN’의 선택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선정 이유는 모두 납득이 된다. 경향신문은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대중문화가 장애(인)를 재현할 때 지켜야 할 윤리가 무엇인가를 광범위하게 이야기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을 곁들였고, ‘시사IN’은 “굳건한 연대와 온전한 추모가 이어져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현실 진단과 ‘그래야 한다’는 지향이 함께다. 각 회사의 관점이 드러나는 자리다.
각기 다른 논리를 읽다 보면 한 해가 정리되곤 했다. 다양한 시각이 공존한다는 체감에 묘한 위로도 받았다. 2020년 경향신문이 꼽은 ‘마스크 쓴 우리 모두’를 최근 찾아봤을 땐 한 시절 기억이 살아나 ‘그땐 그랬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째 올해의 인물이 나의 일 년에 결정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회적 기억과 내 경험이 외따로는 아닐 것이나, 내게 짙은 흔적을 남긴 존재는 늘 다른 차원에 있었다.
올해 내게는 신평옥씨가 떠오른다. 1971년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가 풀려나 경찰·검찰로부터 간첩 의심을 받았던 사람이다. 가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해 내뱉은 허위 자백이 근거였다. 유죄판결을 받은 그는 ‘빨갱이’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50년 세월을 살았다. 신씨가 재심을 결심한 건 경향신문이 지난해 7월 그의 거주지인 여수를 방문한 뒤다.
당시 나와 회사 선배인 전현진 기자는 2005~2006년 대법원이 꼽은 과거사 사건 224건 리스트를 입수해 취재 중이었다. 대법원 자체 검토 결과 증거조작, 허위자백 등 문제 소지가 있다고 파악한 사건 목록이었다. 여수까지 신씨를 찾아간 건 전 선배였다. 그가 “재심은 해보려고 안 했느냐”고 묻자 신씨는 그저 참고 지냈다고 했다. 자기 사건이 법원에서 문제시되고 있단 걸 알았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이후 신씨는 재심을 청했고, 올해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12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아온 그를 드디어 나도 만났다.
그날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정치부 기자인 나는 신씨와 짧은 인사만 나눈 채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그렇게 쓴 기사는 많은 독자의 주목을 받았지만, 다른 언론사 기자가 쓴 기사와 내용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기사 한 줄 무게를 새삼 느낀 건 신씨를 본 뒤였다. 그가 “고맙다”며 부여잡은 손의 따뜻하고 거친 질감이 지금까지 느껴진다. 자주 피곤하고 때론 가치를 알기 힘든 한마디 정보에 갈급해 시간을 보내지만, 덕분에 이 일 자체를 냉소하진 않을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올해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지.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