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수영장에서 나는 매일 다른 사람이다. 어떤 날은 한없이 너그럽고, 어떤 날은 밑도 끝도 없이 까칠하다. 따뜻한 말 한마디나 눈맞춤 한 번에 꽤 심각하던 상황이 곧바로 풀리는 때가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푹 상해 물 밖까지 커다란 짜증을 질질 끌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너그러운 날의 나는 뭐가 달랐을까. 혹시 결정적 차이는 잠이 아니었을까. 전날 일찍 잤다 싶으면 아침에 일어나는 일들이 훨씬 너그럽게 받아들여졌다. 수면을 집중 연구해온 신경과학자 매슈 워커는 누구나 하루 8시간은 자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학자들은 잠을 적게 자도 되는 유전자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워커가 보기에 그런 사람은 없다. 수면 시간에 따라 운동 능력, 의사 결정, 심리 상태 등이 어떻게 다른지를 실험으로 살펴보면, 단 1시간을 덜 자는 것으로도 피험자들의 능력에는 현저한 차이가 발생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잠이 부족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험해보면 잠을 줄여 퍼포먼스가 현저히 떨어진 사람들도 자가 진단에서는 ‘잘 잤다’, ‘충분하다’, ‘컨디션이 좋다’라고 답한다고 한다.
오랜 시간 극복, 극기, 인내 같은 것을 성공을 위한 필수 덕목으로 강조해온 우리 사회에서, 잠을 줄여야 성공한다는 신화는 여전하다. 팬데믹 국면에서 가장 크게 떠오른 키워드 중 하나였던 ‘미라클 모닝’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조용한 새벽 시간을 오롯이 자기 계발에 쓰겠다는 발상 자체는 훌륭하지만, 그러고도 충분히 자려면 8시 무렵부터 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은 그다지 얘기하지 않는다.
아침의 수영장에서 우리 반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천천히’다. 새로운 동작을 시범 보인 후 “빨리하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하세요”라고 몇 번씩 강조한다. 이걸 지키는 수강생은 열에 한둘이 될까 말까다. 대부분은 자신에 대해서도, 남에 대해서도 느리게 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당장 편한 방식을 취해 빨리 가기를 택하고는 숨을 헐떡이며 ‘열심히 했다’고 만족한다.
쓸모없는 사람이 아님을 스스로와 남에게 납득시켜야만 살아남는 가혹한 환경에서, 다들 성실함을 무기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고 애쓰는 게 눈에 보인다. 이 와중에 충분히 자고 잘 챙겨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묻는다면, 함께 성실의 기준을 바꿔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렇게 했을 때 결과도 더 좋다는 말을 속는 셈 치고 믿어 봐도 좋지 않나. “직장에 충실했는가?”,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킬 만큼 열심히 달렸는가?”.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자. “나 자신을 잘 먹이고 잘 재웠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모든 순간에 최상의 상태로 임하도록 나를 도왔는가.” 이렇게 했을 때 스스로가 얼마나 더 괜찮은 사람인지를 모른 채로 살아가는 건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최미랑 뉴콘텐츠팀 기자 ra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