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야기]진해에는 벚꽃 말고도 ‘근대문화길’도 있어요

국내 유일 군항 탐방길과 해설사 안내 받는 문화역사길 등 두 코스 마련

‘100년 전 역사 속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벚꽃나무 36만 그루, 대한민국 최대 벚꽃 축제(4월 1~10일)가 열리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구는 1910~1912년 일본이 군사전진기지 목적으로 만든 한국 최초의 계획도시이다. 해군부대 내에는 당시 일본군이 지은 건물과 수령 100년이 넘은 왕벚꽃·편백·소나무 등 고목 4800여그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도심에도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충무공 이순신 동상, 백범 김구 선생 친필시비 등 근대문화역사자원이 밀집돼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터리에 있는 국가사적 진해우체국.

지난 3월 29일 강순석 근대문화해설사(63)의 안내를 받아 탐방길에 올랐다. 강 해설사는 “진해에는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와 해방 이후 숨겨진 역사의 흔적을 엮어 스토리텔링한 진해근대문화길이 있다”며 “역사적 의미를 잘 느껴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진해근대문화길은 2008년부터 공개한 군항탐방길(1코스)과 지난해 3월부터 문화해설을 시작한 근대문화역사길(2코스)로 나뉜다.

해군부대 내 이승만 대통령 별장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해군부대 내 11곳의 유산 코스

군항탐방길은 ‘금단 구역’인 해군부대 내를 탐방하는 국내 유일한 코스다. 군항탐방길은 해군부대 제1정문 ‘해군의 집’에서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해 5㎞, 11곳의 유산을 둘러보는 코스다. 제1정문 앞에는 영화 <연평해전> 촬영지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부대에서 2002년 6월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북한의 기습공격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윤영하 소령 등 6명과 참수리 357호를 탄 용사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촬영했다. 정문을 지나 왼쪽에는 황해도 해주 태생인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유묵비가 보인다. 유묵비에는 ‘나라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뜻의 ‘위국헌신군인본분’이란 글귀가 적혀 있다. 비석 휘호는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만주 뤼순 감옥에서 순국 직전 남겼다. 장병들에게 군인의 본분을 일깨우는 이 비석은 1979년 9월 2일 안 의사 탄생 100주기를 맞아 만들었다. 이어 기차역인 통해역이 보였다. 일본군이 군수물자들을 싣고 나르는 철길의 마지막 역이다. 1961년부터 2006년까지 해군 장병이 출·퇴근 시 이용했던 간이역으로 진해선의 마지막 종착역이었다.

해군부대 내 이승만 대통령 별장 안에 있는 집무실.

역사의 흔적 15곳 스토리텔링 코스

통해역을 지나면 손원일 제독(1909~ 1980) 동상이 보인다. ‘해군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손 제독은 1945년 11월 11일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을 창설했다. 이듬해 해군병학교(해군사관학교 모태) 설립, 1949년 해병대를 창설하고 한국전쟁 때 해·육상 주요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동상 인근에는 러시아풍의 옛 일본 해군 진해요항부 청사와 병원 청사도 보였다. 이들 건물은 현재 해군이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천천히 이동하자 청룡부대 의무부사관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지덕칠 중사(1940~1967) 동상이 보였다. 지 중사는 1967년 2월 1일 월남 추라이 지역에서 수로측량 작업을 하는 미국 수중파괴대(UDT) 요원을 엄호하는 경계작전에 투입돼 적에 포위된 소대원을 탈출시킨 뒤 자신은 산화한 인물이다.

해군부대 내 옛 일본 해군 진해요항부 청사.

해안가로 가다 보면 이승만 대통령 별장과 육각정(경남도 유형문화재 제265호)이 있다. 1905년쯤 지어진 이 건물은 일본군 통신대가 사용했던 곳으로 해방 후 해군이 개조해 1949년부터 10년간 이승만 대통령이 별장으로 이용했다. 별장은 대지 998㎡(약 302평), 건물면적 218㎡(약 66평)에 한옥과 양옥을 절충한 ㄱ자형 건물로 집무실 겸 응접실, 침실, 경호실, 식당 겸 회의실, 주방 등이 있다. 건물 내에는 만일에 대비해 대통령이 해안가로 피신할 수 있는 최장 300m의 비상지하탈출로 3개가 있었다. 별장과 50m 떨어진 해안가 절벽에 있는 육각정은 1949년 8월 8일 이승만 대통령과 중화민국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만나 아시아·태평양국 동맹 결성을 위한 예비회담을 개최하고 1954년 6월 15일 아시아민족 반공연맹(APACL)을 탄생시킨 곳이다. 해군사관학교 앞에는 경북 청도 출신의 이인호 소령(1931~1966) 동상이 있다. 해사 11기인 이 소령은 1966년 해병 대위로 월남전에 참전해 투이호아 지역에서 동굴 수색 중 베트콩의 수류탄 공격을 몸으로 막아 부하를 구하고 산화했다. 해군사관학교 앞바다에는 임진왜란 때 사용한 거북선이 복원돼 있으며 870여점의 유물이 전시된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2015년 11월 27일 국내 최초로 건립된 왼손에 활을 든 이순신 동상이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남원로터리에 있는 김구 선생 친필시비.

진해 도심을 둘러보는 근대문화역사길은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친필시비 등 15곳을 스토리텔링한 코스이다. 일제는 도시를 설계하면서 벌판 한가운데 있던 당산나무인 팽나무(포구나무)를 중심으로 가운데를 둥글게 두고 ‘방사동심원형’의 여덟 갈래의 시가지를 만들었다. 일제는 중원광장에 은행 등 상업시설을 배치했다. 중원광장 여덟 꼭짓점에 점령한 나라별 건축양식의 건물을 세우려 했지만 패전으로 러시아·중국풍의 건물만이 자리하고 있다. 중원로터리 주변은 현존하는 국내 우체국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러시아풍의 진해우체국(국가사적 291호)이 있다. 남원로터리에는 김구 선생이 1946년 진해를 방문했을 때 주민들에게 선물했던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라는 한시를 새긴 비석도 있다. 또 1949년 8월 이승만 대통령과 장제스 총통이 아·태 동맹 결성 예비회담을 마치고 식사를 했던 원해루, 중국·일본풍이 섞인 육각 모양의 고급술집 수양회관, 옛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 일본식 장옥거리 등이 탐방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곳&이야기

1·2코스를 탐방하는 데 각각 2시간이 걸린다. 탐방신청은 창원시청 홈페이지(naval.changwon.go.kr)에서 하면 된다.

<글·사진 창원 | 김정훈 전국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