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프리즘]전두환의 거짓말, 정말 모르고 했나

전씨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회고록은 검찰 수사기록 등 정부 문서를 토대로 쓴 것으로 명예훼손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3월 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관련 형사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을 마치고 나서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소소하지만 돌처럼 단단하게 새겨진 기억들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친구가 운동장에서 함께 공놀이를 하다가 불쑥 “디디디(DDD)가 뭐의 줄임말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랬다. 모르겠다고 했더니, “두환이 대가리 돌대가리”라고 일러줬다. ‘디디디’가 시외전화(당시엔 시외전화를 그냥 ‘디디디’라고 흔히 불렀다)인 줄로만 알았던 나는 배꼽이 빠져버렸다. 친구는 누구한테서 그런 기상천외한 얘기를 들었을까. 전두환씨를 묘사한 외신의 표현 ‘스톤헤드(stone head)’(냉혹한 지도자 정도의 뜻으로 보인다)에서 유래했다는 풍자적 표현은 그렇게 유년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전두환씨가 반란수괴죄,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지 22년 만에 다시 법정에 나타났다. 전씨가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그는 목사가 아니라 가면을 쓴 사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다’ 등의 모멸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전씨는 이와 관련해 사자명예훼손죄로 기소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독감과 치매 때문에 법정에 나갈 수 없다고 버텼지만, 법원이 구인영장을 발부해 출석을 피할 수 없었다.

전씨의 회고록과 관련해서는 민사재판도 진행 중이다. 5·18기념재단 등 오월단체들과 고 조비오 신부의 유족은 전씨의 회고록과 관련해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인용결정을 받았고, 이와 별도로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전씨가 회고록에서 주장한 내용, 즉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특수군이 주도적으로 개입했고, 전씨 자신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았으며, 당시 헬기에 의한 사격이나 군인들을 통한 폭력적인 시위진압행위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등의 내용이 모두 허위의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전씨 스스로 2016년 6월 진행된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이) 어디서 왔는데?”라고 반문한 점, 전씨에게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시위진압과 관련한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유죄판결이 선고돼 확정된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전일빌딩의 총탄 흔적에 대해 호버링상태(헬리콥터가 공중에 정지해 있는 상태)의 헬기에서 발사되었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추정된다고 감정했고, 당시 군인들과 고 조비오 신부를 비롯한 수많은 목격자들의 진술이 있는 점 등이 근거였다.

지난 3월 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 도착한 전씨에게 기자들이 “발포 명령을 부인하십니까” “혐의를 인정합니까”라고 질문하자, 전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거) 왜 이래”라고 고함쳤다. 재판 도중엔 일부러 연출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피곤해서였는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다는 보도도 있었다. 전씨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회고록은 검찰 수사기록 등 정부 문서를 토대로 쓴 것으로 명예훼손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짓말인지 모르고 거짓말을 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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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의 발언과 태도를 보니, 세월이 무상하다는 말도 영 틀린 말이다. ‘디디디’에 배꼽이 빠졌던 초등학생은 이제 40대 중반의 사내가 되었건만, 그는 초등학교 때 알던 그 모습 그대로다.

<임주환 법률사무소 종로 변호사,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위원>