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누구를 위해서 공부하는가?

팔공산 관봉 정상에는 일명 ‘갓바위 부처’가 있다. 부처의 정식 이름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인데 부처의 머리에 갓을 썼다고 해서 갓바위 부처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연중 소원을 빌러 오는 이들로 만원이다. 수능을 앞두고는 발 디딜 틈이 없다. 부처 머리에 쓴 갓의 모양이 대학 학사모와 흡사해서 대입 합격 소원에 특히 영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가족을 중시하는 동양 특유의 문화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중국이나 한국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도 ‘부모’ 때문이라는 대답이 많다. 최근 KBS에서 방영되고 책으로도 출간된 ‘공부하는 인간(호모 아카데미쿠스)’에서도 한국과 중국 학생들은 너나없이 “제게 기대를 걸고 있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대답했다.

윤영석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2007년 8월 경희대 졸업식 때 부모님과 동생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자녀경영연구소 제공

대학을 졸업하고서 각자 로스쿨과 변리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는 윤영석(31)·주석(30) 형제의 경우도 자신의 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호모 아카데미쿠스’로 살고 있다. 지방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는 윤종식·최강자 부부에게는 형제가 늘 자랑거리였고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수험생인 처지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에 들어갈 때처럼 잘할 거라 믿으며 늘 기도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는 형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매주 한두 번 절을 찾아 기도를 해오고 있다.

형인 윤영석씨는 경희대 통번역학과를 2007년 졸업했다. 대학에 들어갈 때 그의 목표는 무엇에서든 ‘베스트 원(Best One)’이 되는 것이었다. 총학생회장 선거에도 출마해 부회장으로 일했다. 이때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또 신문을 보다 경제기사가 이해가 잘 안 되자 경제학을 복수전공으로 택했다. 경제학 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학점에서도 ‘베스트 원’이 되고자 했는데 경제학을 복수전공하면서 역부족이었다.

재학 중에 카투사에 지원해 입대를 했는데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았다. 카투사 부대원들이 대부분 서울대생들이었다. 또 대부분 고시준비생으로 군부대에서도 일과가 끝나면 고시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꿈이 컸고 적극적으로 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선임은 도서관 책을 다 읽고 제대하겠다고 했다. 복무 중에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이도 있었다.

그는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6개월 동안 통역회사에 다녔는데 그때 회사에 취업하기보다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생각보다 세상에는 ‘베스트 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는 ‘온리 원(Only One)’이 되자고 목표를 수정했다. NGO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장차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을 경험해보고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인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현장종사자가 대부분인 이 대학원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없었다. 자퇴를 했지만 막막했다.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를 했고 학원도 직접 운영했다. 지방 출신인 그에게는 우선 서울에서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2010년 그는 연세대 대학원에 들어갔다. 학원 강사를 하다보니 진짜 공부를 하고 싶어졌고 대학 때 하지 못한 인문학에 빠져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원 합격이 결정되고 부모님에게 연락드렸더니 무척 기뻐하셨다”면서 그 또한 자식으로서 보람이었다고 한다. 윤씨는 지난해 말부터 박사과정 대신 로스쿨이라는 또다른 목표를 세우고 준비 중이다. 그는 “학원을 하다 상표소송에 휘말리고 3000만원 정도를 배상해주면서 법률의 세계를 접할 수 있었는데, 의외로 적성에 맞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영어통번역 공부를 했고 대학원에서는 인문학적 지식을 나름대로 쌓을 수 있었어요. 또 학원을 하면서 사회 물정도 배울 수 있었고요. 스티브 잡스의 영어연설문을 보다 ‘점을 연결하기’에 대해 읽었는데 저의 지난 일들도 점으로 연결하면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게 바로 제가 생각한 ‘온리 원’의 길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그는 “로스쿨에 진학하면 다른 학생보다 차별화한 나만의 ‘온리 원’을 구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변호사가 되면 소상공인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싶단다.

동생 윤주석씨는 서울대 지역시스템공학과를 졸업하고 변리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변리사시험은 3학년부터 준비해 횟수로 6년째다. 2차 시험에서 네 번 고배를 마셨다. 오는 7월에 보는 2차 시험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는데 여기서 낙방하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하루에 순수 공부시간이 11시간 정도 된다고 한다. ‘왜 다른 길도 많은데 변리사에 매달리느냐’고 물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면서 ‘뭘 먹고 살지’에 대해 고민했어요. 졸업을 하면 대부분 건설사에 취직을 하는데 전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전공을 살리면서 전문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었는데 변리사가 전망이 있다고 해서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을 위해서도 이번에 끝을 봐야죠.”

윤주석씨는 몇 년째 형이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는데 면목이 없고, 부모님에게는 더말할 나위가 없다고 한다. 학원비 등 비용만 해도 만만찮다고 한다. 그가 변리사 2차 시험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100일 기도를 드리는 것을 알고 있어 합격에 대한 부담감은 더하다. 더욱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부모님과 형에게 약조를 했기에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하루를 보낸다. 고등학교 때나 서울대에 들어갔을 때는 부모님에게 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걱정만 끼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럴 때면 사법고시 합격자 중에서도 30~34세가 20%(도표 참조) 정도라며 위안을 삼고 용기를 낸다. 그는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면 로스쿨에 진학해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제2의 입시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들 형제의 모습은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졸 청년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흔히 명문대라도 합격하면 앞길이 탄탄대로인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공부는 대학에 들어가서 또 시작되고 졸업해서도 끝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공부는 오히려 대학 졸업 후에 시작된다.

‘공부하는 인간’에서 ‘동양인은 왜 죽도록 공부하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동양인은 개인보다 집단을 위해 공부하고, 독립성보다 관계성을 중시한다. 또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공부한다.” 말하자면 동양은 개인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공부하고, 서양은 공동체보다 개인의 가치를 위해 공부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고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공부가 활용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

문화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공부문화’ 또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게다. 다만, 동양에서는 공동체 가치에 개인의 가치를 좀 더 투영하고, 서양에서는 개인의 가치에 공동체 가치를 좀 더 투영한다면 자녀와 부모, 우리 사회 모두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또 공부에 ‘끝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수험생’으로서의 공부가 너무 길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