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비인도적 설정과 잔혹한 묘사 ‘충격작’

흔히 SF를 ‘가정(假定)의 문학’이라 한다. 그렇다고 가정이 SF의 전유물일 순 없다. 시라이 도모유키의 데뷔작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는 그 훌륭한 예로, 클론(복제인간)을 배양해 인육을 먹는 추악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근사한 미스터리를 펼쳐 보인다. 처음엔 생경한 세계를 설계한 것이 마치 클론의 머리를 두고 벌이는 트릭을 위한 것처럼 보일 법하다. 그러나 추리 게임에 은근슬쩍 한눈팔게 하더니 어느 순간 ‘만약에’로 구축한 시스템의 모순과 인간의 존엄이란 주제를 정확히 꿰뚫는다. 여기에 의식하지 못한 사이 슬그머니 진실을 드러내는 미스터리의 방식 그대로 적잖은 충격까지 얹어내면서 뒤틀린 상상력과 빼어난 미스터리의 요건을 모두 충족시킨다.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내친구의서재 제공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대유행하면서 인류는 큰 위기를 맞는다. 짧은 시간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하지만, 머지않아 항바이러스제가 공급되면서 인류는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았다. 문제는 이 신종 바이러스가 인수공통의 전염병으로 포유류, 조류, 어류까지 감염된 데 반해 개발된 항바이러스제는 오로지 인간에게만 효과가 있다는 데서 불거졌다. 많은 가축이 살처분되고 몇몇 동물은 멸종했으며, 인류는 극단적으로 육식을 거부하게 됐다. 인류 멸종을 목도했던 공포 때문에 채식주의를 선택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난 탓이다. 이에 아이들 대다수가 성장 장애를 보이고, 채솟값은 급등하고 축산업은 몰락하는 등 시장경제도 일대 혼란에 빠졌다.

이때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클론 인간을 사육해 인육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급되는 ‘고기’는 오직 자신의 클론으로 한정되며, 머리 부위는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시스템을 제안하고 구축한 유전학자이자 전 후생노동성 장관 후지야마가 머리를 배송받은 것엔 분명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후지야마의 제안으로 설립된 ‘플라나리아 센터’는 클론을 배양하고 사육해 정육과 배달까지 도맡는 시설로 이곳에서 클론의 머리를 잘라내는 일을 맡고 있는 직원 가즈시는 가장 먼저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가즈시는 누명을 벗고자 온갖 상황을 고려하며 범인을 추리한다. 애초에 후지야마가 클론을 이용한 트릭으로 과거 살인 사건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났으리라 추측할 수 있는 만큼 독자는 복제인간을 활용했을 눈속임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트릭은 훨씬 정교할 뿐 아니라 핵심은 결국 음험한 욕망으로 똘똘 뭉친 인간을 향한다. 무엇보다 가즈시가 클론을 빼돌려 집 지하실에 감금·사육하고 있는 비밀을 감춘 채 ‘머리 배송 사건’의 진범을 찾는 탓에 선악은 줄곧 회색을 띤다. 또 탐정을 자처하는 이가 진실을 말하기 전 갑작스레 사망하기도 하고, 가즈시의 지하실에서 비참한 몰골을 한 클론이 오히려 지금껏 본 적 없는 ‘안락의자 탐정’이 되어 의외의 국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심지어 서술 트릭으로 몇차례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가운데 ‘인간을 사육해 고기를 먹는다’는 작중 당연한 전제를 뒤엎는 ‘혁명’은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안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한 데 수렴되는 복잡하고도 멋진 구조물 같다.

장르물 전성시대

이 작품은 제3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비인도적인 설정과 잔혹한 묘사가 애초에 많은 사람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작품이 아니란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만큼 ‘충격작’임을 더더욱 방증한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