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껍데기로 전락한 대기업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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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한 후보자가 김·장 법률사무소(김앤장)의 고문과 S-Oil 사외이사를 겸직한 행위가 상법상 사외이사 결격사유에 해당하는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했던 나는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어가지 못하는 공방에 지루함을 넘어 답답함을 느꼈다. 이에 독자들과 처음 만나는 이번 글을 통해 ‘이사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4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4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한덕수 후보자 겸직 행위 논란

주식회사는 사단법인이라는 본질이 말해주듯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때 ‘사람들’은 주주다. 주주들의 모임을 의인화해 법인격을 부여한 것이 주식회사다. 그런데 주식회사는 의인화된 개념에 불과하므로 실제로 일은 사람이 해야 한다. 이때 주주를 위해 그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이사다.

주식회사가 처음 태동했을 때는 이 관계를 ‘신탁’의 법리를 차용해 규율했다. 이 경우 돈을 댄 주주는 위탁자가 되고, 주식회사는 신탁이 되고 그 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는 이사가 된다. 이사는 신탁의 법리에 따라 위탁자인 주주에 대해 여러 의무를 부담한다. 구체적으로 이사는 열심히 일해야 하고(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딴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충성의 의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태만이고, 딴 곳을 쳐다보면 이해상충이다. 모두 이사의 의무 위반이다.

그럼 이사는 원천적으로 누구에 대해 의무를 부담하는가? 영미의 회사법에서 이사는 ‘회사와 주주 일반’에 대해 의무를 부담한다. 이 점은 이사한테 유리하게 회사법을 적용하기로 정평이 난 미 델라웨어 법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특히 유의할 건 이사가 ‘주주 일반’에 대해서도 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주주를 위탁자, 이사를 수탁자로 치환해 놓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심지어 영미법에서 이사는 도산이 임박하면 채권자에 대해서까지 부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왜냐하면 도산 상태에 진입하면 채권자 특히 무담보 채권자가 잔여적 청구권자로 평상시의 주주와 유사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일반론이 한국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우선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duty of care)를 살펴보자. 이 의무의 하부 개념은 감시의 의무(duty of oversight)다. 이사는 회사가 정상적으로 사회의 규범을 지키며 영업활동을 하는지 감시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의무를 구체화한 것이 내부 통제기준이다. 즉 이사는 내부 통제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이 실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감시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런 기본 법리가 제대로 착근하지 않은 채 제도의 껍데기만 도입하다 보니 개그콘서트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손태승 전 우리은행장에 대한 행정법원 판결이 그 대표적 예다. 재판부는 “손 전 행장에게 내부 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는 있지만 이를 준수할 의무는 없다”고 판시했다. 소가 웃을 노릇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의 조항을 거론하기에 앞서, 애초에 내부 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의 원천은 감시의무에서 연유하는 것이고, 그 의무는 내부 통제기준이 실효적으로 운영될 때에 비로소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정법원 재판부는 이런 가장 기초적인 법리를 도외시하고 감시의무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이사에 관한 법리가 왜곡되는 현장은 또 있다. 이사의 의무부담 범위를 인위적으로 좁혀 운영하는 사례가 그것이다. 한국에서 이사는 회사에 대해서만 책임을 질 뿐 주주 일반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것이 이제까지의 대법원 판례다. 잘못된 것이다.

혹자는 회사에 책임을 지는 것과 주주 일반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대법원 판례가 특별히 잘못되지 않았다는 투로 항변한다. 그럴 수 있다. 회사가 잘되면 주주도 잘되고, 회사에 손해가 나면 궁극적으로 주주 일반이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연관성이 언제나 성립하지는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회사의 소멸이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삼성물산 주주들의 입장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합병비율이다. 그러나 합병비율이 어떻게 결정되든 삼성물산에는 아무런 손익도 발생하지 않는다. 삼성물산 손익은 합병비율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무원칙하게 그대로 적용하면 삼성물산 이사들이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회사에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잘못된 결과다. 영미에서 만일 흡수합병되는 회사의 이사가 엉터리 합병비율을 수용한다면 당장 소송감이다.

사외이사는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

그렇다면 흡수합병되는 회사의 이사들은 어떻게 해야 소송을 피할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 이사들이 ‘절대적인 공정성(absolute fairness)’을 다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리고 실무에서 이를 달성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는 ‘소수자들의 다수결(majority of minority)’ 충족이다. 이때 소수자들이란 지배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다른 주주들을 말한다. 즉 주주총회에서 지배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다른 주주들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한 상태에서 합병이 통과되면 그런 결정은 절대적인 공정성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원칙은 이사회 결정에도 응용할 수 있다. 이사회의 안건이 지배주주의 권익과 직결되면 역시 공정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대표이사나 기타 사내이사를 제외한 사외이사들만으로 소위원회를 꾸려 이들의 의견을 따르면 공정성 논란을 피해갈 수 있다. 여기서 전제조건은 사외이사들이 지배주주나 대표이사와는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 주주총회에서 소수자들의 다수결 원칙을 도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외이사 제도는 적어도 법문상으로는 활성화돼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사외이사가 ‘지배주주와 독립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이사’가 아니라 ‘사외이사 요건을 껍데기로만 충족하는 지배주주의 또 다른 특수관계인’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 역시 잘못된 것이다.

제도의 근본이 뿌리내리지 않고 껍데기만 굴러다니는 현실의 모습은 참혹하다. 이사의 감시 의무를 소홀히 한 금융지주 회장들이 버젓이 직무를 수행하고, 구 삼성물산 이사가 국회의원을 하고 한 후보자는 목하 두 번째 국무총리를 바라보고 있다. 탱자를 다시 귤로 만드는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할 시점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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