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개천에서 용 나지 못하는’ 교육제도

“아이비리그 합격은 6개의 리더 활동을 하고, 3개의 스포츠에 능하고, SAT에서 놀라운 점수를 받으며, ‘두 명의 엄마’를 가지고 있는 특출한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올해 프린스턴대, 예일대 등 아이비리그 입학에 실패한 한 미국 고교생이 신문 기고문에서 주장한 도발적인 내용이다. ‘두 명의 엄마’는 한 명의 엄마만으로는 자녀의 스펙 쌓기나 봉사 등 뒷바라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기사를 보면 왠지 자녀교육에 극성인 이른바 ‘강남 엄마’들이 오버랩 된다.

미국의 경우 중산층 부모 밑에서 자란 학생은 아이비리그에 합격해도 다니기 벅찰 뿐만 아니라 어지간해서는 봉사나 스포츠 스펙을 쌓을 수 없어 합격하기도 힘들다. 말하자면 미국에서 중산층 자녀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아이비리그에 다닐 수 없는 현실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교육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시대가 미국에서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미국 등 외국 대학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이 더 많은 ‘민사고’를 들어갔다면 다들 천재라고 부러워하지만 여기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내 대학으로 목표를 잡아야 한다.

일러스트·만화그리는 목각인형

그래서 교육현장에서는 ‘민사고에 가고 싶다’고 하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있다고 한다. “아버지 뭐하시니?” 여기서 대답이 시원찮으면 “어머니는 뭐하시니?”로 이어진다. 민사고는 대부분이 유학을 준비하고 또 아이비리그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 당연한 질문일 수 있다.

지난 기사에서 조기유학으로 인한 교육미아 문제를 지적했는데, 이는 대부분 경제력이 부족한 가정에서 주로 직면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조기유학의 또 다른 면이 있다.

바로 경제력이 있는 부자 부모를 둔 학생들의 경우다. 한국에서 성적이 바닥을 헤매는 학생은 부모가 내버려둘 경우 인생의 출발 자체부터 힘겨울 수밖에 없다. 어딜 가나 “어느 대학 나왔어요?”라는 질문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이를 아예 무시하기란 참 힘겹다. 이런 서러움을 당해본 부모들은 자기 자식만은 이러한 설움을 겪지 않도록 자녀교육에 묻지마식 투자를 한다. 경제력을 고려하지 않고 성적 올리기에 혈안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 자식에게는 삼류대 나온 설움, 아니 대학을 나오지 못한 설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다.

못먹는 서러움도 서러움이지만, 못배운 서러움, 간판 있는 대학을 못나온 서러움은 그보다 더 사람을 기죽이게 하는 서러움이기 때문이다. 그 현실을 알기에 자식이 공부를 못하면 애가 타고 속이 무너진다. 하지만 돈이 많은 집들에겐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게 바로 ‘외국 유학’이다. 특히 한국에서 성적이 바닥권에 있을 경우 돈 많은 집 아이들은 언제든 외국으로 유유히 떠날 수 있다. 조기유학은 가진 자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한 수’인 것이다.

심민섭군(18·가명)은 성적이 늘 바닥권이었고, ‘중2병’도 심하게 앓았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의욕도 없고 짜증만 냈다. 게다가 중2때 노는 애들이 만날 때리고 괴롭혔다. 그냥 맞았다. 집에 와서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럴 경우 돈이 없는 집 아들이었다면 심군의 인생은 ‘뻔한 코스’를 밟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섭이네는 부자였다.

민섭이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서울 도심에 있는 주차장을 물려받아 운영했다. 아버지는 대학을 제대로 나오지 못해 늘 열등감에 시달렸다. 결국 마흔다섯의 나이에 미국의 커뮤니티 칼리지로 유학을 떠났다.

아버지는 민섭이와 여동생을 데리고 갔다. 민섭이는 미국 중학교에서 럭비부에 들어갔다. 운동을 하면 영어를 잘 못해도 애들이랑 금방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같이 뛰고 샤워하고 하면서 영어도 늘어갔다.

코치가 민섭이 몸이 럭비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으면서 성격도 바뀌었고 삶에 대한 의욕도 생겼다. 비만이었던 몸도 근육질로 바뀌었다. 민섭이는 다른 집 아이들처럼 대기업에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감 자체가 없다. 주차장이 있기 때문이다.

민섭이의 현재 꿈은 한국에 와서 체육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민섭이 엄마는 방학 때마다 아들을 보면 엄청 행복해 한다. 그 심한 사춘기도 미국 가서 잘 넘기고 엄마 걱정하는 의젓한 아들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민섭이는 경제력이 뒷받침된 부모 덕분에 미국 유학이 전화위복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돈 많은 집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학벌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늦깎이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돈이 없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최윤희양(18·가명)도 비슷한 케이스다. 고1 때 성적도 중간이고 두드러지지 않는 외모에 자존감도 높지 않았다. 예체능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데 늘 공부가 문제였다. 그 공부 하나 때문에 얼마나 상처 받을까, 부모는 그게 늘 고민이었다. 아버지가 사업을 잘 해서 현금이 많은 집이다.

전원주택에 살면서 아버지는 벤츠, 엄마는 렉서스를 타고 다닌다. 이래저래 모아놓은 돈도 많다. 우연히 민섭이의 사례를 듣고 고1을 다니다 급하게 유학을 결정했다. 강남에는 유학을 가려는 아이들을 위한 단기코스가 있다. 하루에 8시간 수업하는 학원이다. 영어 한 과목에 300만원 정도 한단다. 석 달 정도 다니면 미국 중학교 3학년 정도로 편입했을 때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다.

물론 영어수업을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미국 중학교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란다. 수학도 여기서 포기했던 애들이 미국에 가면 똑똑하단 소리까지 듣는단다.

윤희는 미국에서 자존감도 다시 생기고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해도 행복하단다. 윤희도 부모도 공부를 잘해서 굳이 좋은 대학 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인생도 이제는 ‘돈이 있어야 가능한’ 세상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을 썼지만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물론 경제력이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 유학을 가서 방탕과 향락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그래도 돈이 있는 집 아이들은 한국에서 안 되면 미국 등 외국에서 또 한 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말하자면 ‘가진 자’들의 ‘패자부활전’이라고 할까. 이런 경우를 보면 자식교육에도 돈의 위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미국에서도 부모가 경제력이 넉넉하지 못하면 아이리비그에 합격해도 포기하듯이 한국에서도 점점 돈이 많은 집 아이들이 ‘SKY’ 등 명문대를 ‘점령’하고 있다.

이게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그늘이라는 분석도 있다.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은 교육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산층의 교육 몰락은 금융위기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아무리 교육제도를 개선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제도개선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측은 늘 없는 집 아이들인 셈이다. 특목고 제도가 그렇고, 수시전형이 그렇고, 입학사정관 전형이 그렇다. 로스쿨도 그렇고, 외교관 선발도 그렇다. 새로운 교육제도들이 기존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라지만 점점 돈 많은 집 자녀들에게 유리해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

돈이 없으면 지원조차 못하게 한다. 제도개선이 되레 ‘개천에서 용 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고, 개악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제도개선이란 말인가. 그래서 차라리 전두환 시절의 입시제도나 고시제도가 더 좋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때는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시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한 ‘패자부활전’을 허하라!.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