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출 챌린지’와 무개념 기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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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고물가 시대를 맞아 소비를 극단으로 줄이는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썼다. 휴학생인 A씨는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사람 중 한명이었다. 자취를 하는 탓에 ‘무지출’은 불가능했고, 하루에 1만원만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기사가 나가고 한 달 반 만에 다시 연락했을 때, A씨의 목소리엔 힘이 더 빠져 있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생활비가 마이너스”라며 “마트에서 시들기 직전의 채소와 가공 고기만 사먹는데 갈수록 우울감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저만 가난한 것 같아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데 더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난 8월 19일 기획재정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무지출 챌린지’ 소개 카드뉴스 / 인스타그램 갈무리

지난 8월 19일 기획재정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무지출 챌린지’ 소개 카드뉴스 / 인스타그램 갈무리

당시 기사엔 “무지출을 실천하는 이들은 현재 상황이 마냥 우울하고 힘든 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는 문장이 담겼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본인의 미래와 성장을 대비하는 하나의 전략으로써 무지출을 실천하고 인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 의견도 포함됐다. A씨와의 통화 직후 상황을 섣불리 낙관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에는 하루 지출 ‘0원’을 인증하는 2030세대의 글과 영상이 넘쳐난다. 소비하지 않는 날을 늘려나가는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가계부를 찾는 이도 늘고 있다고 한다. G마켓에 따르면 최근 한 달(7.25∼8.24) 동안 가계부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1% 증가했다. 가계부는 연말·연초 다이어리 등과 함께 구매하는 결심상품으로 여름에는 잘 팔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같은 판매량은 이례적이라고 업체는 설명한다.

지난 8월 19일 기획재정부가 SNS에 올린 게시물이 화제가 됐다. 기재부는 카드뉴스를 통해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열풍인 무지출 챌린지 한 번 도전해보실래요?”라며 ‘지출 0원 도전하기’를 권유했다. ‘점심은 도시락·퇴근 후엔 집밥’, ‘포인트 모아 커피값 내기’, ‘중고거래와 무료나눔 권장’ 등 실행 방법도 3가지나 소개했다. 새로운 소비 형태를 소개할 의도라고 설명했지만, 역풍은 거셌다. 누리꾼들은 ‘대국민 굶겨 죽이기 프로젝트’라며 분노했고, 물가를 잡고 경기를 살려야 할 기재부가 돈을 쓰지 말자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기재부의 카드뉴스엔 ‘공감’이 부재했다. 파스텔톤 배경에 알록달록 유쾌하게 그려진 그림은 경기침체로 신음하는 이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게 했다. 삼시 세끼를 시든 채소와 가공 고기로 때우는 청년이 느끼는 우울감, 코로나19에 더해 고물가로 휘청이는 소상공인들의 절망감에 대한 배려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시글은 곧 삭제됐으나,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실수가 반복됐다. 기재부는 지난 8월 24일 수제버거를 사먹는 이들이 과소비한다는 식의 내용이 담긴 카드뉴스를 또 한 번 올렸다.

“기재부 목표 달성했다고 기뻐 공중제비를 돌겠네.” 지난 8월 31일 소비가 199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5개월 연속 감소했다는 뉴스 속보가 뜨자 한 누리꾼은 이렇게 조소했다. 기재부는 청년들에게 돈 아끼라고 권유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공감받지 못할 카드뉴스를 남발할 시간에 말이다.

<이유진 사회부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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